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Content

    티스토리 뷰

    섹시하다 라는 말은 항상 '선'인가

    제가 가슴수술을 하는 의사로서 문화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참 많은 생각을 하곤 하는데요.

    지금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한번 여쭤봅니다. 


    '섹시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요.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으셨었나요.

    만약 들어본 적이 없다면, 누군가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답변은 아마도 세대별로, 연령별로 많이 갈릴 것같은데요.

     

    10대부터 20대 중후반까지의 여성들은 듣고 기분이 좋았거나 앞으로 듣고 싶다. 라고 대답할 것같습니다. 

    아마도 그 이후 세대의 남, 녀분들은 모두, 전연 그런 소리 그닥 듣고싶지 않다고 하실 것같은데요. 

     

     

     

     

    섹시하다. 라는 말 - 어디까지 왔나

     

    제가 대학생때, 그러니까 뭐 어언 25년쯤 전이겠죠? 당시 미팅(?)해서  만났던 여학생이

    TV에서 섹시하다. 란 말이 나오는 걸 듣고서, "저런 저질스러운 말을 어떻게 여자한테 할 수 있지? 저건 말하자면 - 너는 나로 하여금 성관계를 맺고 싶은 충동이 들도록 만든다.-   라는 뜻이쟎아? 모욕적이야."  라고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즉 섹시하다 라는 말은 거의 성적 모독에 가까운 표현으로 생각했던 거죠.  아마 당시 여학생들이면 거의 비슷하게들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보다도, 그땐 아예 그런 말을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러워하던 시대였죠. 

     

     

     

    지금은 어떤가요. 변해도 너무 변했죠.

    섹시하다. 라는 말은 이제 사회적 생명력을 얻고 여러가지 뜻을 함유한 말이 되어 주변에서 아예 남발이 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건 물론 여성의 외모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겠죠.

    트렌디함이 생명인 아이돌 걸그룹 노래들이나 대표적 힙합 가수들의 노래 가사에는 성적 은유나 상징, 또는 대놓고 표현하는 성적 끌림 등에 관한 표현들이 엄청 쏟아져 나옵니다. 

     

     

     

    요컨대, 남성들에게 성적 관심을 끄는 여성의 외모가 사회적, 일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단계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듯합니다. 반면 제가 대학생 때는 성적이고 자극적인 외모로 어필하는 연예인들은 아예 tv에 얼굴도 별로 못 내밀었던 걸로 기억해요. 

     

    헌데 지금 '섹시하다'라는 표현은 긍정화되어 양지로 나오기도 했지만, 그 의미 또한 옛날과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단어가 표현하는 외연이 굉장히 넓어졌지요.  

    꼭 성적으로 유혹적이라는 것 말고도, 예컨대 초콜렛 복근 등 육체적 건강미를 나타내는 경우도 요즘은 섹시하다라는 단어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더라고요.  

     

     

    이 단어는 트렌디하거나 활달하거나, 관심의 촛점을 놓치지 않는 외모, 성격, 작품, 디자인, 음악, 사진, 등 모든 문화 영역으로 확대 적용되는 경향도 있는 것같애요. 

     

    예를 들어 학위논문을 쓸 때 대학원생들끼리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연구 주제는 너무 진부해. 좀더 섹시한 subject가 없을까?"  

    말하자면 Hot하다. 트렌디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누구나 접근하고 싶어한다. 이런 모든 것에 섹시하다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섹시하다 = '선'이다. 라고 인정할 수도 있겠어요.  좋은 의미인 경우가 많죠.  

    이 경우, 섹시하다 라는 말의 반댓말은 유행에 뒤쳐졌다. 인기가 없다. 구세대적이다. 관심을 끌지 못한다. 등으로도 볼 수 있어요. 

     


    퇴폐성과 섹시함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나 섹시함이 양지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퇴폐적이고 부정적으로 가는 경향 역시 뚜렷합니다.  

    그건 주로 방송과 연예인들이 선도하고 있는데요.

     

    여성 연예인들, 특히 걸그룹 멤버들이나 여성 아나운서 MC들, 기타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을 보면 

    가면 갈수록 '섹시함'으로 어필하려고 목을 메고 있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요.  

     

     

    연예 매니지먼트쪽으로서는 섹시함 = 자극적으로 눈길을 끄는 어떤 낚시라는 개념이 계속 더 강해지고 있는 것같애요.  성적 자극성은 쉽게 눈길을 끌게 마련이고, 온라인상으로 클릭도 많이 나오게 되며 은근히 성적으로 유혹하는 은유나 상징 역시 대중 문화 컨텐츠에는 수도 없이 깔려나가고 있습니다.

     

    섹시해 보이지 못하면 실패다. 끝난 거다. 이런 조급함, 조바심까지 느껴지곤 해요. 

    반드시 어떻게든 자극적으로 노랫말, 의상, 안무, 화장 등 모든 면에서 차별성을 두려고 하다 보니 기껏 좋아지는가 했던 '섹시함'이라는 영역이 그저 '저질화, 저급화'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우리 모두 섹시해 져야 하는 것일까?

     

    섹시하다. 라는 말의 의미가 적어도 이제는 그리 부정적이진 않습니다. 또 아주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좀 더 함축적인 말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 섹시하다. 라는 말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칭찬에 더 가까와져 있죠. 정말 빨리 우리 문화가 변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섹시 라는 코드를 적용해서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하는 문화적 상술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이젠 좀 적절히 제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컨대 모터쇼같은 전시회를 가 보면 자동차를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 선정적인 모델들의 전시회가 되어 있는 것이나, 예컨대 일기예보를 보는데 몸매를 과도하게 드러내는 의상을 입은 캐스터가 방송을 하고 있는 장면은 이젠 좀 식상하는 것같습니다.

     

     

     

    뜬금없이 옷을 많이 벗은 여성 MC가 진행하는 스포츠 중계같은 화면을 보면, 그냥 헛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저렇게 해야 시청률이 올라간다고 보는 건, 컨텐츠 제작자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만한 부분이니까요.

     

    섹시함. 이라는 코드가 더 사회적으로 긍정적이 되려면, 알맹이가 없는데 성적 자극을 주는 껍데기만 갖고 포장하려는 얄팍한 상술부터 빨리 도태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섹시함이라는 게, 나는 이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다. 라는 프라이드를 적절히 표현하는 코드였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나는 가치도 없고 매력도 없다. 라는 데서 오는 텅 빈 자신감을 성적인 자극성으로 포장해서 감추려는 욕구는 과연 없는 걸까요? 

     

    껍데기만 섹시한 척하는 건 보면 바로 티가 나니까 말이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