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Content

    티스토리 뷰

    아는 사람이니까, 신경써서 잘 봐주세요.

    병원을 하면서, 의사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내가 사람 하나를 보내니까, 나랑 친한 사람이니 잘 부탁한다."  라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청탁 아닌 청탁을 받으면서 의사로서는 약간이지만 난감할 때가 꽤 많습니다. 

    꼭 성형외과의가 아니더라도, 치과의사건 신경외과의사건 마찬가지일 껍니다. 


    '아는 사람이니까 더 신경 써 주겠지'  

    '아는 사람이니까 더 잘해 주겠지' 

    '특별히 말을 넣어 놨으니 잘 봐주겠지' 


    이런 것이 너무나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온 다름아닌 우리 고유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보기에 따라 '훈훈한 정'이 살아 있는 게 우리 문화고 우리 삶의 특성이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게 좀 그렇습니다. 다른 질문들이 나오곤 합니다. 


    그럼, 청탁을 받지 않은 환자에게는 신경을 덜 써주는 게 당연한 걸까요? 


    특별히 아는 사람을 통해서 말을 전해 듣지 않은 경우와, 지인에게 부탁/청탁을 받은 경우는 의사로서 다르게 진료하는 게 정상인 것일까? 


    생각하다 보면 좀 심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라는 말은 누가 하더라도 맞는 말이고 원리와 원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해야 마땅하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사회에 안 맞아돌아가는 말도 없습니다. 


    공이 사가 되고 사가 공이 되곤 합니다.  사법부에서 '전관 예우' 라는 단어가 이토록 강력한 사회적 생명력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게 단순히 말뿐인 게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왜 오늘 이 얘기를 하고 있느냐 하면

    '아는 사람이니까 더 신경 써 줘야 한다' 라는 말처럼 위험한 상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는 사람이 소개한 환자이건, 그저 본인 스스로 찾아온 환자건간에, 의사라면 똑같이 중요한 환자로서 신경 쓰고 케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술대에 일단 누운 환자에 대해서는, 메스를 쥔 의사로서는 청탁 받은 환자와 받지 않은 환자간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죠. 모두가 가장 중요한 환자로서 취급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저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오늘도 많은 지인들은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곤 합니다. 


    "누구누구가 가면 잘 해줘라.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도 이러시고요. 

    "000라고 엄마 친구 딸이니까 신경 써서 예쁘게 해 줘라. "


    우리나라에선 예외없이 의사라면 거의 모두가 다, 이런 청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컨대 건강검진을 받거나 어디 검사를 받으러 가려면 일부러 모르는 병원에 가곤 합니다. 사전에 따로 얘기 하나도 없이요.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런 '청탁'을 받을 때, 대답은 잘 해 줍니다. 하지만 건성으로 하는 대답이 많죠. (하도 청탁들을 많이 하니까...)


    저는 우리사회를 망쳐놓고 있는 게, 바로 이런 '아는 사람이니까 더 잘 해 주겠지' 라는 심리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곤 합니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직업 윤리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근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봉건 사회를 대체하고 형성된 이 경제형태에는 분명한 나름의 윤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Professionalism이기도 할 것입니다.  


    즉 이윤을 추구하되, 자신이 만들어내는 재화에 대해 언제나 철저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내가 만든 제품을 쓰더라도 그건 우수하다. 최상을 보증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당한 댓가를 돈으로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해 나가면서 경제를 돌리는  게 자본주의 사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너무 짧다 보니, 사람들이 잘못 이해합니다. 


    '아는 사람한테 돈을 그렇게 받으면 안 되쟎냐.'  '우리가 남인가.'   


    도를 지나쳐서 이런 게 공권력에까지 횡행합니다. 


    국가의 정책적인 문제, 중요한 국방과 외교의 문제의 결정조차도 사적인 연줄을 타고 이루어진다는 것은, professionalism일 턱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분을 통해서 연설에 도움을 좀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이런 정신을 가졌다는 것은, 비상식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중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자기 일에 대한 프로 의식을 놓았다간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자기 위치를 자기 스스로가 부정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 일을 할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다. 라고 스스로 웅변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름 아닌 내 딸이니까, 수업 일수가 모잘라도 학점을 잘 받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니까 법을 어겼어도 처분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 주세요. 


    우리가 남인가, 이 사람아, 다른 환자보다 우리 어머니 먼저 봐주시게.  

    이 환자는 00세무서장님이 잘 아는 사람이니까 신경 써서 잘 봐줘야 할 겁니다. 


    이런 하나둘의 행태들이,  우리 사회를 이모양 이 꼴로 만든 가장 무서운 원인들이 아니었을까요. 


    JTBC의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이 MBC에 있던 시절, 당시 방송국 사정을 잘 알던 사람으로부터 제가 전해 들은 말이 있습니다. 


    "손석희는 인맥을 넓히려 하질 않고 옳다 그르다만 똑똑 자르기 때문에 자기 편이 없다. 외부에서 인기는 많을지 모르지만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은 정이 없다 그러더라." 


    하지만 Professionalism을 구현하는 데 손석희 사장만큼 본분을 다한 사람도 찾기 힘들 줄 압니다. 저널리스트라면 일어난 진짜 사실을 보도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요.   


    그 사실에 내가 아는 사람이 끼어 있다 해도 진실이면 보도해야 하는 것이고  그 사실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유리하게 작용한다 해도 진실이면 보도해야 하는 겁니다. 






    글에  마무리를 지어야겠군요.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할 것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만 잘 해결되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근데 정말 처절할 정도로 상식이 무시돼요.  


    물에 빠진 애들은 해군이든 공군이든 해경이든 보내서 1초라도 빨리 움직여서 구해 와야 된다. 상식이겠죠. 

    근데 사람들 구해 낸 건 몇 대의 어선이 전부였다. 왜 이렇게 상식이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가 됐을까. 


    아는 사람한테 천거받아서 인맥 따라 전문성 없이 청장 임명받고 문제 생기면 죄다 아랫 사람들 자르면서 자리 유지하고 연금 받고 .... 


    가장 실력이 우수한 선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게 맞는데.... 내 딸이니까 국가 대표를 해야지 라는 상식에 어긋난 생각으로 선수 선발까지 되는 요지경 요꼴이면 이제 볼짱 다 본 거죠. 더 이상 막장으로 더 가서는 안됩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하나 막장에서 돌아나와야죠.  의사는 맞아 죽은 사람은 맞아 죽었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되고, 술자리 많이 다니면서 인맥을 쌓아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professionalism으로서 성공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의사는 모름지기 그 어떤 환자라도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 최고의 방법으로 수술을 해내야 할 것이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