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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의 눈으로 본 이국종

    의과대학에서는 "외상과" 라는 과목이 없다!! 

     

    제가 인턴 과정을 했을 때는 97년경이었으니까 이미 20년 전이었네요.

    아산병원 외과 외상 외과 스텝이 한 분 오셔서 화제가 됐었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였으니까요. 

     

    그때로선 그정도만 해도 굉장히 혁신적인 것이었어요.  다른 데는 찾아볼 수 없는 파트였으니까... 그러나, 그 큰 병원에서조차 미국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중증 외상 환자를 위한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내의 검사실, 수술실은 마련되어 있질 못했어요.

     

    정말 촌각을 다투는 급한 환자조차 수술실을 들어가려면 빨라도 8시간이 걸린다. 라는 얘기를 인턴들끼리 자조적으로 했던 게 기억나요. 첫째 저런 상급 대학병원 어디서나 볼 수 있던 풍경 즉, 항암제 치료나 만성 질환 치료시 입원 병실을 빨리 얻기 위해서 응급실에 와서 그냥 누워버리는 노인들 덕분에 중증 환자들이 누울 베드가 없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었습니다.

     

     

     

    시간이 20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 나라의 중증 외상 치료, 응급 치료의 현황은 그때와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을까?

    제가 보기에 놀랍게도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같애요.  여전히 응급실은 야간 감기 환자들이 줄을 서 있고 정작 진짜 응급 환자들은 결국 갈 곳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는 골든 타임을 지킨다는 건 요원합니다.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있고 누군가는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같습니다.

     

     

    이국종 교수 - 김종대 의원 사건 파일

     

    11월 13일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을 통과해 북한 병사가 남한으로 넘어오는 도중 총상을 당해 쓰러져 있는 것을 미군 더스트오프 팀이 헬기로 이송해 아주대 병원으로 도착, 중증 외상센터 이국종 교수가 응급 치료를 맡는다.

     

    환자는 4발의 총상을 당했고 혈압이 떨어져 위급한 상태에서 도착했다. 이국종 교수 팀은 환자를 개복후 상처를 닫지 않은 채 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항생제 투여와 긴급 수혈을 시행했다.

     

    군 당국에서는 환자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보도했지만 치료를 맡은 이 교수는 소생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11월 15일 2차 브리핑에서 이 교수는 2차 수술 상황을 보고하면서 "이렇게까지 기생충들이 많이 장내에서 올라오는 모습은 저한테도 드문 경우입니다." 라는 설명을 사진과 곁들여서 진행했다.  

     

     

     

    일부 언론들은 이교수의 브리핑을 계속 재보도하면서 "북한의 위생상태와 영양이 엉망이다." 라는 점을 헤드라인으로 뽑았고 '북한 병사, 기생충'은 실검에 오르고 무분별하게 보도되었다.

     

    11월 22일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한 인간의 몸이 똥과 벌레로 오염되었다는 극단적 이미지... 이것은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의료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 이라고 비판한다.

     

    이 교수는 이날 3차 브리핑에 나와서는, "이런 상황까지 와 있는 게 자괴감이 든다. 나는 칼을 쓰는 사람인데, 의사는 말이 말을 낳고 복잡한 상황이 되는 것을 헤쳐나갈 힘이 없다." 라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같은 날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책임은 주치의가 지는 것이지 형사 처벌을 받는다 해도 내가 받겠다. 봉사자들과 교직원들이 자부심과 명예로 버티고 있는데 더 이상 이렇게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말로 고통스러워 보였어요. 그러나 자기 스스로를 걱정하는 걸로 보이진 않았어요.

     

    자기 팀원들에게 정치권에서 쏜 총알이 박힐까봐, 그걸 막으려고 몸으로 막고 선 외인부대장처럼 보였어요.

     

     

    이제 온 세상이 시끌시끌해졌어요. 김종대 의원에 대해 "열심히 치료해 사람을 살린 사람한테 그렇게 시비나 걸고 있다" 는 여론이 비등하자 김종대 의원은 이 교수를 비난 한 게 아니다... 라는 식의 대응을 했지만  김의원 사퇴하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분위기네요.

     

    아직 진행형인 사건이긴 합니다만 여기까지가 전말인데요.

     

     

    이국종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저는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를 전부 다, 쭉 봐봤어요.

     

     

    영상을 통해서 느낀 바  이교수는

     

    1. 말을 조리있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횡설수설처럼 들리는 부분이 많아요. 

    의과대학을 나온 엘리트들, 보통 범생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은 항상 '시험에서 출제자의 의도 대로 답을 쓰는' 데에 습성이 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사회에서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 상황에서 정답은 이거. 그럼 딱 정답 쓰고 나오는 거 이외에 다른 일에는 신경을 안 씁니다. 안 써야 됩니다. 그래야 엘리트가 될 수 있지요.

     

    2. 그런데 이 교수한텐 그런 '엘리트 티'가 하나도 없어요. 모범 답안은 안중에도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똑똑한' 사람들은, 대체로 '윗선'의 귀여움을 받는 길을 선택합니다.  모 전 대통령이 얼굴이 면도칼 테러 당했을 때 단순한 피부 열상 봉합하고 나와서는 기자들 앞에서, "다행히도 대통령께선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시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거. 그런 게 엘리트들이 늘 해 온 일이었죠.

     

    3. 만약 3차 브리핑을 하면서 이 교수가 "환자가 의식을 차리고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갔다면, 정치권에서는 그를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교수는 그런 소리를 하질 않았어요. 적성 국가보다 우리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걸 선전할 이렇게 좋은 기회에 말이죠.

     

     

    4. "이번에는 미군 더스트오프 팀이 FM대로 해서 이 병사를 살렸지만, 우리 나라 중증 외상 환자의 이송,치료가 제대로 되는 줄 아느냐,  크게 다친 환자들 허무하게 생명을 잃는 게 우리 현실이란 걸 알았다면 ... 저 사람이 북한에서 넘어 온 게 의미가 있을까? " 도리어 이런 소릴 합니다. (11/22, 3차 브리핑) 

     

    수많은 언론들이 '아 뱃속에서 기생충이 나오고 옥수수만 먹고 살았어? 으이구 사는 꼴 엉망이네' 이런 식의 체제 우월주의 및 북한에 대한 혐오에 빠져 있는 와중에 이 교수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 하나 못 살리는 나라란 걸 알면  (목숨걸고 넘어온 걸) 얼마나 허무하게 생각하겠냐' 라며 각성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외신 기자들까지 다 모여 있는 회견장에서요. 

     

    5. 남들이 다 주전 공격수, 전방 미드필더를 하면서 화려하게 조명받고 싶어하는 데,  "나는 저 뒷쪽에서 풀백을 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 어린 축구선수가 있다고 칩시다. 잘 아는 집 아이였어요. 그럼 우리는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한마디씩 해주겠죠. "얘. 정신차려. 너 그런거 해서 먹고 살기 힘들어. 차라리 딴 거 해." 아이와 가깝고 친한 사람일수록 당연히 그렇게 얘기해 주려 할 꺼에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바로 외상 외과를 한다는 게 그런 거에요. 지금 의료 보험 수가체계에서는, 저거 답이 아예 안 나와요. 열심히 일해서 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일테니까요.

     

    6. 그의 인터뷰를 들을수록 사실은 가슴이 너무 아파요. 시퍼렇게 든 그의 멍이 보이거든요. 오랜 세월동안 치료받지 못하고 계속 암세포처럼 커져가는 멍이에요. 그 세월동안 누구도 그의 마음에 위로가 되지 못한 것같애요.  

     

    아덴만의 작전 이후 어느 일간지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에도, 그의 자조 섞인 한숨은 귀에 생생히 들려오는 듯했어요. 그런데 지금 브리핑과 인터뷰를 들어 보면, 마음 속의 응어리는 더더욱 꽁꽁 묵혀지고 커져 있네요.  

     

     

    "저희가 생각하는 환자의 인권은 환자가 죽음의 선상에 서 있을 때 물러나지 않는 겁니다. 물러나지 마라고 합니다 제가. 저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잘릴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11월23일. SBS 인터뷰

     

    제가 생각하기에 이국종은, 우직하게, 날라오는 돌 전부 맞으면서 버티면서 그렇게 걷고 있는 사람이에요.

    빛을 볼만한 일에만 약게 끼어야 '엘리트'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이국종은 그런 사람들, 사회의 지도층, 잘난 엘리트들의 무리에 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고요.

     

    왜인줄 아세요? 왜냐하면요. 그는 영웅이니까요. 

     

     

    우리 사회에서 "영웅"이란 칭호를 들을 만한 사람을 실로 오랫만에야 보고 있기 때문에, 저도 긴가민가 하다가 이제는 확신을 갖고 보고 있어요. 

    이국종은 영웅이에요.

     

    동료 의사들에게 왕따 당하고, 쇼맨쉽 부린다고 빈정거림 받고, 정치인들한테 공격당하고. 그리고 자기를 따르며 열심히 일하던 후배들의 몸이 망가지고 부서져 나가는 걸 보면서, 마침내 자기 몸도 망가져 가는 그 와중에도, 멍청하게도 자기 갈 길만 보며 한 발 한 발 디뎌나가는,  

     

    이국종은 영웅이에요. 우리 시대의 영웅은, 바로 저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온 몸에 피칠을 하고, 잠을 자지 못해 푸석한 얼굴에 고집스런 눈빛만이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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