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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살. 전지현은 그저 전지현이었다.

    영화 암살을 본 후기입니다. 


    최동훈 감독의 예전 영화들 - '도둑들'이나 '전우치전'은 - 흥미롭고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문화적 의미가 깊지는 않았어요.

    근데 그의 2015년작. 영화 암살은 정말로 드물게 좋은 영화의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네요.

     

    스타란. 다수 대중들의 인기를 얻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흥행 영화란 다수 대중들이 선택하고 보게 만들 수 있는 뭔가를 갖고 있는 작품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흥행적, 상업적인 컨텐츠이면서 동시에 문화 예술이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영화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으면서도 관객을 몰입시키고 흥미롭게 끌고 갈 수 있는 영화입니다. 불행스럽게도 그런 영화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좋은 배우란, 그 배우의 연기로 인해 영화가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갖게 만듦과 동시에 영화가 갖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빛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겠죠.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습니다. 여자 배우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죠. 


    그렇다면,  전지현은 바로 그런 배우였을까요? 

     


     

    '암살'은 식민지 지배 상황에서 경성과 상하이를 오가며 약소국 민족의 설움, 충성과 배신, 얽히고 설킨 가족간의 사랑과 증오, 총격 액션,암살과 복수 등을 모두 한 화면에 담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민족의 배신자 매국노의 쌍동이 딸로서 광복군의 스나이퍼. 여성 전사 안옥윤은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입니다. (염석진은 정확히 그 반대에 서 있는 또 한명의 주인공이었습니다만)


    따라서  안옥윤을 연기하는 주연 여배우는 이 135분짜리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며, 영화의 메시지 그 자체로서 빙의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35세의 톱스타 전지현은 안옥윤이 되지 못한 것같습니다. 아니 전지현을 안옥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캐스팅한 감독 본인이 놀랍게 여겨질 따름입니다.

     

    삶의 무게를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혼자서 버티며 걸어가고 있는 인물은 눈물이 드물 수밖에 없습니다.

    눈물은, 자기의 분출하는 감정, 분노,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막막함을 주체하지 못할 때에 흐르기 마련입니다.


    어렸을 때 일본군에게 쓰레기처럼 죽음을 당한 어머니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이후로 혼자서 자라난 여자 아이는 

    일본인 이름을 갖고 귀하게 자라난 자기 쌍동이 동생의 화려한 웨딩 드레스를 보고 눈물을 흘렸을 턱이 없습니다.

     

     

     

    되짚어 보면. 전지현이 99년 삼성 마이젯 프린터의 CF 모델로 자기 존재감을 굳혔을 때부터 이미, 그의 설 자리는 너무나 명확했던 것같습니다.

     

     

     

    스타일리쉬하고 도도한 데서 나오는 카리스마는 전지현에게 챔피언 벨트를 준 영롱한 보석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를 옭아매고 한정짓는 족쇄이기도 하였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에서 그는 아시아권을 휩쓸 만큼 독특하고 강한 이미지를 심어줬고 월드 스타가 되었지만,

     

    긴 생머리와 콧등의 점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그의 강한 캐릭터는 이미 어떻게 해도 뚫고 나올 수 없는 콘크리트같은 두꺼운 벽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를 성공시킨 이후 2012년 '도둑들'에서 스타일리쉬하고 사기 성향 있는 도둑 예니콜로 돌아온 그는 바로 이듬해 베를린에서 액션을 소화하는 여전사. 련정희 역으로 나오면서 '뭐든 전지현이 하면 된다' 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더라고요.

     

    끼 있고, 속을 알 수 없고 분위기 있는 독특한 이미지는 그를 최고의 배우 대열에 올려놓았고 저는 '베를린'을 보면서 전지현이야말로  국민 여배우로 각광 받을 만하다고 감탄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영되고 있는 영화. 암살에서는 그런 생각을 접게 되었습니다.

     

    전지현은, 그저 전지현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의 평탄한 발음과 너무 큰 키로 옥상에서 건너뛰는 각 액션 장면 등을 보는 와중에 저는 계속 생각하였습니다. 

    과연 제작자의 생각에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과 안옥윤. 둘 중에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을까?

     

    암살의 스탭진의 생각은 어땠을까? 이 영화가 성공하려면, 전지현을 내세우는 게 우선이었던 걸까? 아니면 안옥윤을 내세우는 게 우선이었을까?
     

    영화를 만든 사람은 그 문화적 컨텐츠에 대해 박수를 받길 원하겠지만, 흥행에서 실패하면 그냥 끝나고 마는 거거든요. 그리고, 전지현은 가장 확실한 흥행 카드이며 아이콘입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누는 독립군 여전사는 그 장면에서 그의 인생에서 지나갔던 수많은 기구한 굴곡이 응축되어 표출되는 처절함과 분노, 갈등 그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했습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단연 강인국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 그때 클로즈업된 안윤옥의 눈이었을텐데요, 저는 그 씬에서 화면에 담긴 전지현의 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안옥윤에 관한 아무것도. 

     

    충무로에 여배우 기근 현상이 심하다고들 합니다. 하드한 액션을 소화하면서, 섹시미를 분출하면서 또한 감정을 몰입시킬 수 있는 배우는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닌 것같긴 합니다.

     

    저는 그 모든 걸 갖고 있는 게 전지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올해 관람했던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던 '암살'에서 나온 전지현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비록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문득 문득 진짜 안옥윤이 보고 싶어지곤 하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관객을 몰입시킨 이 영화의 그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지만,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

    사람들은 지난 역사를 수치스러워하면서 방지하려 들기보단 그저 쉬쉬 덮어두려고만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암살'은 그런 환부에 고름을 짜내는 날카로운 침과 같은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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