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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64주년이 다가오네요. '춘천대첩'을 아시는지요.

    6.25 64주년이 올해라고 하는군요. 

     

    외국에 자꾸 나가다가 보니, 6.25라는 명칭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헌데 Korean War 라고 하면, 거의 다 알아듣습니다.

     

    또, 한국인이라고 얘기하면 Are you from North Korea, or South Korea? 라고 물어보곤 합니다.

    홍콩, 유럽, 캐나다, 호주 등의 외국인들은 남한과 북한이 아주 큰 차이가 있는 사회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혼동하더라고요. 서울이 있는 곳이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물어보면, 아마 제대로 대답하는 외국인은 열 명 중 불과 서너명이 될까말까 할 겁니다.

     

    헌데, 제가 더 놀라는 점이 하나 있어요.

     

    우리 나라 사람조차 한국 전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더라는 거죠.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래요.

    저도 6.25 세대는 아니지만, 제가 역사책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한국 전쟁사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나름 읽어 보았거든요.

     

    한번은 우리 간호사들한테 물어봤어요.

    "6.25 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아니?"

    "..........??" 뭐 꿀 먹은 벙어리들....... 한 명도 연도를 모르더라고요.

     

    한국 전쟁은 미국, 구소련,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과 그 외 캐나다, 터키, 영국, 필리핀 등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참전한 굉장히 큰 전쟁이었어요. 세계대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이요.

     

    한국 전쟁사 중 제가 너무 인상깊게 읽었던 대목이 있어서 한번 얘기해 볼까 해요. 6.25 얘기라고 해서 반공 교과서에나 나오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옛날 얘기가 아니에요.   전쟁사는, 원래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니 더욱 관심 가질 만하다고 생각돼요.

     

     

    흔히들 한국 전쟁은 그 시작과 함께 일방적으로 밀려 개전 불과 3일만에 수도가 함락되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후퇴하기에 바빴던 것으로 알고 있는 것같애요.

     

    근데 그렇지만은 않았던 거죠.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자신만만하게 남하하던 북한군에게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가해 엄청난 승전을 올리기도 했어요. 

     

    그 중 하나가 춘천-홍천 지구의 전투였어요. 이를 춘천대첩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이 전투의 주역은 진짜 사나이에서도 나왔던 육군 6사단 청성부대였어요.

     

    제가  육군 군의관으로 군생활을 했던 곳이 홍천이기도 했는데, 홍천은 교통의 요충지에요.

    지금도 동서/남북을 잇는 44번 국도와 경춘 고속도로가 교차하고 있는 요지입니다.

     

    북한군은 개전 초에 서부전선에선 서울로 밀고 내려가서 삽시간에 수도를 함락시키고, 동부 전선에선 춘천-홍천을 빨리 점령해 수원으로 밀고 들어가서 남한군을 포위해 전쟁을 며칠 안에 다 끝낼 요량이었다고 해요.

     

    남한에선 대통령도 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얼른 피신했고, 서울은 제대로 된 저항한 번 못한채 바로 북한군 손에 떨어졌지만, 강원도쪽에선 그렇질 않았던 거에요. 이건 북한군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죠. 아무 장비도 전력도 없어 보이는 부대에게 완전히 당한 거에요.

     

    국군 청성부대, 6사단과 예하 16 포병대대는 북한군이 소양강 인근,  북한강 하천 부지로 몰려나와 침공해 오자 이를 미리 예측했다는 듯 불벼락과 같은 포격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강의 양안은 가파른 절벽이라 도망칠 수조차 없었던 북한군은 비처럼 내리는 포탄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차례로 쓰러졌고 순식간에 연대의 70%에 달하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때 북한군은 자그마치  6600명이 삽시간에 전사하였고 주력인 전차 18대가 완파되는 등,  파죽지세로 내려오던 적 부대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고 지연시키게 되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동부전선의 주력부대였던 2사단은 부대 자체가 붕괴되다시피 했어요.

     

    이 전투의 의미는 정말 각별하여서, 3일만에 춘천과 수원을 거쳐 서울을 포위하려던 북한군의 작전을 좌절시켰고 이렇게 되자 국군은 한숨을 돌려 전력을 보존하여 한강/낙동강 방어선 구축과 유엔군 참전을 가능케 합니다.

     

    청성부대의 춘천대첩. 이것은 북한군과 남한군의 전력차이는 마치 17대1로 싸우는 싸움과 비슷했다고 할 정도로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도 너무나 빛나는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전쟁/전투 영화를 늘 재미있게 즐겨보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6.25 전쟁에서도 그에 밀리지 않을 만큼 대단한 승리와 전투 장면이 있었던 거에요. 

    미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지 전투에서 바스토뉴를 끝끝내 사수해 낸 101 공수사단의 일화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영화로도 수없이 만들었는데요.

     

     

     

    당시 독일군과 미군간의 전력차는 물론 상당했지만  6.25때 국군과 북한군에 비하면 아예 약과라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이런 대승을 거둔 장면은 아직까지도 얘기되고 회상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미국에는 101 공수사단의 부대 마크를 자켓이나 야상 등에 멋으로 새겨 넣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만, 우리 청성부대의 춘천 대첩은 왜 이렇게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6.25 전쟁 하면 북한군의 대대적인 남침으로 준비가 안 되어 있던 남한군이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유엔군이 참전해서 영웅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것으로만 기억하면 안됩니다.

     

    첫째 6.25전쟁이라는 말부터 빨리 바꿔야 합니다. 한국 전쟁은 6월 25일 개전 초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상황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고요, 

    오히려 조국을 지키기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치고  희생된 용맹했던 국군과 이름도 없는 민초들의 무려 3년에 걸친 영웅적인 항전으로 막아낸 전투로 기억해야 해요.

    맥아더랑 유엔군은 많은 작전을 펼쳤지만, 자기 삶의 터전을 지켜낸 국군의 활약이 없었으면 결국 남한을 지켜낼 수 없었을 거에요.

     

     

    1950년으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64년이나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 전쟁은 아직까지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입니다. 

     

    또 한번의 6.25를 맞는 2014년 많은 사람들이, 맥아더와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은 몰라도 영웅적인 청성부대의 춘천 대첩은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만들어지는데, 왜 6.25 전쟁에 관련한 영화들은 별로 없는지 그것도 잘 이해가 안 가요. 한국 전쟁은, 감춰야 하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전력의 절대 열세 속에서도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해낸 우리 선배, 선열들의 피땀어린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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