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Content

    티스토리 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는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이 선서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가 작성했다고 널리 알려진 선서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선서문을 읽으면서 대체로 숭고한 인류애, 의사로서의 소명, 책임 의식 등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선서가 히포크라테스의 저작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사실은 저건 세계 의사협회에서 1948년에 만든 제네바 선언문입니다.  홀로코스트때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의사들의 모습에 대해 워낙 유럽에서 질타가 많이 나오다 보니, 의사의 양심에 대해 자체적인 반성을 통해 작성된 것이죠.

     

    실제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원문은 저것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입니다. 기원전 400~500년경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는 이 선서문은 아래와 같아요.  제가 한번 임의적으로 항목을 나눠서 인용해 볼께요.

     

     

    1) 나는 의술을 주관하는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포함하여 모든 신 앞에서,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그에 따른 조항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2) 나에게 의술을 가르쳐 주신 분을 나의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소중하게 섬기고, 내가 소유한 모든 물질을 그분과 공유하면서 그분이 궁핍할 때는 그분을 도와주고, 그분의 자손을 나의 형제와 같이 여기고, 그들이 의술을 배우고 싶어 하면 보수나 조건 없이 그들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내 아들과 내 스승의 아들과 의술의 원칙을 따르겠다고 선서한 제자들에게만 교훈과 강의를 포함하여 모든 방식의 교수법으로 의술에 관한 지식을 전달할 따름이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전달하지 않겠다.

    3)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려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4) 나는 어떤 요청을 받더라도 치명적인 의약품을 아무에게도 투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권고하지도 않겠다. 또한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여성에게도 낙태시킬 수 있는 페서리를 주지 않겠다.

    5)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펼쳐 나가겠다.

    6) 나는 절개를 하지 않을 것이고 결석환자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7) 내가 어떤 집을 방문하든지 오로지 환자를 돕는 일에만 힘쓸 따름이고, 고의로 어떤 형태의 비행을 일삼거나 피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겠으며, 특히 노예든 자유민이든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이든 여자이든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환자와의 성적 관계를 금할 것이다.

    8) 나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일이든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든 관계없이, 내가 보거나 듣는 바로서 그 사실이 절대로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경우에, 나는 일체의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겠다.

    9) 내가 이 선서를 절대로 어기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 나간다면,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베풀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항상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어기고 약속을 저버린다면,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길 기원한다.

     

    그냥 읽어 봐서는 대체 무슨 의미에서 저런 걸 선서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그리고 의사들마다, 연구자들마다 이 문건에 대한 해석 역시 천차 만별입니다.  

    저도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저야 뭐 미용 성형을 주로 하는 의사이지만, 그래도 히포크라테스는 모든 의사들의 뿌리와 같은 인물이고 그의 저작들 중 저 선서문은 특히 중요하거든요.

     

    1) 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신들 이름이 네 명이나 줄줄이 나와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그의 두 딸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휘기에이아는 건강, 즉 보건, 예방의 의미를 가진 여신이며 파나게이아는 약초, 치료의 의미를 가진 여신입니다.

     

    '선서'에 이 두 명의 여신 이름이 모두 나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지요.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특징은 '균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질병의 치료만을 강조하는 의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방과 건강의 지킴을 강조하는 의학이에요.

     

    이게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첫 번째 정신입니다. 근데 미용의학적으로도 이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어요.

    예컨대 비만, 노화같은 문제들은 미용적으로만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과도 직결돼 있어요. 평소에 어떻게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얼마나 비만을 피하기 위한 습관을 들이고 있느냐가 모두 다 의학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3)의 조항, '환자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것' 에도 이어지는 개념입니다. 섭생법이란 먹는 것, 마시는 것, 쉬는 것, 잠자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인데 즉 건강해지기 위한 생활 방식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피하고  어떤 물을 마시며, 마시는 물의 양을 얼마나 할 것이고, 이런 부분을 히포크라테스는 매우 중요하게 여겼죠.

     

    많은 환자들이 더 아름다와지기 위해 성형외과를 방문하고 저와 면담을 합니다. 누구나 아름다와지기를 원하지만 어떤 것이 과연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움인지, 본인의 매력은 어떤 부분에 있는지, 본인의 개선점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의학적으로 수술적으로 그것은 과연 본인의 의도에 맞는 결과로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적어 보이는 분들이 많아요.

     

    히포크라테스 의학적으로 얘기한다면, 환자와 아름다움에 대해 진지하고 깊은 면담을 나누는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의술의 몸통인 셈입니다.

    그리고 예컨대 당신은 피부에 레이저를 자꾸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외선을 피하고 보습에 신경 쓰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당신은 야식을 많이 하는 습관이 비만의 원인이 되는 것이니 일단 수면 주기를 조절하는 게 좋겠다. 이런 권고와 면담 자체가 수술이나 레이저 등의 행위보다 훨씬 환자의 아름다움을 위해 귀한 것일 수도 있지요.

     

    말하자면 '미용적인 섭생법' 입니다. (이런 단어는 아무도 지금껏 사용하지 않은 것같지만요...) 

    그런데 누구나 성형외과는 수술을 하러 가는 곳이라 생각하고 방문합니다. 피부과는 레이저나 관리를 받으러 가는 곳이라 생각하고 가고요. 병원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환자를 면담하고요.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 중요한 제도적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요. '행위별 수가제'라고 하는 겁니다.

     

    한국의 의료는 수술이든 주사를 놓든 뭔가를 환자 몸에다가 해야만 매출이 생기게끔 되어 있어요. 반면 환자와 면담을 나누고 진료를 하는 그 행위에는 수가가 거의 생기지 않도록 제도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형외과의 경우는 아예 수술이 잡히지 않으면 면담 그 자체는 무료로 해 놓은 병원들이 대부분이고요.

     

    저는 최소한의 상담료 (5,000원)를 환자에게 청구하고 있긴 하지만, 비교하건대 미국 병원에선 소아과 의사건 산부인과 의사건 의사와 만나서 면담을 나누는 그 자체에 200달러가 넘는 진료비가 청구되거든요. 이런 차이는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병원에서는 환자가 어차피 수술 베드에 누워서 뭔가 하지 않으면 한 푼의 돈도 벌지를 못하니,  어떻게 해서든 수술을 하게끔 만들려 한다는 겁니다. 진료비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깊은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과 대화를 환자와 나눈다는 게 지금의 병원에선 바보같은 짓이 되어 버린지 오래에요.

     

    그 많은 성형외과들이 전부 다 최선의 수익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그대로입니다. 갖가지 부작용, 의료사고, 팽대한 불만족들, 해결되지 않는 후유증들. 이런 것들이 겉으로 볼 때만 휘황찬란한 한국 사회 미용 의료의 현주소가 되고 말았어요.

     

     

     

    저는 2500년 전의 고전을 들여다 보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이 지금 필요하다고요.

     

    환자와 의사 사이의 진솔한 면담 자체가 환자에게는 그 어떤 수술보다도 더 값비싼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저는, 행위에 대해서만 수가가 부과되고 의사의 진료 자체에는 수가가 없는 제도와 관행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서의 첫머리에 언급돼 있듯이,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예방의 여신과 치료의 여신을 둘 다 중하게 생각했어요.  섭생만으로 진료한 건 아닙니다. 필요하면 약초를 쓰고 접골, 도수 정복도 하였지요. 히포크라테스의 저작에는 해부와 수술에 대한 기록들도 많이 있어요.

     

    그렇다면 당장 6) 항목의 수술 금지 규정은 대체 뭐냐... 라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이 항목은 '선서'를 정말 수수께끼처럼 만드는 부분이며 학자들도 아직 그 의미를 풀어내지 못했어요.

     

    저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은, 2) 항목에서 언급했듯 동료 의사들에 대한 경외와 존중 의식이 굉장히 강해요.

    히포크라테스는 의학, 의술 지식의 전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럴 자격을 갖춘 사람, 요컨대 신들의 앞에서 경건한 선서를 하고 계약을 한 사람들에게만 하려고 했다. 그리고 의사들끼리는 그 생활과 많은 부분을 철저히 서로 보호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심지어는 공산주의 사회처럼 서로 삶과 물질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자고 했고...

     

    당시 그리스에는 히포크라테스 그룹의 의사들만 있었던 게 아니라 많은 다른 의사들이 있었을 꺼에요. 그들 사이에 환자를 놓고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지요. 히포크라테스는 아예 외과적 수술을 주로 하는 다른 의사 그룹에게 합의를 하고 그쪽 분야를 넘겨주는 식으로 선 긋기를 했을 수 있어요.

     

    여기까지 해서 2)의 항목과 함께 저는 해석했지요.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은, 동료 의사들을 자기 목숨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의사들끼리 서로 비방하거나 충돌하는 것은 안 된다. 외과적 수술에 있어 다른 가문, 다른 학파의 의사들이 유난히 집착하고 있다면 차라리 환자를 그쪽으로 보내라. 이런 마인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일까요?

     

    가끔 저한테도 어디 어디를 수술하고 싶다면서 잘 하는 의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안면윤곽 수술은 잘 안 하는 편인데,  뼈수술을 잘 하는 데를 알려달라는 거죠. 이런 경우 의사들은 참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 있게 어디 어디라고 소개해서 환자를 글루 보냈는데, 결과가 환자의 마음에 들지 않게 나오거나 부작용이 생기면 소개한 저까지 책임감을 느껴야 하거든요.

     

    이런 면에서는 의사들끼리의 폭넓은 네트워크가 필요할 것같습니다.

    단순히 마케팅적으로, 수익적으로 매출을 서로 높이기 위한 그런 네트워크가 아니라 환자의 문제나 곤란을 더 완벽하게 처리해 주기 위한 여러 과가 함께 관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말이죠.

    미국처럼 클리닉의 의사가 자기 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은 그 지역사회의 hospital로 보내서 그곳 수술실에 자기가 출근해서 집도하는, 그런 방식도 참 좋아요. 아무래도 미용 성형 의원들은 제각기 서로 떨어져 있고 자기 전문 진료 과목이 아닌 문제들이 환자들한테는 나타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대처는 느려질 수밖에 없거든요.  

     

    4)번 항목은 낙태와 안락사를 반대하고 금지하는 내용인데, 이 역시 논란이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윤리라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서 그 형태가 계속 변해요.

    고대 그리스에선 미혼모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그 여성을 비난하거나 사회적으로 뒤에서 수근거리고 왕따시키지 않았었죠.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도저히 미혼모가 자기 아이를 데리고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할 만한 문화가 못 됩니다. 

    의사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면, 자기의 윤리성을 지킬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 미혼모의 삶은 파탄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를 과연 윤리적인 의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따라서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구현하려면, 사회적인 문화와 제도를 혁파하고 바꿔나갈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 선서문의 가장 중요한 구절은,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이익이 우선이다. 낙태도, 안락사도, 그리고 미용적 성형, 그 어떤 시술이라도, 환자에게 해가 갈 만한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은 어떤 시대라 할지라도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지금 우리 시대, 대한민국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지켜나가겠습니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경우에라도, 나는 환자를 위해서". 이 말을 실제로 실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울까요?

     

    사실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많은 제도적, 관습적, 문화적 현실들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참해야 하고,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지금 되살리려면 말이죠.

     

    오늘 포스팅을 마칠께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Commen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