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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판도라' 후기.

    오랫만에 영화를 하나 보게 되었다.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 였다. 


    지난 주에 개봉을 했지만 이미 200만 관객을 넘겼다고 하고 잠깐 새에 이미, 내용도 유명해졌다. 세월호 참사시 정부의 무능한 대응과 콘트롤 타워 부재, 대통령을 배제한 비선들의 비양심적인 대응 등 요즘의 세태를 풍자하는 듯한 내용들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같기도 하다. 





    촬영시 원래 이경영의 역할은 '비서실장'이었는데, 나중에 편집을 거치면서 총리로 바뀌었고 (2014년 촬영 당시 비서실장은 김기춘이었다.......).  재혁의 대사 중 "국민을 사지로 모는 이게 나랍니까?" 라고 항변하는 부분 등등도 삭제되었다. 

    대통령 역할인 김명민의 촬영 씬도 많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게 과연 우연일지. 



    한국 수력 원자력에서 판도라의 촬영에 비협조적이었으며 계속 간섭하고 방해해 왔다는 점 역시 여러 번 뉴스로 기사화되었으며, 촬영이 끝난 후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개봉하게 된 점도 ... 여러 면에서 판도라를 둘러싼 의혹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또한 올해 울산-경주권의 사상 최대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 데 대해 국민들이 '원전은 괜챦을까' 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불안해하는 타이밍 역시 기묘하다 할 수 있겠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얘기하고 있고 알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판도라'의 무서운 괴물, 꺼지지 않는 불 원자로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불이 피워짐으로 인해 살아가는 사람들에 더 관심을 두고 얘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 속에서 정진영 (좌천된 발전소장)은 노후된 한빛 원자로 1호기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제기한다. 결국 강진과 원자로 사고가 생기고 폭발이 일어나자 노심 냉각을 위해 소방대원들과 함께 필사적인 분투를 벌이는데.... 그런 분투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결국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건 다름 아닌 원자력 발전소의 경영주라고도 할 수 있는 한수원장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가 더 중요한 것같다. 왜 우리는 이 좁은 나라에 이렇게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짓게 되었는지, 왜 그 많은 양의 핵폐기물을 버릴 데도 없이 좁은 데다 쌓아 놓게 되었는지.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진도 9.0의 강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1~3호기의 전원이 멈추면서 원자로를 식혀주는 긴급 노심 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3월 12일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14일에는 원전 3호기에서도 수소폭발, 15일에는 원전 2호기 수소폭발, 4호기도 수소폭발, 그리고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에 화재가 발생해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대량으로 외부 누출됐다. 


    원자로에 전력을 다시 복구하고 냉각을 시키는 데는 9일이 걸렸다. 그러나 냉각수로 뿌렸던 바닷물이 오염수로 누출되면서 주변 바다가 오염되기 시작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고농도 방사선 물질을 전세계로 뿌렸다 할 수 있다. 골수암을 일으키는 스트론튬을 비롯해 우라늄 핵분열시에 생기는 부산물들인 세슘, 요오드, 플루토늄 등이 마구잡이로 토양에서 검출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내린 비에도 방사성 세슘이 검출된다... 




    한수원의 홍보 자료들 중, '후쿠시마 원전은 10센티짜리 판넬로 덮여 있지만 고리 원전은 그 20배 가까이 되는 보다 튼튼한 시설로 가로막혀 있고 어떤 강한 지진이 일어나도 견딜 수 있다며 안심하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원전,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 어쩌냐" 라는 질문에 대해 한수원은 "모르는 소리 말아라, 생긴 지 40년 된 고리 원전 아무 문제 없다. 후쿠시마는 터졌지만 고리가 터질 리는 없다." 라고 항변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나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매일 수술을 앞둔 환자들과 상담을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수술시에 마취 사고나 또는 어떠 어떠한 부작용 등에 대해 걱정을 하며 수술대에 오르는 것을 본다. 


    환자들이 하는 걱정의 이유에는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들이 훨씬 많지만, 걱정하는 이유는 이해가 충분히 간다. 나 역시 디스크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 본 적이 있고,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기억이 생생히 나니까... 


    수술의 안전, 부작용 발생 여부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0% 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발생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라고 나는 이야기하곤 한다. 흔히 전문가들은,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실을 설명하는 것을 피로해 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똑같은 '근거 없는' 질문들을 계속 받다 보면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수없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듣는 사람들이 전문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말을 얼버무리거나 진실을 은폐하려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시 환자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생길만한 방법을 피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나는 환자들에게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수술을 피하도록 권유한다. 더 작게, 될 수 있으면 더 빨리 끝날 수 있는 방법으로, 더 리스크가 적은 수술쪽을 선택하도록 자꾸 권유하곤 한다. 


    제 아무리 의사가 테크닉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고, 몇 년동안 계속 아무 문제가 없었던 방법을 쓴다 하더라도, 그래도 예상치 못한 문제는 생길 수 있다. 그것이 세상 일이다. 그러니 그런 염려를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문제가 생겨봤자 큰 부작용으로 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게 나는 가장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과 병원들은 유혹을 받는다. 짧게 끝내고 간단하게 끝내는 수술일수록 환자들에게 많은 돈을 청구하기 힘들어진다. 더 큰 수술일수록, 더 많은 약과 더 많은 procedure와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갈수록, 더 오래 입원하게 할수록,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유혹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병원 역시 자꾸 그런 유혹에 넘어가곤 한다.  


    한수원이 발표하는 내용이 모두 맞을 수도 있다. 후쿠시마는 터졌지만, 고리 원전은 절대로 안 터질 지도 모른다. 규모 9.0의 강진이 그쪽을 덮치고 쓰나미가 해안을 쓸어버려도 그래도 고리만은, 한국 원전만은 세계 최고라서 냉각장치가 고장 안 나고 핵 폐기물도 하나도 누출 안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판도라' 같은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되는 게 한수원 입장에서는 굉장히 심기가 안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료사고든, 발전소 사고든  0%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잘 만든 프로그램도 에러가 나고 프로그래머들은 그걸 수정해야 하고 또 버그가 생기고 또 수정하곤 한다. 

    원전에서 그런 문제가 생기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지 않는가?

     

    가장 현명한 방법은, 원전을 더 짓지 말고 제한하고, 낡은 것은 쓰지 말고, 줄여나가는 것이 아닐까.

    교통사고가 안 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물론 조심해서 운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꼭 필요할 때만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다.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과 잇따른 수백회의 여진은, 이제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고리, 월성, 한빛, 한울. ... 이들이,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을 뒤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0%가 아니라면,  그 가능성이 수치적으로 있고 그에 뒷따르는 재앙이 통제할 수 없는 정도라 하면  

    가능성이 있는 원인.  즉 원자로의 수를 순차적으로 줄여 나가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시민들에게는 쓸데 없는 전기는 쓰지 않도록 홍보하고, 특히 산업용 전기의 낭비가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대체 에너지를 들여오고......    우회로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로지 원자로만이 답이다. 우리는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나올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  라는 외곬수 대답만이 앵무새처럼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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