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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프리티 랩스타 3. 계속 이렇게 갈 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보고 듣는 거의 모든 음악 프로들이 순위를 매기고 있고, 서바이벌, 경쟁, 승패를 겨루는 대결, 배틀로 채워져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껍니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그 중에서도 유독 심하게 서로에 대한 디스전. 트랙을 따내기 위한 경쟁 등등 (쇼미더 머니도 마찬가지...) 악마의 편집이 물론 관여했겠지만 정말 제일 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걸크러쉬라는 양상이 하나의 문화로까지 언급되는 데는 언프리티의 공헌도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꺼에요.  화면 보고 예쁜 척 상큼한 척만 하는 걸그룹 아이돌만이 우상이었던 시대를 뒤로 하고 요즘 젊은이들은 여자도 실력이라는 새로운 호감의 판도를 가지게 됐다는 점은 분명 문화적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근데 저는 쇼미더 머니 5에 이어 언프리티 랩스타 3를 보면서 역시 아 저건 아닌데 라고 자꾸만 고개를 젓게 되는 것같애요.  

    왜냐하면요, 

    랩-힙합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보는데, 예술은 창조와 공감의 영역이지, 점수, 순위, 승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모든 래퍼들이 트랙 결정전을 앞두고 '잘해야지, 실수하지 말아야지, 가사 틀리지 말아야지' 이렇게 되뇌이고 무대에 올라갑니다.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무대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려면 첫째 그 무대를 신선하게 만들어야 하고, 둘째 공감과 감동을 주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근데 지금 쇼미더 머니든, 언프리티든 이런 플랫폼에서는, 무대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누가 더 잘했지?' 만 생각하도록 계속 유도하고 있어요.

    '누가 자격이 있지?'  '누가 프로듀서의 마음에 더 들었을까?' 가 아니라, '누가 내 마음을 울렸느냐.' 가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할 수 없어서, 일시적으로 흥미를 돋우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잠시 쓰는 극단적 처방. 이런 것으로 서바이벌을 사용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음악 프로들은 승패와 생존, 서바이벌 포맷에 사활을 걸어요.  



    트랙 결정전, 디스배틀, 데스 매치 등 누가 살고 죽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매치, 경연. 쟁탈전... 등을 보다 보다 질려 급기야는 정말 이렇게 묻고 싶어 지죠. 

    "대체 언프리티는 음악프로입니까? 아니면 씨름이나 축구처럼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 프로입니까?" 


    자이언트 핑크가 가사를 절었다고 칩시다. 당연히 안타깝죠. 



    랩을 표현하는 그 방식의 세련됨에 자핑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거든요.  헌데, 만약 그 무대가 디스배틀이나 트랙 결정전. 그런 게 아니었다면, 그래도 그랬을까요?  

    즉, 래퍼가 가사의 표현에 집중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주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유나킴.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유나킴의 나름대로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 정말 좋았거든요.  힙합-랩이라고 하면 누구나, 걸걸하고 '쎈 언니' 스러운 표현들만 생각하지, 유나킴같은 랩은 익숙하게 느끼질 않아요.  

    근데, 그런 게 어디 정답이 있나요?  



    아 여성 래퍼의 목소리는 요런 식이어야 먹히는구나. 라고 프로듀서들이 온통 그런 래퍼들만 찾아다닌다 싶을 때, 유나킴과 같은 목소리가 오히려 누구도 생각 못했던 새로운 랩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언급에 대해서, 그럼 당신은 유나킴이 최고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이 만약 나온다면 진짜로 할 말이 없어지죠... 



    최고가 누구냐. 라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아주 찌들어 있는 것같애요. 고3때는 아예 전국 석차가 모의고사 성적표에 찍혀 나올 정도니까.... 

    그러나 스포츠가 아닌 예술의 영역에서 최고라는 건 없어요.  단지,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랩을 해줄 수 있는 래퍼, 나의 감성을 사로잡는 목소리를 가진 힙합가수가 있을 뿐이죠. 


    애써 이런 형태의 플랫폼을 만들어서 하나 하나 무대와 화면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무대 자체에 집중하도록, 노래에 집중하도록 그렇게 해 오다가... 관객들이 그런 걸 하도 안 보니까 이렇게 하게 된 거다"  

    버나드 쇼는 "관객은 시시한 것을 원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걸 줘야 한다." 라고 말했고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겠죠.  



    근데 적어도 지금은 데스매치, 배틀, 쟁탈전.  이런 게 홍수같이 나오는 음악프로의 포맷을 보면서, 이젠 다들 저기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리고 새로운 방향이 수립될 시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만약 방송 플랫폼을 큐레이팅이라도 하는 입장에 있다면, 개개의 참가자들을 더 믿어주는 생각으로 기획할 것같애요.  

    지금의 프로그램을 보면 마치, 기획자들은 '얘네들 음악을 그대로 틀어주면 안 돼.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관여하지 않으면 안 돼.' 이런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같은데요.  



    그런 관념을 이제 과감히 놓을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겁니다. 예술의 창조자는 뮤지션들이지, 큐레이터, 기획자, 피디, 작가가 아닙니다. 


    지금은 주객이 전도 됐고 이런 상태로는 우리나라 힙합-랩은 뮤지션적 창조성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안 틀리고 잘 외우고 기계적으로 랩 하는 친구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로 가 버리지 않을까 염려 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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