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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 관상성형과 성형이 나아갈 길

    관상학, 관상 성형을 돌아보며 미래의 성형이 길을 생각하다

     

    현대화된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관상이 좋다 나쁘다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옛날 삼성 물산의 이병철 회장은 임직원을 채용, 발령 인사 조치할 그들의 관상을 보았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서로 어울려서 사업을 벌이고 모든 생활을 같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보니 대체 저이가 어떤 사람일지를 얼굴을 보고 판단하고 싶어하는 그런 열망은 관상학이라는 하나의 동양적 사상으로까지 발전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바뀌기 마련이니, 사실은 얼굴 상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양식과 궤적은 얼굴에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처음 접하면서 ‘저 사람은 아마도 이러한 사람일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의 ‘관상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얼굴과 인상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관상학이란 아주 오래된 하나의 동양 철학 체계로서, 읽어보면 정말로 구름 잡는 소리들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관상 성형을 이야기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상을 개선해야 운세가 핀다’. 라든지,  성형을 하면 정말 운명이 바뀌는가? 라는 식의 질문에 귀결하고 맙니다.

    실제 관상가들도 성형이 관성에서 판단하는 운명을 다르게 만드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세간의 모습은 ‘관상’을 전근대적이고 운명론적 사고관에 가둠으로써 생긴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이런 운명론적 사고에 갇히는 것은 가당치 않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는 흥미거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관상 성형’이란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운명에 영향을 주는 그런 행위로서가 아니라, 나의 실체가 편견과 선입견에 갇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수단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관상학을 보면 예컨대 복이 머무는 자리인 12, 눈썹의 사이인 명궁에 학문의 근본을 알아내는 곳이 있으며 코에 재백궁이 있어 그것이 재복을 가늠하며 눈썹에는 형제궁이 있어 형제간의 우애를 본다 하며, 전택궁은 눈으로 , , 재산을 보는데 재백궁과 중복되는 곳으로 본다… 등등 

    이런 식의 언급들이 가득한데 대체 어느 누가 눈썹 모양만을 보고 사람이 형제간 우애가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겠습니까? 관상성형에서는 관상에 대한 개념 출발점 자체가 틀려야 합니다.

    ‘관상’은 단지 사람들 머릿속의 관념일 뿐이며 사람의 실체와는 다른 것입니다.

    ‘관상 성형’은 나에 대한 그런 사람들의 관념과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관상 성형을 함으로 인해 운명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아니 운명이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관상 성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재물운, 형제운, 자식복 등을 얘기하지 않는 낫습니다.

     전통적인 관상학에서는 코뿌리를 절액궁이라 하여 인간의 근원이며 자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코를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재백궁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하지만…. 일단 코뿌리에 주름이나 흉이 있으면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봅니다.

    전통적으로 관상에서는 코뿌리부터 코끝까지 웅장하게 내리 뻗은 코를 제일로 보고 조상복과 돈을 간수하는 힘도 좋은 것으로 평가합니다.

    코뿌리가 꺼져 있으면 힘이 없고 재산의 근원이 미약하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이미지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념이 코뿌리가 너무 낮은 사람은 부티가 나지 않아 뭔가 일이 풀리는 사람처럼 어둡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것을 성형으로 해결한다고 했을 ‘운명’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을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얼굴에 대해, 성형에서 추구하는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 이런 부분을 관상에서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일치점을 찾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정이 편등하면 부귀 장수를 누리니 이목구비 하나하나의 생김새는 이차적인 문제이고, 우선 틀이 먼저 잡혀야 하는 것이다. (관상학, 신기원)

       

     

     

     

     

    위의 그림은 ‘관상학’에서 발췌한 것이고 아래 그림은 Thomas Rhee Plastic Surgery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Rhee Esthetic classical canon 관한 언급은 안면부의 Proportion 으로서, 무엇보다 얼굴의 비례와 균형이 아름다움의 대원칙이라는 점을 전제로써 언급합니다.

    동양적으로도 얼굴의 균형과 좋은 비율이 관상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며, 서양 의학의 교과서에서 역시도 그렇게 설명한다.

    이런 틀에서는 나름의 합치점을 읽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과 ‘긍정적인 인상’ ‘좋은 미래를 불러올 만한 이미지’ 동서고금을 초월해서 틀의 일치점이 있는 듯합니다.

    ‘비례와 조화’는 얼마 성형외과 학술 대회의 motto이기도 했었습니다. 

     

    관상에서는 ,,인의 조화가 깨지면 운이 사납다고 합니다.

    우리는 ‘운이 사납다’는 말을 함부로 쓰진 않지만 적어도 upper face, mid-face, lower face 간의 proportion balance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얼굴 성형에서 하나의 대전제이고, 모든 성형 consulting 출발이기도 합니다.

    얼굴과 몸의 비율 역시 관상에서 중요시하는 것인데 이를 신상 삼정이라고 부릅니다.

    머리, 몸통, 다리의 조화를 말하는 것이고 관상학 책에서는 얼굴이 비록 생겼어도 머리-몸의 균형이 깨지면 부족한 상이 된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 얼굴에는 12학당과 12궁이 있으며 12학당의 학당은 글방, 즉 학교를 의미, 여기에서 성공과 실패, 인품, 성격, 지적 능력 등을 본다고 되어 있습니다. 눈은 성공, 이마는 관록과 수명, 이는 인품, 귀는 영특함 등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부위별 관상법의 각론에 대해서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얼굴에서 풍기고 느껴지는 그 사람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분석해서 그것을 실질적으로 판단해 보려고 옛 사람들이 많은 애를 썼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어디인가에 주목하게 되고, 성형 역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술기를 연구하게 됩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관상 성형이라면, 결코 한 가지의 가치 판단으로 환자를 몰고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한 시각들을 환자와 상호 communication 하고 그 이미지에 대해 환자 본인의 불만 여하와 주변 사람들의 시각 등을 토론하여 성형의 방향을 결정하여야 합니다.

    무조건 큰 눈과 높은 코만 좋다는 식의 성형 consulting도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성형은 너무나 같은 방향으로만 다들 뛰어온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성괴라는 유행어도 나왔고 강남 미인도라는 풍속화마저 돌았던 바 있지요.

    과연 미래의 성형도 지금까지와 똑같은 방향으로, 오직 한 길로만 뛰어 갈 일일까요? 

     

    현대 사회의 특징은 단선적인 판단을 떠나서 복수의 다양한 가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며, 자체적인 판단과 3자가 판단하는 이미지를 의사-환자가 서로 공유하면서 더 나은 이미지, 더 나은 성형 방법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보며,

    이런 풍조가 정착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 성형의 미래의 길이 제시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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