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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도 과학자이다.

    엘리자베스 홀 핀들리는 캐나다 국적의 성형외과 의사로서 우리 세기의 가장 위대한 의사 중 한 명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국에서조차 여성으로서 외과의가 된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 그녀는 성형외과를 전공하고, 특히 유방성형의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본 설명을 좀 하지요...

    알다시피 가슴 성형이란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보형물을 삽입하는 것이입니다.

    그 실리콘 보형물이 들어갔을 때 재수술까지 이르게 되는 가장 중요한 부작용 중 하나가 "구축"이라는 증상입니다.

    "구축"은 실리콘이 몸 속으로 삽입됐을 시 1~2개월 내로 그걸 둘러싸는 일종의 흉터살, 즉 "피막"이 생기게 되는데, 그 "피막"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현상이죠..

    이 피막이 심하게 두꺼워지면 가슴을 만졌을 때 딱딱하게 느껴지게 되어, 내추럴한 가슴 촉감을 잃게 되므로 재수술의 적응증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구축"을 감소시키기 위해 세계 최대의 보형물 업체인 "앨러간"에서, 기존의 표면이 맨들맨들한 실리콘 외피와 다른, 아주 거칠 거칠한 표면을 가진 외피를 개발합니다. (사실은 당시 회사명은 "맥간"이긴 했지요.이 앨러간에 MnA됐음..)

    그것을 "텍스쳐드 쉘"이라고 부릅니다.

    앨러간은 미국의 수많은 의사들을 고용하기도 하고, 계약을 맺기도 하였고 연구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돈이 들어오는데 의사들이 앨러간의 제품에 나쁜 이야기를 쓰긴 어려웠지요.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들은 앨러간의 텍스쳐드 쉘 신제품에 대해 "구축을 예방하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다"라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물론 "별 효과가 없더라"라고 하는 논문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이 가는 동안, 그리고 앨러간의 적극적인 마케팅이 동원되면서 "앨러간의 텍스쳐링 쉘은 구축을 낮춘다" 라는 것이 학계의 트렌드가 되고 맙니다.

     

    이 와중에, 2011년 . 엘리자베스 핀들리는 1992년부터 시행한 다수의 보형물 수술 환자들의 더블캡슐과 후기 장액종에 대한 연구 결과를 가장 권위있는 성형외과 학술지인 PRS에 발표합니다.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앨러간의 텍스쳐드 보형물이 기존의 보형물 (표면이 맨질맨질한)보다 구축이 적지 않으며,

    오히려 기존 보형물 쉘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부작용들을 독자적으로 양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작용의 이름은 더블 캡슐과 후기 장액종이지만,

    이것은 그때까지의 "텍스쳐링 쉘"에 대한 학계의 트렌드와 일부 의사들의 거의 맹신에 가까운 믿음을 깨는 것이었고, 더 크게는 의료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의료 산업 업체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의사들이 핀들리의 연구에 대해 반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한 연구에서는 전혀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당신이 수술 방법을 잘못한 것이 아니냐"

    "수술시 감염을 똑바로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 앨러간 쉘은 전혀 문제 없다" 이런 식의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핀들리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핀들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곧 텍스쳐드 쉘과 후기 장액종,더블캡슐은 학계의 정설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2013년이 되면서는 앨러간의 텍스쳐링이 ALCL 즉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이라고 하는 악성 종양과 관련 있다는 설이 사실로 굳어지게 됩니다. 이 림프종은 핀들리가 얘기한 "후기 장액종"과 연관성이 깊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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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도 과학자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던 믿음에 대해 의심을 하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학이란, 언제나 사람들의 신념을 깨는 것이었어요.

    과학이란 '과연 그럴까?' 라는 질문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의학도 과학입니다.

    진정한 과학자를 만드는 교육은, 출제자의 의도 대로 순응시키는 작업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칙이라 믿는 사실일수록 더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게 하고 그걸 증명하는 능력을 교육시키는 것이 과학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믿는 정답만 찾아내려 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은 올바른 과학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더욱이, 자본과 기업의 힘에 야합해 진실을 감추거나 고의로 왜곡하는 사람들은 과학자라 불릴 자격이 없는 것입니.

    의사는 돈에 탐욕스러운 기업들, 거대 의료기기와 제약사들 등등이 이윤을 추구하는 데 맞서서 환자를 지키는 그 마지막 보루여야 합니다.

    의사들마저 리베이트 등을 통해 그들과 검은 계약 속에 진실을 묻어 버린다면, 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의사 될 자격이 있는가?

    전교 1등이 의사의 자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교1등이 이렇게 많이 의사가 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왜 아직껏 노벨 의학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는지에 대해, 우리 국민 모두가 한번 의문을 가져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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