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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영화 후기입니다.

     

    나는 조남주 작가의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았다.

     

     

    책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일방적인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쓰여진 스토리라는 관념에 나도 어느 틈에 물들어 있었쟎았나 싶다.


    그러나 영화는 사실 '일방적인 페미니즘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뉴스를 읽어 보면 그 관점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남성들이 많다고 한다.

     

    영화는 좀 많이 무겁다. 나는 영화를 혼자 봤지만 왼쪽엔 젊은 커플이 앉았고 오른쪽엔 중년 여성 한 분이 앉았다. 젊은 남녀 커플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좀 멍하게 앉아 있었다. 서로가 어떤 말을 주고 받아야 할지 어색했을 것이다. 혼자 오신 중년 여성은 영화가 종반에 다가갈수록 계속 코를 훌쩍이며 눈물 콧물을 다 흘리셨다.

     

    여성을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식민지라고 표현한 글이 있었다. 남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불평등은 인류에게 가장 오랫동안 대를 이어 고착되어 온 것이다. 흑인, 동양인, 백인, 중동사람 중국사람 한국 사람 이전에 그 모든 사람에게 원천적으로 주어진 갈래가 성이다.

     

    영화 리뷰 이전에 먼저, 나는 묻는다. '성'이 신분이 되는 것은 옳은가?

     

    신분이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며 세습되는 계급을 일컫는다.
    조선시대가 엄격한 계급사회였다고들 말하지만, 왜란 후 이미, 면천하고 벼슬까지 얻는 상민, 천민이 엄청 많았다. 유럽에서는 부르주아들이 돈으로 귀족 신분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사회에서도, 남과 여라는 주어진 성만은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

     

    "82년생 김지영"의 시작은 명절 이야기였다. 할머니, 어머니, 딸 그 모두가 여성이 해야 할 일, 그 엄격한 구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몇 십년동안, 육아와 가사 노동은 여성의 할 일이라는 문화적 굴레는 벗겨지지 못했다. 이것만큼은 양반, 귀족이 없어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는 잔잔하다. 분위기 자체가 잔잔하며 액션도 당연히 없고 배경 음악도 수수하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잔인한, 일상적인 폭력을 그리고 있다. 김팀장에게 유이사가 헐헐 웃으면서 날린 몇 마디 말들, 시어머니가 사돈에게 따지는 말들. 이런 폭력들은 사실은 우리의 일상이지만 누구도 고소 고발하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되길 원하는 것들이다. 그 '조용히 마무리되길 원하는' 상황 자체야 말로 가장 폭력적이다.


    눈앞에서 누군가가 아주 아프게 얻어맞고 있다. 그런데 그걸 보는 사람들은 '자자, 이제 그만들 하세요.' 라고 한다면 그 폭력은 과연 해결될 가망이 있을까?

     

    사람들은 "우리는 피해자예요" 라고 하는 쪽과 "우리는 손해 안 보는 줄 알아?" 라고 항변하는 쪽으로 자꾸 나뉘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어머니, 나의 누이, 나의 부인, 나의 딸의 문제이다.

    가족을 팔과 다리라고 생각한다면, 마치 오른쪽 팔은 안 그런데 왼쪽 팔은 자꾸만 기운이 빠지고 갈수록 아파서 쓸 수가 없게 되는, 그런 상황과 같다고 생각한다.


    왼쪽 팔이 자꾸 아프면 오른쪽 팔이, 야 나는 안 아픈 줄 알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내 몸뚱아리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지영의 '빙의'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가 당연하게 무시되는 현실에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또 여직원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말들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이탈한 것이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빙의 상태에서 지영이 하는 말 중 틀린 말이 없다는 점이 경악스럽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 정신병자가 되지 않고서는 옳은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강변한다. '미친' 것은 김지영인가, 아니면 그가 사는 우리 사회인가?

     

    지영의 친정 어머니가 "내 딸이 허깨비가 되다니." 라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육아와 가사 노동이 얽매이기 시작하면 이제 여성으로서의 삶은 실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사라져야 한다. 경력은 단절되고 다시는 사회인으로 복귀하기 어려워진다.

     

    인간에게 가장 모욕적인 것은 그 집단을 묶어서 비하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죠셴징들의 원래 기질이 그렇죠." 라고 한다면 한국인으로선 그만큼 모욕적일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맘충"이라는 말도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건간에 상관 없이 묶어서 비하하는 것이기에 가장 심각한 욕이 된다. 그럼에도 맘충, 김치녀, 한남. 이런 만들은 우리 사회에서 거침 없이 통용된다.

     

    해결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이것만큼 어려운 문제가 없다. 그래도 모두가 다 달려들어서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영화엔 언뜻 "기도하셔야 합니다. 육아 우울증. 힘들죠." 이런 지식 답변도 화면에 지나간다. 기도해야 해결된다고.

     

    그러나 사실은 신 역시도 남성이다. 교회에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다. "하늘에 계시는 어머니"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요셉은 전혀 피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는 예수의 부계쪽 가계도만 전한다. 모계의 가계도는 성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으며 천주교도 여성 사제를 세우지 않는다. 교황은 단 한번도 여성이었던 적이 없다.

     

     

    영화에서 또 하나 중요한 키워드는 '기억'이다. 인간은 '기억'과 함께 살고 늙어간다. 우울증이란 그 많은 기억 중 힘들고 어렵고, 부정적인 기억만이 뇌에서 되풀이되는 병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부정적인 기억과 긍정적인 기억이 교차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어두운 기억만 뇌에서 돌아가고 그 회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며, 결국 인간은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린다. 그것이 우울증이다. 이건 무서운 병이다.

     

    옛날에는 페스트나 천연두 바이러스가 전염되면서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런 병들은 거의가 사라졌다.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마저 '우울증'에 대한 백신은 만들지 못한다. 앞으로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와 문화가 탄탄하게 다져 놓은 구조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정신과 의사가 말한다. "여기, 내 진료실에 앉기까지가 가장 어려운 단계입니다.여기 오셔서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문제는 많이 해결된 겁니다."라고.


    허깨비가 되는 여성들. 이것은 경제의 주체가 반으로 꺾이고 절반의 손실을 늘 겪는다는 걸 의미한다.


    허나 제도적, 구조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젠더에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품게 된다면, 함께 고민하겠다고 달려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문제는 반 이상이 풀릴 것이리라 생각한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리고 남성의 입장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을 불편하고 낯설게 받아들이는 여성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고객'(환자들)과 직원들은 99%가 여성이다. 여성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여성들의 고충과 삶에 대해 (강제로라도) 늘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 생활이었다.

     

     

    그걸 토대로 나는 말하고 싶다. "나도 여자들처럼 시집 가서 편안히 애나 보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남성이 아직도 있다면, 여성들 중 그 누구도 사회 경제적 생활을 포기하고 싶어하는 이는 없다고. 그리고 당신과 나, 우리의 딸들은 최소한 허깨비가 되지는 않도록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5일만에 관객수 100만을 넘긴 "82년생 김지영"을 본 젊은 커플들이 특히 더 많은 대화를 해 주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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