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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은 언제나 옳은가?

    과연, 고객은 언제나 옳은가?

     

    어렸을 때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하나 떠올려봅니다.

    손에 난 사마귀 때문에 어머니랑 함께 피부과에 갔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의사는 비뇨기과 전문의였고 (종합병원이었는데도) 외래 푯말엔 피부 비뇨기과로 적혀 있었습니다그 당시엔 거의 다 그랬지만요.

    진료시간은 단 10. 의사는 설명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환자에겐 질문할 시간도 주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병원이란, 괜히 구구하게 이 말 저 말 하다가 면박이라도 당할까 어머니도 다른 환자들도 두려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게 늘 당연했어요.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간신히 의사 얼굴을 볼 수 있던 때였죠.  함부로 의사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었습니다.

    당시엔 '의사는 언제나 옳았'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저의 진료실. 환자는 가슴에 필러를 넣고 싶다고 말합니다.

    수술은 뉴스에 이상한 얘기가 자꾸 나와 불안하고 지방이식은 뺄 지방이 없어 싫다고 하고요.  자기 생각엔 반영구 필러를 넣는 게 제일 맞는 것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리 알아보고 온 듯, 딴 병원들의 시장 가격들을 제시하며 '아쿠아 ** 필러는 여기서 못하냐'고 묻습니다.

     

     

     

    이쯤에서 '고객은 언제나 옳다' 라는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한참 옛날이지만 인턴 시절. 당뇨 발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발가락 부분에 아물지 않는 상처만 있었어요. 이 환자는 병원의 권유를 듣지 않고 어딘가로 없어졌다가 근 1년 후에 다시 병원에 왔습니다.

    이때에는 이미 좌측 발목 아래로 전체가 새까맣게 썩은 후였습니다.

    통째로 발을 잘라내고 의족을 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방 치료를 받다가 온 것같다고 혈관외과 주치의가 얘기합니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내 돈을 갖고 양방을 선택하든, 한방을 선택하든, 기도원에서 안수 치료를 받든 그건 완전히 환자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입니다.

    이 나라에는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치료를 받을 권리가 보장돼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고객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요?'

    방사선치료에 반응이 좋은 세포 특성을 가진 후두암 환자가 '방사선은 몸에 안 좋은 것이라고 들었다'며  따라서 자기 몸에 방사선 치료는 맞지 않아 수술과 항암 치료를 선택하고 싶다고 하면, 주치의로서는 그때도 역시, '고객은 언제나 옳으니까' 기꺼이 ok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누구나 이에 대해서는 똑같은 대답을 고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아니다'. 라고요

     

    수많은 병원 컨설팅 업체들이 지금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놓는' 마케팅 및 CS 기법들을 의사들에게 가르치겠다고 제안서를 밀어 넣습니다. 이들이 하는 말은 대개가 비슷합니다.

    "성공한 00 병원이랑 당신의 병원은 이런 면이 다릅니다. 그래서 그만큼 커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돈을 벌고 성공하려면 우리에게 컨설팅을 받고 고객 중심으로 바꾸십시오."

    그런 걸 듣고 있다 보면 나는 질문하고 싶어집니다.

     

    과연, 당신들의 말처럼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고객의 말은 언제나 옳은가?   

     

    고객이 원하는 게 최소 침습적 시술이라면 의사는 당연히 최소 침습적 치료를 고민하고 임상으로 적용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맞습니다.

    불과 1~2년 전 일부 클리닉들에선 쉽게 하고 바로 직장 나갈 만한 방법을 찾는 '고객의 니즈'가 있다 하여 아쿠아** 필러로 주사하는 가슴 확대 시술을 한때 대대적으로 광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가슴에 넣으라고 대대적 광고하는 병원은 없어졌습니다.

    수많은 병원들이 그거 하다 뜨거운 맛을 봤을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그걸 맞고 식염수를 주입했는데도 가슴 피부가 넓다랗게 부분층 괴사가 진행한 환자 - 아마도 앞으로 그 어떤 방법으로도 남아 있는 아쿠아** 필러의 덩어리들을 몸에서 떨궈내지 못하고 평생동안 살아갈 - 를 보면서 저는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환자의 니즈가 수술/시술의 내용을 결정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환자를 잘 교육시키면 될 문제라고 가볍게 대답해 버리는 사람이 참 많겠지만, 실제의 상황은 병원이 환자의 욕구를 뒤늦게 따라가는 경향이 갈수록 확대되는 중입니다. 이 질문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화된 자유주의 사회의 핵심 근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빈곤한 백인 유권자들은 혐오감과 이민족 차별주의를 전파한 도널드 트럼프를 그들의 통치자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의 자유의지였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 앞으로 한참동안, 그토록 원하던 '백인만의 빛나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의료 보장제도를 누리고 살던 영국인들은 폴란드인과 이민자들이 자꾸만 그 값싼 의료 혜택을 받는 것을 못마땅해해 국민투표를 통해, 마침내 브렉시트를 확정지었습니다. 

    그러나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졌던 수많은 영국인들을 지배했던 건 그냥 고립주의와 배타주의였을 뿐입니다.

    빛나는 대영제국의 재탄생은 커녕, 영국은 퇴보 중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바로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해..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항상 옳다라는 말은 과연 맞는 것일까요?

    저는 대중이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이익을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이 자유주의 사회에서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대중은, 장애인 학교가 우리 동네에 설치된다는 발표가 나오면 기를 쓰고 나와서 꽹가리를 치고 반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 의지에는 통제가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시장에 서킷 브레이크가 있는 것처럼, 환자의 욕망에는 적절한 조언과 통제가 있는 게 맞습니다.

     

     

    이것을 전문 교육을 받은 의사 집단이 아닌,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의사가 언제나 옳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환자 (고객)알 권리’ 역시 의사의 진료권 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고객이 "나 요즘 유행하는 그 모티.. 머시긴가 그 보형물 좋단 소리 듣고 그걸로 수술하러 왔는데" 라고 말할 때

    "네 고객님. 이 보형물로 말씀드릴 것같으면 명품으로서 다른 보형물들보다 2배 이상 비싸며..." 라고 의사들이 (안전 및 효과에 대한 충분한 스터디조차 끝나지 않은 보형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충실한 영업사원이 되고 있는 이 현실은, 과연 먼 미래에 우리의 후배 의사들에겐 어떤 역사로 기억될 지 자못 궁금해지곤 합니다.  

    미용이라고 해도 이건 의료 행위입니다.

    의사의 전문적 지식들이 의료 정보 네트워크 공간에서 가장 존재감 있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를 위해 환자를 통제하여야 한다는, 그 의무를 의사들이 더 이상 방기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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