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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추억의 세상.

    아래 사진은 2012년 영화 건축학 개론의 한 장면이에요. 이제훈이 동네를 사진에 담아오라는 숙제를 하느라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장면인데요.

    주인공이 들고 있는 저 물건은 컴팩트 필름 카메라죠.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94년 발표곡이고, 영화 배경이 90년대였으니까... 디카가  탄생하기 한참 전이에요.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사람들 손에 들려져서 다니기 시작한 때가 2000년대 초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저는 당시 수련의였었고요. 불과 15~6년 전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 좋은데 놀러 갈 때만 필름 카메라를 들고 나갔고, 지금처럼 셀카라는 말 자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이에요.

    핸드폰마다 카메라가 달려서 나온 건 그보다 훨씬 후의 일이었고요. 그때 디카를 하나 산다는 건 정말 큰맘 먹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진짜 흔하지 않은 쇼핑 아이템이었죠.

     

     

    그러니 현재랑 비교하자면 이건 완전 상전 벽해라고나 할까요. 핸드폰마다 지금은 죄다 천만 화소가 넘는 카메라가 달려 있고 동영상도 맨날 찍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걸 실시간으로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있네요.

    그 당시에는 우리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지인과 소통했을까. 잘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일단 지금처럼 사진이 흔하진 않았어요. 사진이란 일상의 기록인데, 그건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시기에 찍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때 사진들은 일단 찍으면 현상소에서 인화해 뽑아오지 않으면 안 됐으니... 지금처럼 마음에 안 든다고 마구 수정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사진 생각만 하면 3초도 안 돼 사진을 찍고 마음에 안 들면 지워버릴 수 있고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찍거나 수정할 수 있어요. 그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 공유할 사진이 되는 거죠. 정리하자면 이런 차이가 있군요. 옛날 사진들은, 바꿀 수 없는 지난 경험의 저장소이고 일기장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진들, 오늘도 SNS에 넘쳐나는 주로 젊은 사람들의 사진들, 얼짱 각도의 미소띤 셀카들을 보면서 저는 문득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는 내 마음에 드는 추억만 취사선택하고 있다고요.

    내가 걸어온 길, 내가 지나온 길이 이것이었다. 그게 꽃길이었건 먼지 투성이 길이었건 진흙밭이었건 간에, 돌아보면 그건 그 대로 의미가 있고 애틋하고 소중합니다. 나만의 길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거죠.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돼서 즉석으로 수정되고 포토샵이 되어서 sns로 올라가는 일상들은 어느 순간에 보면 거의가 다 비슷해지곤 합니다.  비슷하게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 비슷하게 다들 많이들 찍는 촬영 싸이트. 비슷하게 올라오는 맛난 음식 사진들. 그리고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는) 비슷한 외모의 얼굴. 비슷한 포즈의 사진들이 넘쳐납니다. 

    사진 중 잘 나온 것. 예쁘게 나온 것. 멋지게 나온 것만 찾아서 저장공간에 업로드하다 보면, 그렇게 취사선택된 추억은 어느새 타인들과 별로 다를게 없어지곤 합니다. 얼짱각도 하며 전부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어느새 나도 똑같애 집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 사진작가 윤광준님의  "잘 찍은 사진 한 장" 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기억나서 인용해 봅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적극적 행동이다. ...... 사진에는 애써 남을 의식하며 억지로 찍어야 할 이유가 없다.  ....좋은 사진이란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적어도 사진 안에선 그 순간의 감흥을 속이지 말아야 진실이다.  .... 사진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과 선택을 즐기는 일이다. 남이 아닌 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벅찬 게 사진이다."

    가끔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대체 이게 누군가 놀랄 정도로 많이 '만져진'  사진들을 보면 그런 면에서 의문이 들곤 합니다.

    과연 지금 디지털. SNS의 시대엔, 우리는 그 이전 필름 카메라로 수정 없이 찍었던 시절보다 충분히 더 좋은 소통을 하고 있는 걸까요. 훨씬 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걸까요.     

    SNS의 존재 이유는 분명 소통 (communication) 일 껍니다. 내가 이렇게 지내고 있는 모습, 일상, 생각, 감정, 좋은 일 나쁜 일 등등을 친구와 공유하며 서로의 생활을 온라인에서 나눠보겠다는 게 그걸 하는 이유일 꺼에요.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 SNS가 없던 시절 그때에도 소통을 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그것을 공유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그것을 많이 왜곡하지도 않았었습니다. 아니 못했었죠.  소통량은 그 시절보다 수백만 배로 늘어났을 지 모르지만, 그 진정성도 그렇게 늘어났을까요.

    어쩌면 아날로그 사진, 흑백 사진만이 있던 시절에 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어요.

    더 예뻐보이려 노력하는 것. 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획일화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SNS 공간에 올리는 자기 외모도 자꾸 만져서 디지털식으로 획일화되고 있다면.  나는 소멸되고 내가 아닌 뭔가 다른 게 거기에 있다는 것 아닐까요.

    4차 산업 혁명이 다가온 시대라고들 합니다. 지금이 디지털 혁명의 시대라면 그 다음의 시대는, 사이버 공간의 환상, 그리고 소외가 아닌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시대이길 바랍니다. 

    따뜻하게. 서로의 사정을 서로가 이해하고 감싸주는 시대가 되어 가기를 원합니다.  저장 장치가 디지털화 되어 있다고 인간성과 추억조차 디지털이 될 수는 없지요 .

     '나만의 추억'이  '멋진 추억' 보다 가치 있는 게 아닐까요?

    '나만의 진짜 모습'이  모델처럼 화려한 모습보다 더 근사한게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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