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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3일 식약처의 벨라젤 관련 발표에 대하여

    11월 13일. 식품의약품 안전처는 한스바이오메드사의 '벨라젤 '인공유방 보형물의 제조 과정상 허가사항과 상이한 원료를 사용, 제조, 유통한 사실을 확인하고 언론 배포 형태로 조치를 공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1. 허가되지 아니한 원료는 총 5종으로 인체외 사용 의료기기 및 허가된 다른 인체이식 의료기기 사용 원료들임

    2. 벨라젤 인공유방 보형물의 판매중지 및 회수 명령. 병의원에는 제품 사용 중지 요청.

    3. 한스바이오메드에는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인해 업무 정지 등 행정처분 조치할 예정.

    4. 벨라젤 수술받은 환자의 안전성에 대해 자문 청취 결과 문제의 원료 5종은 환자들에 위험성은 낮으나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

    5. 한스바이오메드에 이식환자에 대한 보상 방안을 마련, 제출토록 요청. 진단, 검사비, 부작용시 보상대상, 범위.기간을 조속히 확정하도록 할 계획.

    6. 환자에 대한 장기 모니터링 계획 수립.

    7. 유사한 불법 의료기기 제조 행위 처벌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

     

    와 같습니다.

    즉, 당장 달라지는 것은 벨라젤 보형물 "판매 중지"가 핵심이지요. "회수"라는 것은 병의원에 풀려 있는 재고를 회수하라는 것이지, 환자 몸 속에 들어가 있는 보형물 제품을 회수하라는 뜻은 아니니 착오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가장 많은 환자분들이 궁금해 하시고, 많이 물어보시는 '핵심사항'은 5번인 것같은데요. 식약처의 발표가 아직 "해당 회사에 보상 방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일 뿐이므로, 환자분들에게 구체적 보상 내용 및 치료시술/수술비 지원 내용에 대해 현재로서 명확히 공표해 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답답해하시지만, 식약처가 요청한 한스바이오메드의 "보상 방안"이 나올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같습니다.

     

    뉴스타파의 벨라젤 위법성에 관한 보도가 나온 것이 불과 10여일 전인 11월 3일입니다.  식약처에서 10여일만에 위 사항 정도의 공표문을 낸 것도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일을 처리하는 속도를 생각해 볼 땐) 상당히 이례적으로 빠른 것이라 생각됩니다.  식약처는 건강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재료 등등 진짜 아마도 수십만 수백만 종류의 자잘한 것들에 대해 다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늘 업무 용량 초과인 곳이라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한스바이오메드의 홈페이지를 보면 이 사건에 대한 입장문이 나와 있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고객에게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책임감을 통감한다. 향후 유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내부 시스템을 철저히 조사, 개선하겠다.

    2. 자사 진행 실험에서 포름알데히드는 불검출되었다. 미국 시험기관에도 의뢰하였다.

    3. 우리 회사 제품이 안전하다 하더라도,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된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

    4. 당사 제품을 이용한 고객에 대한 추적관리 및 보상체계를 강화할 것이다. 안전 관리 대책을 수립하겠다.

     

    위의 사항을 정리하면 한스 바이오메드는 해당 제품이 안전하다라는 전제하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 수술환자들에 대한 "제거, 교환" 등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 발언 사항이 없습니다. 당연히 "제거, 교환 수술"에 대한 비용 지원에 대한 부분 역시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식약처의 11.13 공표 사항 역시 이 보형물의 앞으로의 판매를 정지시킨다는 점만 있지, 기 수술환자들에게 제거, 교환을 '권장'한다는 내용 역시 없습니다.

     

    따라서 단위 병원에서는 관련당국인 식약처의 발표도 아직 '조사중'이고 제조판매사도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근거 없이 환자분들에게 "제거,교환 수술"을 전적으로 권장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작년의 앨러간 BI ALCL 사태의 경우와 이 건을 한번 비교해서 반추해 보았습니다. 

    작년 여름,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하고 언론 보도가 나가고, 환자들의 문의가 빗발치는 가운데 얼마 후 앨러간 사에서 아래의 내용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1. (확진자이든 아니든) 보형물 교체의 경우 보형물 무상 지원

    2. 확진자의 경우 수술비, 치료비 일체를 지원 (정해진 금액 이내에서)

    으로 보상의 가닥을 잡아 나갔습니다. 허나 진단비는 (미확진자의 경우) 따로 지원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복수의 병의원들에서 앨러간 바이오셀 수술받으신 환자들 (확진자는 아닌)의 제거 수술을 무료로 진행한 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체'의 경우는 환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고요.

     

    그런데 BI ALCL 사태는 벨라젤의 비허가 원료 사용 사건과는 좀 성격이 많이 다른 것이었어요.

    BI ALCL은 그 전까지 의학적으로 아무도 모르던 병이 학계에서 문제제기만 되어 오다가 비로소 하나의 질병으로 인정받은 것이지요. 우리가 모르던 병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비윤리, 비도덕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어요.

    그런데 벨라젤 사건은 허가를 받지 않은 원료를 몰래 첨가한 사건입니다. 이건 사회적 양심과 도덕의 문제에요. 정직의 문제이고요.

    그러니 이것은 BI ALCL처럼 '질병'의 영역보다는, 무너진 '신뢰'의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제도상의 헛점도 지적돼야 하겠고요. 환자분들이 차분하게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인데요.

     

    만약 벨라젤 제품들이 (한국에서 활발히 팔리기 시작된 게 약 5년 전부터인데요) 실제로 즉각적인 "인체 위해성, 질병 유발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러한 질병들, 증상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벨라젤 보형물로 수술받은 환자들이 다른 보형물 수술 환자분들에 비해 유독 예컨대 모유 수유능력이 저하되었거나, 수유가 불가능했었다거나, 혹은 피부 증상이나 수술 후 통증이나 기타 어떤 인체 건강의 이상을 염려할 특이한 문제들을 여타의 보형물 환자들에 비해 많이 느끼고 있었다면, 그런 건들로 인해 벨라젤 사태가 시작되었다면, 지금쯤 병의원에서는 빨리 환자들을 호출해서 보형물 제거, 혹은 교체를 개시하라고 공지하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벨라젤 사태"를 가만히 보면, 이건 BI ALCL 사태때처럼 어느 나라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거나, 악성 종양 확진자가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더라. 라거나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제조 업체에서 식약처에 허가받은 것 이외의 재료를 자기들 편한 대로 사용한 건이며, 

    그게 회사의 내부자 고발로써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벨라젤의 "비허가 재료 사용"건을 "인체내 위해성"으로 곧바로 연결지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첫째 그렇게 주장할 근거 자료가 우리에게 없어요. 만약 어떤 의사가 섣불리 "볼 것도 없어 이거 위험해. 다 빼." 이렇게 말하고 다니면, 당연히 제조사에선 그 의사에게 허위 사실 유포와 업무 방해로 엄청난 액수의 손해 배상 청구를 걸겠지요.

     

    현재의 벨라젤 비허가 재료 사건은 BI ALCL보다는, 10년 전 일어난 프랑스의 PIP 사태와 좀 더 유사합니다.

     

    PIP는 프랑스의 보형물 제조사로서, 유럽에선 상당히 큰 회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자금난이 생기면서 경영진이 보형물에 의료용 실리콘이 아닌 공업용 실리콘을 첨가해서 제조하도록 한 것입니다.

    2010년. 어떤 의사가 PIP 보형물의 파열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보고한 이후 당국의 조사가 들어가서, 공업용 실리콘 사용 행위가 적발되어 유럽 각국의 보건국에서 PIP의 유방 보형물을 판매 금지, 회수하고 회사의 CEO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징역 4년 형이 선고됩니다.

     

    PIP 의 "공업용 실리콘" 보형물로 수술받은 환자들의 수는 정확한 통계가 잡히질 않는데 프랑스 한 나라에서만 3만 명이 넘었다고 하고요. 이 여성들을 의사들이 열심히 추적 조사하고 건강과 부작용 등을 검사했었어요. 논문도 굉장히 많이 나왔고 지금도 쌓이고 있지요.

    영국 Princess Grace 병원의 Mokbel 박사는 2015년 연구에서 "PIP 보형물은 파열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라고 썼습니다.

     

    이런 여러 학술적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 PIP 보형물로 수술받은 환자들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고, 암이나 자가면역성 질환 등, 특별히 인체 위해성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업용 실리콘 보형물의 문제점이 있긴 있었는데요, 파열율이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보형물에 비해 3배 이상 정도 높았던 것이죠. 그리고 파열된 경우 염증 등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 보였습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국가 보건국의 주도 하에 국립 병원에서 유방암의 재건을 위해 PIP 보형물로 수술받은 경우엔 무상으로 재수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용적 목적으로, 즉 개인적 결정으로 유방 확대 수술을 받은 여성들의 경우는 수술비를 지원받을 수 없습니다.

    아일랜드의 경우는 PIP 보형물로 수술받은 여성들 중 누구도 재수술비를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나라마다 많은 차이가 있지만, 유럽에서 PIP 수술 환자들의 절대 다수가 아직 재수술을 받지 못했지요. 그 이유는 재수술의 비용이 비싸고, 그걸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파산했고 경영자는 감옥에 가 있고..... 수술받은 여성들은 정신적으로 "공업용 실리콘"을 몸 속에 넣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므로 재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미용 목적의 수술에 관해 지원을 해 주지 못합니다. 이미 1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유럽에서 PIP 환자들은 아직도 재수술도 배상도 받지 못하고 법정 투쟁만 길게 이어가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벨라젤 사건은 PIP와 그 결이 유사하긴 하나, 그 정도는 훨씬 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가 단지 신고하지 않고 몰래 어떤 재료를 썼다는 점에서 정직성의 문제가 대두될 수는 있으나, 그게 공업용 실리콘처럼 "어떻게 저런 걸 쓸 수가 있지?"라고 경악할 만한 수준의 재료는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방 보형물과 같은 4등급 의료기기, 인체내 추적대상 보형물에 대해 이토록 무감각하고 불투명하게 제조 과정을 진행했다는 그 태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방 보형물은 최고의 투명성이 요구되는데 회사의 경영진이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지 않았는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엔 우리나라의 허술한 법제도에 관한 부분도 꼭 지적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 제가 생각할 때 벨라젤 보형물 수술 환자분들이 당장 건강에 큰 위해를 겪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입니다. 안전성 확립이 안 돼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실 분들이 있을 수 있으나, 위해성 역시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안전성을 입증하는 학술 논문들도 존재합니다. 장기적 (10년 이상) 안전성 논문이 없는 것이지요.

    환자 입장에서 기분이 좋을 수는 없으나, 지금 당장 긴급하게 재수술을 해야 할 상황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재수술 자체가 리스크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물질의 인체내 위해성이 1이고, 재수술의 위해 가능성이 1.2라면 재수술을 과연 권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렇게 뉴스에 떠들썩하게 나오는, 그런 제품을 갖고 있다는 그 자체에 대해 심리적, 정서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경우엔 제거든 교체든,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재수술 조치에 대해 회사가 아직 "우리가 비용 부담하겠소. 재수술 원하면 하시오"라고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약처 또한 "제조사가 교체, 제거 수술에 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일선 병의원들도 이런 비용에 대해 환자분들에게 어떤 말씀을 드리기 난감합니다.

     

    어떤 분들은 병의원들 역시 가해자가 아니냐, 병의원은 어째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벨라젤 사건에 관해서는 병의원 역시 피해자라고 보셔야 합니다. 병의원은 벨라젤 보형물에 대한 승인 권한이 없으며, 관리 감독할 권한 역시 없습니다. 국가 기관에서 승인을 내 주면 쓰고, 승인 안 내주면 못 쓰는, 그런 피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병의원들이지요. 아마도 추후에 병의원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단, 회사가 그때까지 파산하지 않고 버텨준다면 말이죠.

     

    그러니, 11월 13일 식약처의 공표 사항을 읽고 제가 기 수술 환자분들에게 권고하고 싶은 말씀은, 지금으로선 곧바로 재수술을 시행 결정하기보단, 2차, 3차 발표를 더 기다려 보시는 것이 낫지 않는가 싶습니다.

     

    한스바이오메드사는 앞으로 유방 보형물을 다시 판매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업의 정직성이 의심받기 때문이지요. 상장 회사이니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있고 경영진이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인체내 위해성이 확립되지 않는 한 모든 환자분들에게 전면적으로 제거, 교체 수술을 권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거, 교체 역시도 수술이고 모든 수술은 그 자체의 부작용 (염증, 출혈, 흉터 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보형물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대체 어떤 조치를 해야 되는 건지 불분명하다는 것도 또하나의 문제점입니다.

    "벨라젤 보형물을 오래 갖고 있으면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수술은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해야 돼". 이런 거에 대해 지금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덮어놓고 "응. 벨라겔로 했어? 그럼 누워. 재수술 해" 이렇게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떤 병원들은 "벨라겔 나빠. 000가 더 좋아, 그러니 추가금 싸게 해줄테니 000로 교체 수술 해" 이렇게 환자들을 몰고 가는 식의 상술을 전개할 것입니다. (이미 앨러간 사태때 그러했듯이요)

     

    혹여 피막을 동시 제거하려 한다면, 그 수술은 겨드랑이나 배꼽으로는 어렵고, 유륜이나 밑주름선 절개를 요하고 수술 시간도 길다는 점, 전신마취를 필요로 한다는 점 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따라서 벨라젤 수술 환자분들은

     

    1. 어떤 이상 증상이나 부작용들 (구축, 파열 등...)이 없다면, 일단은 병원을 찾아 주기적인 검진과 면담을 받아 보며 경과를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2. 어떤 이상 증상이나 부작용들이 확실히 있는 있다면 (구축, 파열, 위치/모양의 심한 이상 등등) 제거 혹은 교체 수술에 대해 면담을 받고 고려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스바이오메드의 보상 방안이 (만족할 만큼 책정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확정되기 전까지는, 환자분의 개인 부담 비용이 반드시 생긴다는 점을 꼭 인지하셔야 하겠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식약처 및 제조사의 구체적인 대책들이 발표되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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