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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는 요원한가

    어떤 사람이 "봉건 사회에조차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말도 안된다고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황당하지만, 우리 나라는 봉건 사회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도  근대화도 되지 않았고, 여전히 그 진통 와중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해방 이후, 즉 1948년부터 현재까지는 아직 7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요. 그 전에는 이 땅은 조선 총독부 관할이었고 그 전에는 왕정이었습니다. 시민 의식, 당연한 국민의 권리와 민주 사회에서 주장해야 할 것들, 자본주의 사회에 당연한 경제적 양심과 professionalism. 이 모든 것이 성장하고 결실을 맺기에 한참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됩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1789년 시민 혁명이 촉발된 이후 엄청난 혼란기를 아주 오랫동안 겪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근대화된 국가로서 공화정의 체계와 자유.평등, 박애의 원리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공화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인, 사법, 행정, 입법의 3권 분립조차도 제대로 돼 있질 않습니다. 

    아니 사실상 사법부는 행정부의 시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 것 아닌가 해요. . 


    언론 및 집회의 자유는 민주 공화국으로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이것조차도 아직 어렵고요. 


    그런데, 이런 일련의 모습들이 어찌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갈 길이 먼 겁니다. 


    추웠던 주말에 청계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 입은 자존감을 다시 세우고 싶어 하는 듯 보였고, 허탈해 하고 있기도 하고, 배신감에 치를 떠는 사람들도 있었고, 뭔가 말 못할 의무감,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묵묵히 거기까지 나온 사람들도 많아 보였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모일 것으로 보였습니다. 

    촛불을 들고 모이고 아이들과 어머니들도 모일 겁니다. 

    그리고 저도 분노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 입은 입에서 어떤 말이 모아져 나오는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 지금의 권력 집단은 수명을 다했다. 이제 내려 놓거라.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


    아마도 그날, 그 말을 하고 싶다는 게 다수 국민들의 생각의 핵심이었을 겁니다. 



    잠깐만 시대를 한 120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 싶어요.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개수하면서 물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면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 있었어요, 

    근데 이 소요가 간단히 진정되질 않고 농민들이 관군을 치고 무기를 빼앗더니 전국적으로 갈수록 하나둘 사람도 가세해서 점점 더 퍼져 나갔었어요. 


    처음에는 조선 말기 탐관오리의 학정과 수탈, 그리고 기층 민중인 농민들의 배고픔이 문제였지만, 민중이 결집되고 난 다음의 구호는 단순히 '빵을 달라'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에 막대한 빚을 지우고 위협하고 있는 일본과, 내정간섭하는 청 등 외세의 척결을 포함한 '보국 안민' 이었습니다. 

    즉  '나라를 바로잡겠다' 라는 크나큰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정신이 그들이 들고 일어난 깃발의 내용이 된 거죠.  이들은 그저 농사만 짓고 살던 우리의 증조, 고조 할아버지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농민 부대 앞에 나타난 것은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일족이 불러들인,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었고 

    농민들이 일군 땅에서 소출한 세금으로 사들인 기관총이 바로 그 주인이어야 할 농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데 쓰인 이 모순적인 전통은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것같습니다. 


    정말 생각하고 생각하곤 했어요. 역사를 돌아볼 때, 과연 이렇게, 실패한 민중봉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끝나버린 것이었을까. 그래서 봉기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이완용이 3.1운동을 두고 매일신보에 연차적으로 경고했듯  "생업에 종사한 즉 안락이 있을 것이요, 망동을 따라하면 즉 죽고 다침이 목전에 있으니..."  이런 말이 오히려 맞았던 것일까요? 


    농기구를 놓고 무기를 들고 일어선 그들은 결국 집으로, 가족에게도 돌아가지 못했고 

    조선 권력층이 불러들인 외세에 철저히 도륙당한 이후 사실상 조선의 민중 봉기는 막을 내렸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 는 보국 안민 이념과 사상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계승되었어요. 


    되씹으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근대화란 대규모 민중 봉기나 정변, 유혈 충돌 등을 빼놓을 수 없긴 하지만 그에 앞서 대중들의 정신과 사상이 너무 중요해요.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서 무기를 탈취하면서 시작된 프랑스 시민 혁명에서 군중들이 자유, 평등을 처음부터 부르짖었던 게 아니라 


    사실은 그 훨씬 이전부터 볼테르, 루소 등의 계몽 사상가들이 시민 혁명의 토양이 될 사상들을  꾸준히 전파하고 있었고 

    국왕을 둘러싼 귀족 그룹에서 소외된 부르쥬아들과 지식인들이 조금씩 조금씩 봉건사회의 모순과 근대화로 나아갈 길, 공화정,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깨어 나가고 있었던 현상이 먼저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인터넷을 보고 또 댓글을 보고 미디어들을 보건대 아직도 국민들이 근대화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깨질 못한 것같아요.  아니 근대적인 가치관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비록 답답한 사건이지만 요즘의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볼 때, 국민들이 이제 어떤 의식들에 뜨겁게 깨어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정치는 나의 일이 아니고 꾼들이 하는 일이다. (고로 나는 내 먹고 사는 일에만 전념하자. 신경끄자)

    저건 진짜 잘못된 일이 맞지만 누가 하든 안 저러겠나. 드러운 놈들 냅두자. 뭐 바뀐다고 내가... 



    국민들의 이런 식의 태도가 지금에 와서 대체 어느 정도의 말도 안되는 황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무관심,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모습,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려 하지 않고 버렸을 때 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어떤 괴물들이 장악해 버리는지 

    그 괴물같은 권력이 민생을 어떤 식으로 파탄내버리고 나라를 얼마나 지독하게 말아먹는지 


    조금씩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하는 것같습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 바뀌어나가다 보면 

    물론 지금 당장은 우리 국민들이 분노에 차서 원하는 그 대로의 이상적인 결과가 막바로 눈앞에 펼쳐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좋아지도록 해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늦었지만, 그래도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과 기대를 놓지 않고 싶어집니다. 

    어쨌든 살아가야 할 땅이니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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