Blog Content

    티스토리 뷰

    성추행

    한 여검사가 검찰 고위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자 지방으로 좌천을 보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8년이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피해자로서는 고통스러운 기억인 듯합니다.

    JTBC 인터뷰에서 울컥거림을 꾹꾹 누르며 말을 이어가는 서지현 검사의 모습은 '힘을 가진 자는 처벌 받지 않는 사회' 를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져준 것입니다. 이 사건은 따라서 현재 진행형이에요. 지금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서지현 검사 사건'이  놀라운 이유는, 범죄를 처벌하고 법을 집행할 책임을 갖고 있는 검사들의 무리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죠. 서 검사의 '일기장'을 읽어 보면 저것보다 더한 일들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른 곳도 아닌, 검찰이 저 정도면 일반 회사들에선 대체 어느 정도라는 건지. 가까이는 한샘 사건도 있었고 치킨 , 피자 프랜차이즈 업체들에서도 있었지만 병원 및 의료계 내에서도 자꾸만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성추행 범죄입니다.

     

    저는 대체 왜 저런 일이 자꾸 일어날까 의문스럽기도 하고, 궁금증이 들었어요. 성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여성들은 너무 흥분해서 차분하게 생각을 못하는 경향이 있고, 남성들은 입을 다물거나 소극적으로 생각하드라고요. 저는 하루 종일 여성들하고 대화를 나누며 지내기 때문에 이런 범죄에 대해 나름 관심이 생겼었는데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곰곰히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가만 보면 성추행 범죄에는 계속 되풀이되는 패턴이 있드라고요. 나름 정리해 본다면.

     

    1. 지위와 힘을 이용해서 강제적으로 추행한다. 서 검사 사건이 아주 대표적이지만 대부분의 직장내 성희롱 사건들은 윗자리에 있는 남자 간부 - 그보다 하위직에 있는 여직원.  그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거의 한 건도 빼놓지 않고 다 그런 것같드라고요.  이것을 '위력에 의한 간음' 이라고 형법상으로는 가중처벌 대상으로 규정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만한' 아랫 직원이 늘 성추행의 대상이 됩니다. (법을 너무나 잘 아는 검사들이 저러면 대체 법은 어따 쓰라고 만든 건지...)

     

    2. 가해자는 늘 술에 취해 있고, 피해자가 항의하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재차 사과 요구하면 쟤 이상한 애다 꽃뱀이다 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3. 성폭행에는 목격자가 없기 마련이고 성추행은 목격자들이 입을 다뭅니다. 일이 커질까봐 우려해서도 그렇고, 직장내 상관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같습니다.

     

    4. 대체로 가해자들은 유부남들..... (총각들이 그러는 걸 잘 못봤어요)

     

    5. 가해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회상하곤 합니다. 그냥 딸같아서 이뻐서 쓰다듬어 줬을 뿐이다. 힘내라고 어깨를 툭툭 쳐줬을 뿐인데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이상하다고 꾸짖습니다.

     

    6. 한번 그랬던 사람이 반복해서 계속 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그러고, 노래방에서 그러고, 서 검사 경우는 장례식장에서 그랬다죠? 그런 일로 경찰서 왔다갔다 하고 피해자와 합의에 이른 사람도 본 적 있는데, 몇 년 지나서 보니까 또 그러고 다니드라고요.... 물론 유부남이고. 즉 담배처럼 못 끊는 범죄가 성추행 성희롱인 듯해요.

     

    이토록 식상하도록 반복되는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한 이 유치 찬란한 성추행 문화는, 대체 뭣때문에 자꾸 재생산되는 걸까요? 저는 어제 서 검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하도 충격을 받아서, 나름 막 생각해 봤는데요. 정리하기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 집단과 전체의 문화 ; 회식이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보편화되고 또 특이한 직장 문화에요.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이런 걸 보기 어려워요.  회식은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쓰는 활동이죠. 근데도 유독 우리나라 기업들이 꼭 저런 걸 하는 이유는 딱 하나에요.

    전체주의적인 문화에 우리가 지배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개개인의 행복감과 개인적 소신, 개별적인 판단들보다는, 집단과 전체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문화. 어쨌든 회식같은 업무외 활동을 통해서 기업은 "너희들은 집단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 너희 개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업이 우선이니, 너를 내세우지 말라."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를 은연중에 주입,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건 대표적인 일제 식민 잔재라 할 수 있어요. 문제는 이런 집단 이데올로기의 주인공은 오로지 남성이라는 데 있죠. 2차 3차가 도우미 노래방이나 룸살롱, 나이트클럽이 되는 걸 보면 여성은 이 집단의 제대로 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매춘, 기생의 문화 ;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아주 강력한 가부장제 사회이므로, 남성들의 쾌락에 관대한 문화를 가집니다. 남성들한테는 욕망이 있는데, 가정에서의 가장이라는, 그런 체면을 워낙 중시하는 문화다 보니 그걸 그늘에서, 안 보이는 데서 해소하라는 식의 분위기가 된 거죠. 결과적으로  매춘, 기생 문화가 발전한 것같애요. 특히 군부 독재 시절 산업화 단계에서는, 모든 게 성과 지향적이고, '성과만 내면 매춘이든 뭐든 해도 좋다' 라는 생각이 퍼져 버리다 보니 술, 기생, 매춘, 향락의 문화가 남성들 중심의 경제 사회에 아예 자리를 잡아 버린 것같습니다. 자. 여직원들은 남성 중심의 전체주의 문화에서 소외시켜 놨어요. 그리고 기업에서 공식적으로 매춘과 향락을 용인해 준다. 이러니 회식 때마다 성추행 사건이 비일비재 한 겁니다.  

    문제는 검찰같은 데서 저런 일탈 행위들을 긍정적으로 당연시 하고 자기들이 빠져들면 안되는데 말이죠...........

     

     

    -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 ; 술은 합리적인 이성의 통제를 풀어 버리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술을 먹고 범죄를 저지릅니다. 성추행, 성폭행도 그 중 하나이고요. 문제는 그게 술을 먹을 때마다 반복돼요. 그래서 음주로 인한 폭행, 강간, 성범죄 들은 정말 큰 잘못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문화가 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술에 관대해요. 술 먹고 저지르는 죄에 대해서 그리 잘못이라고 생각 안한다는 거죠. 이건 진짜 큰일이에요. 서 검사 사건을 포함해서 저도 지금까지 들어 온 거의 모든 성추행, 성범죄들이 죄다 술먹고 저지른 일들이드라고요.  술 먹고 저지른 범죄는 오히려 가중처벌이 필요하지, 관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서열, 위계의 문화. 군대 문화 ;  윗자리에 있고 특히 인사권을 갖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 통제를 받고 있는 여자. 이런 구조는 우리가 아주 익숙해져 있어요. 한샘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고, 의사들의 사회에서도 그런 일들은 꽤 많이 일어났었어요.

    존경을 받는 명망있는 교수님한테 당했다고, 어떤 여자 전공의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합니다. 처음엔 같은 과 교수님들이랑 윗 년차 전공의들이 다들 너 미쳤냐 원하는 게 뭐냐 꽃뱀이냐 이런 식이었다죠. 그런데 그 점쟎은 교수님이 더듬었던 여성 들이 한 둘이 아니었던 거죠. 여 전공의, 간호사 뭐 다들  me too  me too 이렇게 폭로가 꼬리를 물면서 결국 교수님은 해직되었습니다. 서열과 위계가 강력한 사회일수록 성폭행, 성추행 범죄는 더 쉽게 일어나는 것같애요.

    군대 내에서, 고위 장교들에 의한 여군 성범죄 사건들을 들어보면 제일 막장이죠.  높으신 사단장님이나 연대장님이 자기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부하 장교의 와이프를 남편 보는 앞에서 몸을 여기 저기 만지고 추행하는 사건들을 읽어 보면 진짜 이게 인간 사회 맞나 싶어지는데요, 저도 장교로 군생활을 3년쯤 하면서 과거에 보고 들었던 바에 의하면 피해자들은 거의 99% 한 마디도 말을 못 합니다. 말을 해도 묻히고 자기만 피해 볼 것이 뻔하다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이죠.

     

    검찰같은 경우는 사법고시 깃수 문화가 있어서 선배, 후배에 따라 그 위계 관계가 굉장히 엄격한 것같은데 이런 문화는 어서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00 고교 몇 기 졸업생, 이런 식으로 거기서부터 서열을 나누고 위에서 까라면 까라라는 식의 문화에 모두가 익숙해져 있는데 그게 이처럼 지저분한 범죄가 부끄럼도 없이 마구 행해질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열이란, 업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데 필요한 딱 그 만큼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인간 자체의 서열이 아니에요. 인간의 가치를 나누는 척도가 아닙니다. '서열, 위계'의 문화는 내 한참 아래 깃수 여자 후배는 술 먹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녀는 그래도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이런 결과로 이어집니다.

     

     

     

    - 다름, 다양성을 인정하기 힘들어함 ;여성들은, 남성과 신체적으로 다르고 정서적, 감정적으로도 굉장히 많이 달라요.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성추행, 성희롱에서 느껴지는 건 '다름을 인정하고 어울릴 줄 모르는 문화' 입니다.

    저는 10년 이상을 하루 종일 여성 종업원, 여성 간호사, 여성 환자들하고 얘기를 나누고 투정을 듣고 웃고 시달리고 같이 화내고 뭐 이러다 보니, 여성들이 어떨 때에 기분이 상하며 어떨 때에 짜증을 내는지를 이제 나름 알게 됐어요.

     

    여성들은 감정, 정서의 끓는점, 어는 점이 남성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죠. 굉장히 많은 개인차가 있지만, 남성들이 평균 20도에서 얼고 90도에서 끓는다면, 여성들은  30도에서 얼고 95도쯤에서 끓는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다른 정서를 가진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 라는 걸 인정하고 그것을 배려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는 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서 검사의 글을 보면, 어떤 검찰 간부가 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얘기했다죠. "너같이 생긴 여자들은 검사 오래 못해. 여자들은 남자의 딱 50%라고 생각하면 돼" 이런 것은 여성 전체를 싸잡아서 가치 판단을 해 버리는 것이니 큰일인데요.

    동남아 이주 외국인이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일본인이건 중국인이건,  "&@ 놈들은 이렇다". 라는 식으로 집단화를 해서 사람을 평가하는 건 가장 무서운 인격 모독이 돼 버립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은 멍청하고 미개하다" 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듣는다면 가만히 있을 한국인이 없겠죠. 마찬가지로, "여자 검사들은 능력이 딸려,  예쁘게 생긴 검사는 이 일에 안 맞아" 이런 말들은 심각한 인격모독입니다. 그런데 말을 한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가 잘못했다 생각을 못하고 있을 것같애요. "다르게 생긴 사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이, 단지 서열에서 꾸역 꾸역 올라가는 것만을 배워 왔기 때문이죠... 이런 문화를, 지금 젊은 세대들도 배워가고 있다면 진짜 큰일이에요.

     

    - 기독교의 성추행. 용서 ; 서지현 검사는, 가해자인 안 전 검사가 교회에 나가서 신앙 간증을 하고 다니는 걸 알고서 자신이 당한 일을 결국 폭로할 결심을 했다고 하는군요.  흔히들 기독교에 대해 자비의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굉장히 윤리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가르쳤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3-47)  이보다 더 엄격하고 무서운 윤리적 기준을 제시한 종교 지도자는 없습니다.

     

     

    예수의 말씀 어디에도 교회에 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고 헌금 내면 면죄부를 받는다고 한 부분이 없습니다.  성추행을 일삼은 범죄자가 종교에 귀의했다고 하는데 그게 만약 기독교라면, 양재동 온누리교회에 모인 신도들 앞에서 참회하는 것보다 신과 자신의 1대1 관계에서 참회하는 것이 먼저일 듯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국법을 어기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오히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고 말씀하셨죠.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가중 처벌 대상이니, 정정당당하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죄값을 치르기를 권합니다. 공모자인 최모 의원도 마찬가지고요.

     

    이 모든 일에 있어 기독교가 과연 종교로서의 기능을 하는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이듬해 조두순이 출소해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신앙 간증을 하겠다고 하면 온누리교회는 그도 강단에 세울까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15-33)  이런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우리 사회의 목회자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말로 알아들었으면 하네요.

     

     

    여성과 남성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별것 아닌거가지고 예민하게 왜 그래?" 이런 말은 나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위계질서는 인격을 모독하는 데 이용되어선 안되며, 단지 업무를 위해 필요한 질서로만 인정돼야 합니다.  

    주취 범죄는 혹독하게 가중 처벌을 해야 되고 관용을 베풀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마도,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검찰 내부 모습을 보아 하니 우리 사회가 달라지려면 아직도 아주 길고 힘든 시간이 남아 있는 듯하네요.

     

     

    오늘은 '성추행'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번 포스팅을 해 봤어요. 써놓고 보니 아주 긴 글이 되 버렸군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