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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의 남자 명장면 다시보기

    정이란 대체 무엇이냐. 세상을 향해 묻습니다.

    나는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삶과 죽음을 서로 허락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이라고.

     

    유난히 "명장면"이 많았던 공주의 남자에서도 최고의 장면을 나름 꼽는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450년정도...즉 중세시대의 사대부집안 남녀의 데이트 장면이었죠?  붓에 물을 묻혀 한시로써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죠.  

    우리 시대로 빗대어 비슷한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기타나 피아노 등 악기를 연주하면서 남자가 자기 사랑을 표현하는 노래를 부르고, 여자는 그에 대한 답가를  부르면서 마음속 깊은 심경을 가사를 통해 고백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세속을 떠난 것같은 아름답고 수려한 풍경, 맑은 물, 아무런 사심도 고뇌도 없이 새파란 하늘 밑에서 나누는 두 남녀의 사랑의 대화가, 멋들어진 한시를 통해 절제되어서 표현되고 있었어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앞으로도 생각조차 못할 것같애요.

     

     

    그런데 세령의 답시를 들으면서 저는 내심 놀랐어요. 세령이 바위에 쓰고 의미를 승유가 해석했던 그건 다름아닌 원호문의 "안구사" 중 첫 구절이니까요.

     

    원호문의 안구사

     

    제가 밤을 거의 꼴딱 새우면서 김용의 "신조협려"를 읽었던 게 거의 26년 전이었던 것같애요. 그땐 고등학교에 연합고사라고, 입시가 있었는데 입시 시험 전날 밤에조차 저 책을 읽느라 공부도 안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만큼 정신이 다 빠지도록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었어요.

     

    그 신조협려에서 "정이란 대체 무엇이길래....."로 시작되는 원호문의 안구사는 여섯 권의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어요. 그게 소설 자체의 테마였고, 작가가 세상을 향해, 독자들에게 묻고 싶어하는 바였고, 주인공들의 운명을 대변하는 싯구였다고 할 수 있었어요.

     

     

     

     

    기러기 한마리가 새장사에게 잡혀 죽는 것을 보자 그 짝인 기러기가 그곳을 못 떠나고 맴돌다가 땅에 머리를 부딪쳐 스스로 죽는 것을 본 원호문이 지은 시가 바로 "안구사"예요. 공주의 남자에서는 7회와 24회에 인용되었어요. 그러고보니 공주의 남자는 거의 30년 전에 나온 소설인 신조협려와 여러 부분에서 닮아 있네요.

     

    세령과 승유가 제자와 스승이라는 것도 신조협려의 양과 - 소용녀와 똑같았고요. 둘이 사랑을 느끼면 생명을 빼앗는 (환타지과의 식물인)정화의 독에 중독되어서 억누를 수 없이 느껴지는 사랑을 끊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세령-승유가 원수 집안의 후손이라서 사랑해선 안되는 것과 같았구요.

    나중에 양과는 한쪽 팔을 잃고 외팔이가 된다는 것은 승유가 눈을 잃는 것과 비슷하고요. 두 남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나중에 결국 소박하게 둘만의 가정을 만들어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것도 같아요.

     

    무엇보다도, "정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생과 사를 같이 하게 한단 말인가?" 로 시작되는 안구사가 두 이야기를 똑같이 절묘하게 연결해 표현해주고 있었어요.  

     

    세령이 승유에게 답시로 바위에 쓴 안구사의 첫 소절은, 두 사람의 목숨을 넘어서는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마지막회 끝부분에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말을 달리는 장면에서 안구사는 또다시 낭독되어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드라마의 테마를 한 줄의 시구로써 정리하고 맺는 것이었죠.

     

     

    사랑으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지만, 서로가 같이 있다는 자체로서 너무나 행복한 승유와 세령을 보면서 자꾸만 곱씹게 되는 이 시는 그들의 마음을 정말로 아름답게 대변해주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안구사를 이 드라마에서와는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싶었어요

     

     

    問人間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

     

    세령과 승유는 위 구절을 사랑에 대한 한없는 찬미로 해석하여 낭독하고 있었어요.

    즉, 당신이 없으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뜻을 아주 아름답게 미화해서 부르는 것으로 들렸어요.

    하지만

    적어도 안구사의 원 내용 자체는 사랑에 대한 찬미라고 보긴 어렵지요. 그보다는, 지독한 사랑에 대한 탄식, 원망에 가까운 절규라 할 수 있어요.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게 뭐길래, 이렇게 죽고 살 작정을 할 만큼, 목숨을 버릴 만큼 지독한 것입니까!

    이렇듯 원호문의 안구사는 지독한 운명과 사랑을 원망하는 처절한 의미에 더 가까운 것같애요.

     

    신조협려에선 바로 그런 의미로, 사랑을 잃고 일생을 고독과 분노로 살아가는 여인 (소설 속에서는 적련선자) 이 반복해서 죽는 순간까지도 찢긴 마음으로 이 시를 노래하여 전달하고 있었지요.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이 부르는 안구사


    하지만, 문학이라는 것, 시라는 것은 꼭 정답을 찾는 문제는 아니죠. 죽을 고비를 넘겨 사랑을 이루어낸 세령과 승유의 눈으로 읽은 안구사는 저렇게 아름답게 각색되어서 당연히 그렇게도 읽힐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어요.

     

    이번 포스팅은 일단 여기까지 적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원호문의 안구사를 저 나름대로 해석해서 올려볼까 해요.

    신조협려도, 공주의 남자도 너무나 아름답게 심금을 울리는 작품들이며 이를 꿰뚫는 한 편의 시는 언제나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려 좋아하는 노래처럼 읊조리고 싶어지곤 하니까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아래 글로 계속됩니다.

    http://hihosilver.tistory.com/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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