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신문이랑 TV에 성형외과 얘기가 안 나오는 날이 별로 없네요....
의료사고, 외국인 환자 뇌사, 과대광고, 유령수술, 수술실에서 벌인 파티와 같은 윤리 문제 등등.
대체 왜 이렇게 조용하질 못하고 요란한 걸까?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요.
오늘은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실은 터질만한 일들이 터진 거라고 생각해요.
단 한 가지 원인만으로 이런 세태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1차적으로 이런 문제의 원인은 병원에 가장 크게 있지만 환자들, 국민들의 문화와 인식적인 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병원 및 의료계의 문제를 오랫동안 방치해 온 당국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IMF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던 2000년대 초반경 성형외과는 대단한 호황을 누렸습니다. 사람들의 미용적 관심사가 하루가 다르게 커졌고 그에 부응하여 우후죽순으로 개원 열풍이 불었고 자본을 축적한 병원들은 서서히 몸집을 불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 환자 모집책 (브로커)들의 출현, 성형 광고의 시작
많은 사람들은 이런 성형 열풍에서 돈이 보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미용실 원장, 에스테틱 사장, 유흥주점의 관련자들 (마담 또는 사장) 등은 이른바 성형외과 '사무장'을 자처하고 병원에 환자를 공급한 후 그 수술비의 일정부분 (약 20~30%)을 커미션으로 수령하는 식의 유착관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늘어나는 미용성형 수요에 발맞춰 수요자들은 성형수술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을 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원들에서는 유명 잡지나 신문, 케이블 TV 등에 앞다투어 광고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광고를 많이 하는 병원, 즉 광고비를 많이 쓰는 의사일수록 유명의사가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생긴 많은 수입으로 당시 유명 의사들은 병원을 아주 턱없이 대형화시키기에 이릅니다.
안타깝게도, 그와 정확히 반비례하여 의사 한 명이 환자 한 명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만 갔습니다. 의료라 함은, 몸에 어떤 문제를 가진 환자가 의사와 만나 충분히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 후에도 의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대형화된 병원은 필연적으로 분업화를 하게 되어 있는데요.
모집책, 광고 담당자, 상담자, 수술후 치료 책임자. 이런 식으로 철저히 경영 마인드 아래 분업된 병원에서 환자가 자신을 수술한 의사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2. 병원의 대형화/분업화, 상담실장의 인센티브 제도의 출현
상담실장은 의사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됩니다. 상담실장의 유래는 사실 그 당시에 대형화된 치과 체인점에서 유래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많은 환자를 처리해야만 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형 치과병원에서, 경영 담당자들은 치위생사의 상담 제도를 도입합니다. 즉, 상담자가 환자 치아에 맞는 치료를 결정하고 치료비 '견적'을 정해 주고 환자가 돈을 계산하면 의사는 단지 치아 치료만 하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러한 제도를 당시 성형외과에서는 그대로 흡수했습니다. 즉, 환자가 어떤 수술을 할 지를 상담실장이 선행상담시 거의 정해놓고 의사는 그것을 확인만 해주는 것입니다.
상담실장들은 "판매 인센티브"를 받기 시작합니다.
환자가 상담자와 가격을 '흥정'한 후 수술비를 결제했다면, 상담실장은 월말에 자신이 올린 매출을 결산하여 총 성사 수술비의 일정 퍼센티지를 병원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한 걸까요?
대형화된 성형외과 병원들은 2000년 초중반 당시 밤에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수술이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경제적 가치 판단 기준에 따라 의사는 수술만 한다. 환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려면 인력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 역할을 담당하는 인력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매출을 많이 올리는 '능력있는' 실장들은 연봉이 1억이 넘어가기 시작하고, 여러 병원에서 모셔오려고 하여 불려다니는 대우를 받게 됩니다.
병원 상담실장의 인센티브제도는 여러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의료는 그 특성상 다른 어떤 재화의 판매와는 다른 속성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보험 영업사원과 접촉한 후 보험을 여러 개를 들었다고 해서 뭐 그리 큰 부작용이 생긴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병원에서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너무 많은 수술을 권해서 하게 된다면 환자에게 부작용이 생길 위험성은 그에 비례하여 계속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담실장은 인센티브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즉 현금 유도, 끼워팔기, 가격 깎아주기 등등) 환자에게 수술을 많이 권할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겁니다.
둘째, 빨리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환자가 결정을 빨리 내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환자가 해당 수술에 대해 제대로 성숙한 고민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상담실장의 "말빨 (판매 영업력)"에 의해 서둘러 수술을 결정해서 받게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실장은 '능력 있는' 실장으로 인정받고 많은 돈을 받아갔겠죠. 하지만 환자로서는 당연히 수술 후의 불만족 및 문제 사항은 증가하게 마련입니다.
이 문제는 너무 분명합니다. 상담실장이 의사의 역할을 보조는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의사 대체를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인센티브 제도 역시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3. 병원들의 경쟁적인 광고 '마케팅'의 시작
이것은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을 유치하는 업체들은 자신들이 홍보하는 병원 및 의사가 실력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수술을 경험했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전문의 자격증은 획득하였는지, 지금까지 어떤 사고를 저질렀는지 등에 어떤 관심도 있을 턱이 없습니다. 오로지 더 많은 광고비를 제공하는 병원에 더 많은 지면을 할당하여 광고를 실어줄 따름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버추어'라고 불렸던 인터넷 포털의 키워드 광고였습니다.
예를 들어 '사각턱 수술' 이라는 키워드가 있다고 치면, 이 키워드를 유명 인터넷 포털 (네xx, 다x, 네00 등)에 검색시 맨 위에 그 병원이 올라가게 하는 데에 경매를 걸어서 제일 많은 돈을 지불하는 병원이 실시간으로 1위 자리에 뜨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버추어 광고는 돈을 많이 투자하는 병원에서 가장 많은 소비자 (즉 환자들)에게 자기 병원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대형 병원에서는 이러한 키워드 광고에 한 달에 몇억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소비자들이 병원에 대한 분별력을 가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전문의 자격증도 없고 수술에 대한 경험조차 없는 이도 돈만 많이 투자할 수 있으면 유명 의사로 네xx 1면에 자기 병원 이름을 띄우고 다수의 대중들에게 일류 병원이라고 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료는 '마케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몇 억원씩 '오버추어'광고, 잡지 광고를 하여 환자를 끌어대서 상담실장에게 인센티브를 지불하고 수술대에 환자를 눕히는 식으로 '맛을 들이기' 시작한 한국의 병원들은, 필연적으로 추악한 결과를 낳게 될 수밖에는 없는 방향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던 것이죠.
그리고 그 추악한 결과의 희생자는, 성형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는, 병원 마케팅 담당자들이 살포한 원색적인 광고 전단지와 상담실장들의 '영업력'에 그대로 믿고 수술을 맡긴 순진 무구한 환자들이었습니다.
수술실에서 환자를 무시하고 딴 짓을 하다 일어난 어이없는 윤리적 문제, 공장처럼 수술실을 돌리다가 결국 환자를 뇌사로 만든 의료 사고, 등등이 모두 이런 아주 기형적인 한국 성형외과의 대형화 과정에 그 싹이 있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4. 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렇게 심각한 문제들이 잉태되고 있는 것을 과연 당국은 몰랐을까요?
어떤 문제가 나올 때마다 공직자들이 답하는 내용들은 1년 10년.... 해가 바뀌어도 판에 박은 듯 매번 똑같아서 쓴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작년 배 가라앉은 사건 항공기 사고 펜션에 불난 사고 등 모든 그 어떤 사건 사고에도 똑같은 대답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다."
국민으로서는 정말 지겨운 대답이지만, 저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서울시 강남구에는 성형외과 의원만 제 기억이 맞다면 1천개가 넘게 있을 겁니다. 그 외에 다른 과까지 합하면 몇 천개가 있을 텐데요.
이를 관리 감독하는 강남구 보건소 의약과 직원은 딱 3명입니다.
그나마 강남구나 되니까 3명이지, 예산이 훨씬 부족한 다른 구에선 딱 1명이 일합니다.
지금 성형외과 사건 사고가 너무 사회적 이슈, 공론화가 되고 있기 때문에, 급기야 보건 복지부에서 이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골자는 과대 광고의 금지, 유령 수술에 대한 처벌 등이지만,
정부가 제발 전문가 집단에게 귀를 기울여서 법을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고 보통은 책상에 앉아있는 높은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로만 결정납니다.
성형외과의 사건 사고, 과대광고 및 윤리 문제, 사고 병원/실력이 없는 의사 걸러내기 등은, 의사들 자체 단체에 자정력을 기대해 공권력 일부를 행사하도록 해 주는 게 정답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일의 진짜 핵심적인 문제점은 의사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병원에서 왜 저런 일이 일어난 건지, 저 사고는 왜 생긴 건지, 저 병원은 왜 저렇게 무리하게 막장 광고를 하고 있는 건지.
의사들끼리는 사실 대부분 다 알고 있습니다.
의사 협회와 성형외과 의사 협회에 잘못된 광고 및 행동을 한 의사와 병원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5. 성형수술을 희망하는 국민들 (즉 환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적인 성향을 '냄비 근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곤 하는데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엄청나게 그에 몰두하고 판단을 내리고 욕도 하고 하다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가면 싹 다 잊어버리는 성향이 있다는 겁니다.
유령수술 하다 의료사고 난 병원 이야기가 가령 신문에 났다 치면, 그때에는 저런 병원 망해야 된다며 갖은 저주를 다 퍼붓다가도 몇 달만 지나고 나면 싹 다 잊어버립니다.
그 병원은 간판만 바꿔서 또 잘만 영업하게 됩니다.
독일 사람들은 80년이 지난 지금에조차 2차 대전시 소수민족 학살범을 끈질기게 찾아내서 재판에 세우고 있다고 하죠. 원칙을 소중히 여긴다는 얘기입니다.
성형수술과 같이 자기 몸에 칼을 대는 문제에 관해서는, 원칙을 존중하는 문화와 오랫동안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인터넷 몇 번 찾아보고서 상담실장이랑 몇 마디 나눠 본 후 양악 수술 등 큰 수술을 퍼뜩 결정해 버려서야..... 안 되겠죠?
성형은 의료입니다. 그리고 수술이란 자기 몸에 칼을 대는 일입니다. 그 칼을 자기 몸에 대는 의사선생과 자꾸 자꾸 얘기를 나눠봐야 합니다. 그 의사가 자기에게 얼마나 신경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인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딱 자기 할 얘기만 간단히 하고 인센티브 받는 상담실장에게 떠넘기고 있는지,
그런 판단을 환자들 본인들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미용수술에선 의사와 교감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그래야 후회를 안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 몸이 망가지면 가장 고통받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은 우리 나라 성형외과의 현실이 어째서 이정도까지 되고 말았을까를 한참 생각하다가 보시는 바와 같이 이리 긴 글을 쓰게 되었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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