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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들은 부도덕한가.

    우리나라에선, 의사들이라는 집단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같은데, 특히 우리는 어떤 집단을 평가할 때 단 한 명의 인격으로 단순화해서 말해버리곤 해요.

    즉 저 집단은 예의가 없다. 저 집단은 부도덕하다. 저 집단은 타락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마는데 실제로 그 집단을 이해하는데는 이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저 집단은 이러이러해서 저런 현상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라고 객관화하고 통찰해야 합니다.

     

    예컨대 아침 기온은 16도정도에 머무르고 한낮에는 30도까지 치솟는 날을 두고, 오늘은 덥다. 혹은 선선하다. 이런 말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건대, "의사들은 썩었어.그들은 부도덕해" 라는 말도 그와 비슷합니다.

     

     

     

     

    의사라는 집단은 굉장히 크고 수많은 조각 조각들로 나뉘어져 있어요. 의사집단에 대해 통으로 윤리적인 비난을 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요.

     

    의사는 수련의들, 상급병원(대학병원, 대형병원) 스텝들, 2차 병원 (중소병원) 봉직의들, 2차~3차 병원의 경영자들 (병원협회), 1차 병원의 운영자들(개원의), 개원가의 봉직의들, 시군구 보건소 혹은 국가 운영 의료재단의 종사의 (공무원 혹은 준공무원들), 인의협과 같은 의사 시민 단체까지, 등등 정말 여러 편린들이 있어요.

     

    이런 의사집단은 단 하나의 의료 정책에 대해서조차도 서로 서로 이견이 엄청 많습니다. 언론에는 의사들이 아주 강력한 이익 집단으로 비춰지는 수가 많은데 실지로는 의사 협회는 압력 단체 역할을 제대로 한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그 내부에서 회원들끼리 이견이 엄청 많거든요.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의사 집단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아주 공통된 분모가 하나 있어요.

    듣는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가겠지만, 그건 '피해의식' 입니다.

     

    의사들은, 피해의식으로 한 묶음으로 엮여 있어요.

    의사가 피해자라면, 가해자는 과연 누굴까요?

    가해자는 당연히 국가와 심사평가원 등 보건 당국이죠. 즉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기관 집단이랑은 달라서 의사는 애초에 정치력이 없는 신분이거든요.

     

    그러니 보건 당국에서 결정하는 대로 모두 끌려가고 그 모든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데서 오는 허탈감이 상상 이상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요?

     

     

    과거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시대를 이어오면서 전국민 건강 보험이 확장 시행되어 모든 의료 수가를 버스요금처럼 정부에서 지정하게 되었는데요. . 
    그게 생기기 전까지는 의사들은 상당한 부를 누렸다 할 수 있죠. 의사 = 돈이라는 등식이 그때 생긴 것이고요.

     

    대한민국같은 이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커버가 이뤄지는 국가 의료 보험 제도는 전세계에 드물어요.

    근데 제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제도와 법이란, 한쪽에 혜택을 주면 한쪽엔 재앙을 주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택시 기본요금을 인상시키는 법이 통과됐다.

    그럼 원가도 안 나와 업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던 업계에는 좋은 일이지만 택시를 자주 타야 하는 예컨대 접대가 많은 영업사원들이라면 피해가 막심하겠죠? 
    또 대리 운전 업계에는 오히려 청신호가 될 꺼고요.

     

    이렇게 제도라는 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교차하기 때문에 이쪽 저쪽 얘기를 전부 다 들어줘야 해요. 


    최소한 들어주기라도 하고 그리고 나서 제도가 결정돼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존립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실상 이러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녜요.

     

     

    그러나 의료 수가 통제 제도. 이것은 어떻게 이토록 수진자, 환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일사천리 진행될 수 있었을까요?

    보험의 역사가 긴 서구 유럽에서조차도 길게는 수백년이 걸리고 미국은 지금도 의회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이런 첨예한 문제가 말이죠.

    그건 일방적으로 의료 공급자들, 즉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밀어부쳐져 왔기 때문입니다. 군부 정권 때 어디 누가 대통령이 하겠다는 거에 대해 끽소리나 했나요 ...

     

    그런데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더 심해져 왔어요. 왜냐. 행정부나 입법부 입장에서는 이건 복지 공약, 복지 정책에 해당하거든요. 복지 수준을 높여야만 자기들 표가 붙어 있게 마련인데...

     

    만약 예컨대, "우리나라 의료수가가 OECD 국가 최하위이고, 자연분만을 했을 경우 진료수가가 20만 3천원이다. 이는 동물병원 애완견 분만 비용보다도 낮고 미국/일본의 10분의 1수준이다. 따라서 분만 수가를 현실화하겠다."

    라고 입법 예고를 했다고 쳐요.

     

    해당 보건복지 위원회에 속한 국회의원들한테는 국민들로부터 어떤 반응들이 올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찬성표 던진 의원들한테 비난 문자 폭탄만 수백만 통 갈 껍니다.

     

     

    미국의 분만 비용은 우리나라돈으로 1천만원에 육박합니다. 복지국가소리를 듣는 네덜란드가 300만원정도.

    맹장수술 수가도 27만원인데요. 


    저런 저수가 자체도 심사평가원에서 수가 지급 안 해주고 삭감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심평원은 병의원이 과잉진료를 했다고 평가되면 돈을 병원에 안 주거든요. 


    그리고 병원들의 불만이 터지는 이유는 뭐냐 하면, 왜 삭감이 이뤄졌는지 이유를 통고 안 해줘요. 그냥 일단 돈 안 주고 나중에 따지면 서류 갖춰서 절차 밟으라고 하고요...

     

    이런 데서 의사들의 피해의식은 더 뿌리가 점점 깊어왔어요. 
    지금도 더 깊어지고 있고요.

     

    우리나라의 전국민 건강보험이 공공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라는 면에서, 공공재를 투입하고 국가가 투자하는 과정은 왜 생략돼 있느냐는 비판과 불만의 소리도 사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죠.

     

    예를 들어 쌀이 너무 심하게 풍년이 들어 가격이 모래값만도 못하게 폭락하게 생겼다.

    그럼 쌀농사 짓는 농가들은 망하는 거쟎아요? 이 경우 국가가 쌀을 제값에 농민들로부터 수매해 국민들에게는 싸게 풀죠.... 이런 게 세금이 있는 이유고 공적 자금이 필요한 이유인데...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보게 된 업종, 업계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공공재로써 이를 보완, 보상해주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 상식입니다. 버스나 통근 지하철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오로지!!! 의료 분야만 그게 빠져 있어요. 지금 정도의 전국민 강제 보험 시스템이면 의료는 하나의 공공 서비스라고 봐도 무방한데...

    상식적으로 둘 중에 하나여야 해요.

     

    백프로 사비로 이 업종에 뛰어들어서 모든 장비와 공간, 서비스
    제공을 다 하고 있다. 그럼 국민의 사유재산 보호 원칙에 의거 그런 데다 공적 간섭이나 제한을 심하게 해선 안 돼죠.

     

    그러나 이 업종은 공공이익을 위해 너무 중요해. 그럼 국가가 공적 간섭을 사사건건 하는 대신, 적자 보전을 해주거나 지원제도가 함께 마련돼 있어야 공평한 거죠... 


    그러나 지금 의료 분야는 지원은 전무하고 오로지 간섭과 제한뿐입니다.

     

    오로지 의료 경영에 뛰어들었다고 하면, 자기 힘으로 저수가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뿐. 살아남지 못하면 끝장입니다.

     

    그렇게 우리 의료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관련된 모든 의사 결정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고, 행정부와 국회는 표가 떨어질까봐 계속 수가를 현실화 못하고 있고, 국민들은 조금만 더 비용이 올라가면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 의사 집단의 피해의식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겁니다.

     

    더이상 견디지 못한 의사들은 자기가 평생 공부하고 커리어를 쌓아 왔던 진료과를 포기하고, 미용, 피부 성형쪽으로 뛰어들어서 조금이라도 저수가의 늪에서 빠져나가보려고 안간힘을 쓰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실패하지요... 이미 너무 많은 병원들이 열려 있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거든요.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부도덕한 집단이다.'

    실제 돈만 밝히는 병원 운영자도 있긴 할 껍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곳. 그 속에는 곪아 터지려고 하는 큰 환부 덩어리가 있어요. 사실 보건 당국도 뭐가 문제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겁니다. 알면서도, 손을 대지는 못하고 있을 꺼고요....

     

    문득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일부 내용이 떠오르는데요.

     

     

    로마가 중세에 이르기까지 보존된 천 년의 제국을 어떻게 이룩했는가. 그리고 어째서 소리소문도 없이 소멸돼 버렸는가.

    로마 사람들이 남들보다 똑똑해서 흥했던 것도,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없어진 것도 아니었어요. 


    그들이 가진 제도와 문화가 고대 사회의 제국을 영위하기에 알맞았던 것이고, 중세를 지나가니까 그 제도와 문화는 이제 의미 없어져서 쇠한 것이죠.

     

    의사라는 집단 역시도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의료 분쟁이 자꾸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잘 해부해보면, 그 속에는 훨씬 더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씀의 요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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