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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타 : 배틀 앤젤.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오랫만에 영화 후기를 좀 써볼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블로그의 제목이 "아름다움은 곧 자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알리타를 보면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한참 생각해 봤어요. 단순히 영화 줄거리를 스포하는 건 다른 블로그나 SNS 등에 넘치도록 나와 있으니 저는 오늘은 좀 다른 관점의 후기를 써 보려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많은 관객들이 이렇게들 얘기를 합니다. "주인공 캐릭터가 정말 매력 있다." "알리타 매력 쩐다." 이런 소감들을 오히려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 많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알리타의 매력은 진짜다."
    "알리타에게 홀딱 빠지게 되는 영화"
    이런 이야기들을 SNS에도 어렵쟎게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메인 캐릭터인 "알리타"는 어떤 인물일까? 


    알리타:배틀 앤젤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입니다. 이 캐릭터가 쓰레기장처럼 된 미래의 고철도시에서 살며 쟈렘이라는 유토피아로 올라가길 꿈꾸는  인간의 열망을 대변합니다. 

     

    그러한 열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싸움을 치러야 하는 인간들. 그 싸움의 치열함이 이 영화에서는 화려한 3D SF 화면으로 압도적인 그래픽과 함께 그려지고 있고요. 

    영화에서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광전사 사이보그"였던 주인공 알리타가 점차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고 무수한 싸움에서 두려움 없이 적들과 맞닥뜨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갈수록  "여전사"의 이미지들이 헐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국내 영화에 이르기까지 계속 더 많아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걸크래쉬 화보집같았던 "툼레이더"서부터 시작해서 다소 만화 같았던 우마 서머의 "킬 빌" 

    좀비물이었던 밀러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 .  제니퍼 로렌스의 "헝거 게임".  그리고  갤 가돗의 "원더우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뮬란" "겨울 왕국"등을 상기한다면 여성의 역할이 어떻게 점차 스토리의 주변에서 중앙으로 나오고 있는질 알 수 있어요. 




    즉 수동적이고 보조적이며, 다소곳하고 상냥하여, 그저 예쁨 받고 보호받아야만 했던 여성의 역할이 점차 "왜 여성은 늘 보호받는 입장이어야 하는가?" 라고 외쳐대며,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2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이 짧다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액션만으로 가득 차 있어, 주인공 알리타의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데 버거워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작자가 표현하려 애 쓴 부분이 무엇인지는 알 것같아요.

    알리타가 좋아한 부품 거래꾼 "휴고"가 사이보그인 알리타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는 지금껏 내가 보아온 사람 중 가장 인간적이야."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유토피아 "쟈렘"으로 올라가려 하는 휴고에게 달려가 알리타가 만류하면서 말하죠. "어디에 있든 우리가 함께 있으면 되쟎아"  이런 장면들을 묶어 생각하면, 알리타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인간성이란 것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어요. 


    즉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떤 것이든 하려고 하는, (자기 심장을 내주려 할 정도로) 그런 과격하다고 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으로 인간성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은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가... 


     

    영화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우리 세상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널 사랑해" 라는 말을 한 어떤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에 이르러선 "그때는 널 사랑했었지만" 이라고 말이 바꾸어질 지 모릅니다. 그게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기계로 몸이 이뤄져 있는 이 캐릭터는 자기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서 가지라고 내놓을 정도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왜 주인공 캐릭터는 여자여야 했을까? 


    바로 이런 장면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모성애라는 건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누울 자리도 생각하지 않고 다 내어주는,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그게 여성적 파워의 진짜 본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수없이 많은 관객이 "알리타"를 연호하는 장면은 제니퍼 로렌스의 "헝거 게임"의 어떤 장면을 기억나게 합니다.  민중의 희망이자 영웅인 캣니스 에버딘은 혁명가이자 선동로서의 캐릭터가 됐지만, 알리타는 아직 혁명가는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때문에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일 수는 있지만요. 


     

    지금껏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란, 디즈니 영화의 공주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왔던 게 사실입니다.

    어떤 문화권이건 어릴 때부터 여자 아이들은 상냥함, 세련됨, 부드러움, 얌전함, 조신함. 이런 덕목들을 교육받고 "사랑받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들으며 성장합니다.  용기, 힘, 정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항의, 정치, 혁명, 단호함, 결단력. 이런 덕목들은 여성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성은 "원래가" 다소곳하고 사랑받는 처지에 있어야 행복하며, 그런 여성상이 아름답다는 소릴 듣는 것이다. 

    사실 동서를 막론하고 여성들은 늘 이렇게 교육받아 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여성의 신분을 남성 밑에 두기 위해 의도된 이데올로기였다면? 

    그런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옛날부터 늘 남성들만이 지배해 오던 세상을 공고히 유지하기 위한 남성적 관점일 뿐이었다면? 


    여성들은 누구나 아름답기를 열망합니다. 성적인 아름다움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그렇다면 그런 여성적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성 즉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것일까요?

     

    유혹적인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여성을 보면서 남성들은 "저 여자는 누굴 꼬시려고 저러고 다니는 거냐?" 라는 식으로 떠들어 대곤 합니다. 


    물론 이런 레토릭엔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자연계의 수많은 생물들을 관찰해 보면 수컷이 훨씬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어요.  공작, 사자, 붕어, 사슴 풍뎅이 등에 이르기까지, 암컷을 유혹하고 짝짓기를 유도하려 노력하는 것은 대개가 수컷입니다. 암컷이 아닙니다. 


    인간도 역시 화려하게 치장하기 좋아한 것은 원래는 남성쪽이었어요.

     

    프랑스 루이 16세의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유럽에서 스타킹도 하이힐도, 원래는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중세 시대엔 여성들이 자기 몸매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꽁꽁 싸매고 폭넓은 치마를 입도록 만들었어요. 아랍 문화권쪽에선 여전히 그렇고 한국은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고 외출을 해야 했죠.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화려함과 꾸미는 치장은 점차 여성들을 위한 것이 되어 갔습니다.


    유방과 골반은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옷차림들도 많아졌고요.

    유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확대수술과 골반을 부각시키기 위해 복부 및 허벅지의 지방흡입같은 성형수술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수술이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째서 그런 열망이  남성에게는 없고 여성에게만 남아 있는 것일까요?

    그건 혹시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문화적으로 주입된 코드는 아니었을까요? 


    아름답지 못하면 좋은 남자를 못 만난다. 
    여성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하면 주목받지 못한다. 
    성적으로 끌리는 외모를 갖지 못하면 외롭게 늙어갈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적, 문화적으로 여성들의 관념을 지배하는 생각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이유도 근거도 전혀 없습니다. 


    여성들만이 24인치 허리를 만들겠다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참는 것도,

    더운 여름에도 달라붙는 상의를 입고 추워도 꽉 끼는 청바지를 입는 것도,

    그리고 남성들은 단지 그런 여성들의 외모를 함부로 손가락질하며 평가나 하는 이런 모든 문화적 상황들은 그 정체가 매우 모호한 것입니다. 


    옛 동화에 나오는 공주들이나 신데렐라 등과는 달리 '알리타'는, 여성은 가냘프고 약하고 섬세하기만 해야 아름답다는 명제에 저항하는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눈물을 칼로 베어 버리고 현상금 사냥꾼들을 선동하기도 하며 사람들이 숭배하는 존재에 대한 반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어떤 남자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 남자의 지배를 받지는 않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 채 다시 태어난 알리타는, 자신의 주관과 자신의 철학과 자신의 삶을 찾아 나가려 하는 모든 여성의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진정한 자신의 힘을 모르는 채 살다가 그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런 것을 상상력으로 채색해 그리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여성은 하이힐을 신고 머리를 기르는 것을 좋아할 수 있지만, 어떤 여성은 짧은 머리에 러닝화를 좋아할 수도 있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각자의 여성들이 스스로 답을 내고 표현할 수 있지, 그 사회를 이루는 집단이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저는 눈매에 뚜렷한 개성이 있는 여성이 "눈매교정술"을 해주세요. "뒷트임"을 해주세요 라며 면담을 오면 아주 확실하게 거절하곤 합니다. 


    -- 당신 눈은 당신만의 매력이 있다. 남들과 구분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되지 말고  너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라. --  


    저같은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사람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더욱 살려주는 일일 뿐입니다.

    결코 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다른 코드의 매력을 갑자기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알리타에게는 알리타로서의 매력이 있는 것이지, 엘사가 되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성형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의 DNA를 바꾸거나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매력이 무엇인질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여성 사이보그의 SF 블록버스터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해 본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글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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