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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 후기

    미생을 다 보고 난 다음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어떤 명제가 있는 것같네요.

     

     

    그 명제들은 흡사, 바둑과 인생을 하나의 평행한 철로처럼 나란히 생각하도록 정리됩니다.  

     

    "미생"의 첫번째 명제는

     

    1. 평범한 우리같은 사람들 모두가 미생이다.

     

    (미생이란 죽었다고도,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바둑돌......즉,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라는 뜻이 됩니다.)

     

    두 번째 테제는

     

    2. 미생에서 완생이 되려 노력하는 삶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세 번째 테제는

     

    3. 의지가 있는 자가 길을 찾아낸다. 라는 것입니다.

     

     

     

    TV 드라마라는 것이 (특히 공중파) 대개가 재벌2세 3세가 나오고 연애, 삼각관계에 신데렐라랑 왕자님 얘기인 경향이 있는데요.

     

    그걸 꼭 잘못됐다고 비판하기도 좀 그런 게, 뭐 당연히 어떤 특별한 얘기를 해야 인기를 끌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월급 받고 하는 이런 현실 자체를 그대로 드라마로 만들면, 그걸 과연 누가 보겠나....?    사실 저부터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헌데 직장인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계약직 사원의 일상과 수모, 

    남녀 차별, 직장 성희롱,  먹고 살기 위해 벌이는 온갖 치열하고 전쟁같은 경쟁,

     

    그 외 갖가지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나간  "미생"의 시청률은 8.2%,

    케이블 드라마로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수치를 기록합니다. (2%만 해도 성공이라고들 하는데 말이죠....)

     

     

     

    1. 평범한 우리같은 사람들 모두가 미생이다.

     

    장그래는 가장 대표적인 "미생" 캐릭터입니다.

     

    계약직 (비정규직) 직원. 

    혹사당하면서 차별당하면서도 단 한마디도 소리 내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일상이 고단한 '미생'일 겁니다.

    물론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수도 있죠. 법적으로는. 헌데 스펙도 없는 고졸 사원에게 정규직 전환이란 바늘끝에 몸을 끼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뿐 아니라

    윗사람들한테도 자기 소신껏 말하고 미움받아 짜투리 일만 하는,  승진도 잘 안 되고 있는 오상식, 지방대를 나와 동기들보다 모두 한 발 느려 동정까지 받고 있는 김동식, 빼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흠없는 것 때문에 흠잡히면서 고생 고생하는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 김부련, 최전무까지도 

    이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미생"인 겁니다.

     

    "완생"인 사람은, 날 때부터 자기 것이 많아 평생 걱정 안하고 살 수 있는 몇 안되는 자들 뿐이죠.  사람들은 그래서, 미생에서 완생으로 두 집을 지은 바둑돌을 만들기 위해 온갖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2. 미생에서 완생이 되려 노력하는 삶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은 하루 하루 엄청난 일을 소화하고 몸을 망칠 정도로 노동을 하고서도, 그 노동에 대해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아마도 내가 없어진다 해도 또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이걸 채울 수 있다. 는 생각 때문인 듯도 하고요.

     

    그러나 미생의 작가는, 영업 3팀 장그래, 자원 2팀 안영이, 섬유1팀 한석율, 철강팀 장백기. 이렇게 마치 바둑판의 돌과 같이 많은........  미생들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같네요.

     

    장그래가 신입사원 피티 때 한석율에게 슬리퍼를 팔면서 직장인들의 생활, 삶에 대해 요약적으로 언급한 열변은,  폭넓은 공감을 주면서  또한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지옥철을 겪으면서 출근하고 제품 수입 수출을 위해 환율과 국제 통상가격을 매일 체크하고 숫자 하나때문에 수많은 절차를 두어 실수를 방지하고

    문장 하나때문에 법적 해석을 검토하고 결과를 집행합니다. 서류만 넘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밀고 당기는 많은 대화가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초라해지기까지 합니다.  ok 전화 한통을 받기 위해 해당국 업무시간까지 밤을 새워 대기하기도 합니다. ...

    실패한 제품은 그대로 실패하게 놔둡니다. 단, 그 실패를 바탕으로 더 좋은 제품을 기획해야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현장은 한석율씨가 생각하는 현장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워커(전투화)를 신고 무거운 기계를 돌리는 공장과 같은, 생산 현장에서 마치 전투를 치르듯 현장 노동자들만큼이나 치열하게 직장인들의 하루는 쉴새없이 돌아갑니다.

     

     

    이러한 직장인들의 고단한 삶이 그 자체로 한없이 아름답다고 이 작품은 웅변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언뜻 봐선 헤어지고 닳고 냄새나는 슬리퍼처럼 비록 볼품이 없다 하더라도 말이죠.

     

     

    바둑판 위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돌은 없어. 돌이 외로워지거나 곤마에 빠졌다는 건

    근거가 부족하거나 수읽기에 실패했을 때지.

     

     

    장그래의 예전 바둑 사범의 이 멘트에서 미생을 관통하는 두 번째 테제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무수히 지나가는 우리 직장인들의 하루하루의 고단한 노동과 땀방울, 그 모두가 확고한 의미를 가진다는 겁니다.

     

     

    3. 의지가 있는 자는 길을 찾아낸다.

     

    "미생"의 후반부를 지배하는 사건은 결국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 문제였는데요. 영업 3팀이 무진장 고민을 하고 애를 쓴 중국 태양열 집열판 사업이 어긋나면서 결국 장그래는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계약  해지. 즉 백수가 됩니다.

     

    오상식은 최전무 중국 사업의 후폭풍으로 인해 끊임없는 압박에 저항하지 못해 결국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게 되는데요.

     

    어떤 어려운 일을 되게끔 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마치 무겁게 사람을 내리누르고 있는 운명에 내가 저항하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요.

     

     

    운명과 그것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피눈물 나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요.

     

    운명에 저항할 수 없고, 해봤자 이젠 소용이 없다고 두 손을 내려놓기에 이르르는 사람들이 지금 참 많은 것같습니다. 

    그러나 미생이라는 제목의 이 잠언적 작품은, 바로 그 부분에 대해 이렇게 웅변하고, 일어나서 움직이라고 소리지르는 듯합니다. 

     

    의지를 가진 자는 비록 운명을 뒤바꾸고 거슬러 오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또다른 길을 결국 찾아낸다는 것이죠.  

     

     

    드라마 미생의 처음에 장그래가 읽는 잠언적 경구가 있습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지를 가지고 미생인 돌을 살리려 수고하고 땀흘리는 자만이 그 길을 갖게 되는 것이죠.

     

    "미생"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도 그 여운은 좀처럼 걷히지 않고 짙게 드리워져 남아 있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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