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종합 예술입니다.
그러므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이 영화는 이렇다. 저렇다. 라고 한 마디로 평가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스토리가 엉망인 영화가, 음악 (OST)이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론 디즈니의 "겨울왕국"이 그랬습니다 ) 혹은 영화가 갖고 있는 주제가 너무 사람을 몰입시켜서, 영화적 기타 요소들이 다 별로라 해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이 저한테는 그랬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 연출 영화이니 당연히 저는 기대를 했어요...
그리고 작년에 개봉했던 전지현 이정재의 영화 '암살'이 관객수 1200만을 넘기면서 굉장한 성공을 했던 것이 기억나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의 구성을 가진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같아요.
게다가 찍는 영화마다 흥행작 또는 문제작인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오니.....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밀정'은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무대는 1920년대. 그리고 독립 무장투쟁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 (다른 한쪽은 김구 주석의 한인애국단.) 의 일본 요인 암살 및 테러 의거 사건들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인데요.
황옥이라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해서 극중 이정출 (송강호)이 조국을 배신하느냐 독립을 돕느냐의 갈등이 사실 영화 밀정의 가장 중요한 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제 생각엔 극본 자체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같애요. 영화 중 시종일관 이정출의 결심과 행동, 그리고 심리에 관객은 공명감을 느끼지 못하고 스토리는 그저 흘러가기만 합니다.
송강호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같애요. 저 또한 별로 의심하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이 정도로 공감을 주지 못하는 건 시나리오 또는 연출의 문제라고 봐야 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의 열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잘 표현했듯 정말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이 있었고, 배신자에게는 던져지는 떡밥이 있었겠죠. 그 와중에 개인의 선택에 따라 누구는 친일의 앞잡이가 되었고 누군가는 열사가 되었던 것이 실제 역사였는데요.
사람의 마음 속은 어떤 일로 해서 어떻게 뒤바뀔 지 모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실존 인물인 황옥라는 영화 속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아주 확실히 악마적. 또는 언더커버같은 모습을 보여셔 전형화 시키거나,
아니면 '신세계'의 이정재처럼 애초부터 의리도 임무도 아니고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다 결국 변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관객은 이에 충분한 동조를 보냈을 지 몰라요.
근데 이정출은 그런 캐릭터를 그려내질 못했어요.
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안정된 길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바꾸며 저런 행동을 한 것이었을까요?
이병헌과 같이 마신 한 통의 술 때문에?
이병헌 얘기가 나왔으니 아예 거기까지 다 얘기하는 게 좋겠죠.
이병헌이 약산 김원봉 선생을 연기했고, 실제로 김원봉 선생은 변장의 귀재였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김원봉 선생의 변장술을, 김익상 선생이 계승했다고도 하죠....)
놈놈놈에서의 이병헌은 뭔가 '있을 법한 희한한 인간' 을 그려 냈고 영화를 살리는 배우였다고 생각되었지만,
좌파 무장 독립 투쟁의 가장 첨단에 있던 아나키스트 약산 선생을 그려내는 데에 있어 이병헌이 풍기는 약간 암흑가 보스같은 포스감은 아무리 봐도 거리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1920년 김익상 선생의 총독부 폭탄 투척 사건을 그려낸 것같은데....
아마도 식민지 조선은 삼일 운동이 실패한 이후로도 독립을 위한 무력 항쟁을 멈추지 않았다 라는 여운을 주려고 한 것같아요.
의열단의 활동도 이후 시대의 변화를 거쳐 변모했지만
이러한 암살/테러 무력 투쟁은 김구 주석의 한인 애국단에 의해 계속되었는데요.
뭐 주체가 어느 단체가 되었건 이와 같이 독립을 위한 항쟁의 주인공들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건 참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독립을 위해서 자기 목숨 하나쯤 아깝지 않게 내던져 산화하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항상 회자되고 진정한 영웅으로 늘 스토리화되고 있어야 맞습니다.
(사실은 요즘 중국에 반일 감정이 강하기 때문에, 반일 정서를 내비치는 영화들이 한류를 타고 중국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그런 현실적인 부분도 있긴 합니다만......)
여하튼,
요즘 흔히들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 많이 듣게 되죠.
"그 시대는 다 친일 했을 꺼야. 친일 안 하고 어떻게 살았겠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들 살았을 꺼야."
심지어는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독립 이후에도 너무나 잘 살았던 것... 그런 상황들을 언급하면 짜증을 내는 사람들까지 있어요.
"이제 그만 하자. 그때 얘기 지금 자꾸 해서 뭐하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런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그 시대엔 전부 다 친일만 하고 살았던 걸까요?
1932년 김구 주석을 찾아와서 한인 애국단 활동을 하겠다고 자원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윤 봉길이라는 이름의 이 사람은 당시 나이가 23세였고, 처자식도 있었어요.
이 청년이 상해 홍코우 공원에서 천장절 의식에 참여한 덴노, 일본군 장성들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 직전 김구 주석과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의 짧은 인생 최후의 만찬이었던 거죠.
그는 김구 주석의 시계를 보고는, 자기 시계를 꺼내서 주석께 드립니다.
자기 시계는 어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의 시계는 2원짜리 낡은 시계라며, 자기의 시간은 앞으로 한 시간 후면 끝나니까 시계를 맞교환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는 김구 선생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 청년이 어디로 가는지 뻔히 아는데, 죽으러 가는 건데. 생애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하다니. 김구 선생은 눈물을 비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훗날, 지하에서 다시 만나자고요.
그리고 홍코우 공원에서 일본 애국가가 끝나는 그 시점에 일본 장성들과 고위급 관료들이 모여 있는 곳에 폭탄을 투척하고, 이 폭탄이 제대로 터지면서 거류민 단장을 비롯한 일본 수뇌부들이 즉사 또는 중상을 당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비록 영화 속의 의열단이 아니고 한인 애국단 소속이었지만, 이와 같은 정신은 밀정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김상옥 열사의 이야기와도 맥이 닿을 것입니다.
의사가 의거장소에 가기 전에 쓴 편지를 한번 인용하겠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 시대는 다 친일 했을 꺼야. 라고 무심코 이야기하곤 합니다.
황옥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밀정은, 삶과 죽음, 애국과 배신, 동포와 자기 가족, 이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빚었을 수많은 조선 사람들의 마음 속을 어느 정도라도 스크린에 담아줬어야 했습니다.
과연 이 영화가 중국에서 흥행을 얼마나 하고 돈을 많이 벌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면에서는 정말로 아쉬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송강호 공유 이병헌의 '밀정' 후기였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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