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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적폐'는 정말 심각한가

    요즘 신문과 각종 인터넷 기사들에는 이른바 '의료 적폐' , '병원 성폭행',  '백색 폭력' 등의 낱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S 병원의 경우 재단 행사에 간호사들을 '동원'하여, 야한 옷을 입혀 춤을 추게 했다. 라는 기사가 나왔고요,  서울의 E 병원의 경우 병원 물품을 개인 사비로 채워 놓도록 했고 심지어 정수기 관리비까지 간호사들한테 각출해서 썼다고들 합니다.

     

     

     

    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수도권에 있는 S 대학교 병원이 비위 수위가 높아 검찰 고발까지 가능했던 성추행을 저지른 교수에게 6개월 정직 처분만을 내렸고, 수술 도중 여성 전공의를 주먹으로 때린 교수는 '엄중 경고'로 끝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남권 B대학 병원 소속 모 교수는 수술 중 간호사의 다리를 걷어차고 폭행했지만 정직 1개월 처분만 받았다고 하고요.

     

    병원이란 곳에서 근무해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뭐 언젠가 터질 만한 기사가 터졌구나 라고 생각할 껍니다. 폐쇄적 조직 문화일수록 들춰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허다하거든요.

     

     

    병원이란 폐쇄적인 공간이고,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런 데에선 그곳만의 관습, 우리만의 조직 문화가 생기게 마련이에요. 청소년들 모여 있는 중고등학교서부터 벌써 그래요. 회사든 대학생 동아리든 군대 병영이든간에 그게 폐쇄적으로 우리끼리만의 문화가 돼 있다면 거긴 시간이 지날수록 밖에서 볼 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입니다. 그게 사람의 특징이고요.

     

    의사들 집단은 가장 폐쇄적인 곳 중 하나입니다. 업무상 특이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이므로 그 이외의 사람들 즉 외부인들과 접촉할 일 자체가 별로 없어요. 온갖 업무를 결정하는 과정도 전적으로 '내부인'들끼리 하게 마련이고, 자연히 위계와 서열이 생깁니다. 그 위계, 서열 속에서만 모든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제가 의과대학생일 때 정형외과 실습을 도는데, 해당 병동이 하나는 10 몇층에 있었고 하나는 5층인가에 있었어요. 회진시 교수님을 따라 우루루 뒤에 붙어서 학생들은 노트를 들고 다니다가, 교수님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계단을 뛰어서 5층까지 내려가야 했지요.

     

    "너희를 가르치시는 노교수님과 감히 너희가 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겠어?" 라는, 해당과 전공의 선생님의 설명이 있었고요.  "학생들, 뛰어!" 라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우리는 교수님이 5층 회진을 시작하기 전까지 가파른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가야 했고, 내려가서는 회진 중 절대 숨을 헐떡거려선 안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여학생 한 명이 계단에서 발목이 꺾여서 부상을 당해 석고 깁스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고요...

     

    이게 서열과 위계 문화가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군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군의관 후보생들을 대상으로 사관학교에서 투스타 장군님께서 연설을 하시는데, 그때가 3월 초였던가 극심한 환절기라서 다들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고 기침들을 하고 있었어요.

    장군께서 연설하시는데 감히 기침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예의가 없는 놈들이라며 "이번 후보생들은 자세가 안 돼 있군" 이라는 평가를 받았었고 그때문인지 유달리 훈련이 혹독했던 기억이 나요.

     

     

    서열, 위계. 이런 게 물론 군대에는 필요하긴 해요.  수많은 사람들을 빨리 통제하고 규율 위반과 이탈이 없도록 하려면 그런 것으로 질서를 잡긴 해야겠죠.  헌데 군대 문화의 문제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 토론이 안 돼요. 윗 사람이 시키는 일이면 무조건 Yes Sir 를 외치면서 발바닥이 안 보이게 뛰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그런 조직에서 그 누가 과연 자율적인 의견 개진을 하고 토론을 요청할 수 있을까요? 

     

    의사들의 컨퍼런스를 보면 junior  교수들은 Senior 교수들이 한 말에 대해 토를 달지를 못해요. 그게 학문의 발전을 위해 과연 도움이 되는 문화인 걸까. 보면서 늘 혀를 쯧쯧 차게끔 만들었죠.

     

    둘째는 개인의 자율성이 침해된다는 점인데 간호사들의 병동비 각출이라거나 재단 행사 동원같은 사건을 보면 그 부작용이 이해가 가요.  병원이란 게 아랫사람 입장에서 도무지 No를 할 수 없는 문화라는 점이에요. 개인의 판단과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조직에서 결정하면 너희는 따라야만 한다. 그게 군대 문화의 특징이기도 해요.   업무 습득 자체가 대물림 학습이라는 관습을 따르기 때문에, 윗 년차, 윗 선생들에게 No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예스맨이 되어야만 모범생으로 취급받는 거죠. 반면 No를 하는 사람, 윗사람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철저히 낙인찍힌다는 점이 있고요,  바로 그런 문화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옷을 입고 휴일날에 나가서 환자들 보호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시키는 대로 다리를 벌리고 춤을 출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게 잘못됐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No 라고 말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져요. 그러니 군대 문화의 세 번째 문제점, 악습이 도무지 청산이 안 된다는 사실도 이해할 만하죠.

     

    병원의 재단 이사장이 의사인 경우, 설립자가 의사인 경우 이런 위계, 서열, 예스맨이 되길 강요하는 군대 문화는 가장 강화됩니다. 자기 스스로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살아 왔고, 그러면서 성공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 아랫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길 강요해요.  나의 후배, 나의 제자, 나의 한참 아랫 서열의 의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학문적인 토론을 한다는 건 머나먼 안드로메다에서나 일어날 일인 겁니다. 

     

    의학은 과학이며 의사들은 과학자들의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과학의 발전이란 늘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대응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일진데 우리나라에서 의사 집단이 이토록 폐쇄적이라는 것은 빨리 바뀌어야 하고 청산되어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나찌 독일에서 폴란드인과 유태인 및 소수 인종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가스실에 넣어 집단적인 학살을 자행했을 때, "이건 아니다" 라고 드러내놓고 반기를 들었던 독일인이 없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원래 독일놈들은 태생이 잔인하고 못된 인간들" 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니에요.  그들은 그저 뭇사람들이 모두 행하는 일에 똑같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참여했을 뿐입니다. 

     

     

    유태인을 가스실에 넣는 일에 있었던 독일인의 전후 인터뷰를 읽어 보면 인간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지시에 따르지 않을 생각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해요.  조직이 그렇게 가고 있다면, 좀처럼 자기 혼자 다르게 행동하기 힘든 게 사람인 것같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 강산이 바뀔 만큼 세월이 지나면서 의사 사회도 병원 내 사회도 간호사들 사회도 계속 변해 나가는 것 역시 맞아요. 점점 더 오픈되어 가고 있고, 지금 이런 기사들이 나오곤 하는 것 역시 그토록 폐쇄적이었던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거죠. 

     

    백색 폭력, 성추행, 성폭행, 병원내의 모든 부조리들에 대해,그 전에는 틀리다고 생각하면서도 No를 못 했던 것에 대해 지금은 점점 더 No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것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바람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병원의 적폐가 청산되려면 일단 폐쇄적인 문화가 어서 개선되고 열려야 합니다,  윗사람들부터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아랫 사람들 역시 자율적인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고 인권적으로 동등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치료, 더 진보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더 활발한 지식의 교류와 열린 토론이 있어야만 우리 병원들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병원 적폐'라는 주제에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저수가 및 국가의 이기적인 병원 희생 강요 역시 중요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거까지 쓰려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같고요,  오늘은 일단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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