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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형 수술의 역사 I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형수술의 역사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역사? 그런 걸 왜 알아야 해?  고리타분하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도 같은데요. 


    그런데 역사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걸 보면, 신기하게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도 약간씩 변해서 거의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게 돼요.  




    인간이 여타 피조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를 떠올리면서 반추해 보고, 그러면서 현재를 보는 데 있어 통찰력이 생기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눈이 트인다는 점이에요.  


    저는 그래서 역사 서적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근데 성형수술의 역사 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서  

    그걸 최단 시간 내에 읽을 수 있게 짧게 줄여 봐야 할 것같애요. 


    일단 성형수술 plastic surgery  .이 단어는...  

    비와이의 랩 가사에도 나오는데, 그 말 뜻이 뭘까요 ?




    그 정의는 지금으로부터 600년이나 전에 내려졌어요. 지금도 별반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체의 선천적, 후천적 변형을 보수하는 데 사용되는 기예 (art) 이며, 기능적인 장애와 보이는 모습을 정상에 최대한 가깝게 교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이탈리아의 가스파레 탈리아코찌가 내린 정의입니다... 물론 그 당시엔 성형외과학이라는 것이 독립되어 있지 않을 때였죠. 의학 자체가 근대화되기 이전입니다. 


    plastic 이라는 말은 moldable 이라는 뜻인데요,  주로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 수술하는 것이 성형외과에서 하는 일입니다. 즉 몸 속에 있는 내부 장기들에 손을 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겉에 있는 살이 떨어져 나갔다거나, 심한 변형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원래 대로 복원하면서 성형외과의 기원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노력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점점, 인체를 더 보기 좋게 만드는 미용 수술의 이론과 방법이 뒤이어 만들어지게 된 것이죠. 





    성형외과에서 매우 중요한 수술은 코 수술인데요,  

    옛날부터 코를 재건하기 위한 수술들이 하나 하나 발전하면서 성형외과의 주요 술기들이 완성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인도에선 코가 잘려져서 없어진 환자들한테 코를 다시 만들어주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마, 뺨 등에서 살을 돌려서 만들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른 데에서 살을 가져오는 것을 피판술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핵심적인 성형외과적 기술 중 하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460년에 오늘날도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아주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데, 바로 히포크라테스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요즘은 의사로서의 윤리의 상징으로 인식되곤 하는데,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제네바 선언문 내용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그 전까지는 초자연적 현상이나 악령의 저주, 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하던 질병관을 반대하고, 환자와 병을 직접적으로 관찰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는 의학에 처음으로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했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는 사람이죠. 




    로마에는 셀수스라는 위대한 인물이 기원전 25년에 나오는데... 

    그는 구순 구개열 수술에서 입술을 닫는 방법, 귀, 입술, 코의 결손에 대한 방대한 저술을 남깁니다. 

    구순열은 요즘은 많이 보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굉장히 많았어요.  

    그리고 성형외과에서 이 수술이 중요한 이유가, 입술, 인중, 코, 입천장, 치아 등의 모든 부분에서 치료가 이루어져야  되므로, 


    이 수술을 연구하면서  현대적인 코 수술, 현대적인 입술 미용수술, 그리고 얼굴의 전반적인 해부학적 구조 등에 대한 개념이 전부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서양 - 즉 서유럽과 미국인들은 비쟌틴과 아랍쪽에 대해 학문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언급 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은 중세의 암흑 시대였기 때문에 의학이라고 할 것조차도 없었거든요.  그 동안에 아랍에서는 알부카시스라는 위대한 외과의사가 나타납니다.  

    서기 1000년 경인데, 알 타스리프라는 유명한 외과 수술 책을 집필하게 되죠. 



    알부카시스는 자기가 직접 발명한 수술 도구들도 여기에 삽화로 실어놓는데, 설압자, 훅, 소작기 등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수술 기구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피스톤이 달린 주사기도 알 타스리프를 비롯한, 아랍 의사들이 만들어내서 서양으로 건너간 것이죠. 





    동양과 서양의 학문 발전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 것이 아마도 대학이라는 것이 생긴 후라고 생각되는데, 1088년에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대학이 생기고 이곳 의과대학에서 시체 해부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해부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죠. 



    이 볼로냐 대학의 의대 교수인 탈리아코치가 코의 재건수술을 체계화시키고, 피판술을 광범위하게 정리하였는데 이런 면에서 탈리아코치야 말로 성형수술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피판수술과 코의 재건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수술이 유럽 이곳 저곳에서 발전하다가 



    성형 수술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그게 1차 세계 대전이에요. 


    1차 세계대전의 다른 점은,  그 전의 전쟁과는 달라진 게 참호를 파서 그 속에서 싸웠다는 점이거든요.  

    그러면 하체쪽은 잘 다치지를 않았지만, 머리, 얼굴, 목이 노출돼 있으니 그 부분의 심각한 결손 환자들이 전쟁터에서 수없이 많이 생기게 됐습니다. 



    이런 환자들을 제대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원시키는 일을 하는 의사가 많이 필요했고, 연부조직의 결손 치료에 대한 훈련을 받은 의사들이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이때부터 성형외과 의사로 일컬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현대적인 성형외과학의 기틀이 생기게 됩니다. 

    학문적인 기초는 그 이전에 다 틀이 잡혀 있었지만, 성형외과학이 독립적인 분과로서 나오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해서입니다. 


    그리고 21세기가 된 지금 성형외과의 외연은 굉장히 넓혀지고 다양해져 있습니다. 

    얼굴 전체를 이식하는 수술의 놀라운 결과가 해외 토픽에 올라오는 것을 뉴스에서도 보게 되는데, 앞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용 수술은 19세기 말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어요. 

    미용수술은 결손이나 변형이 없는 사람들, 즉 정상인들에게 시행되는 수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1~2차 세계대전 사이 즉 20세기 초, 굉장히 심각한 사회 문제가 유럽에서 일어나는데요, 


    미용실에서 수술을 하는 돌파리 미용 의사들 무리가 횡행했던 겁니다. 

    제대로 된 수련도 받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 이들은 신문이랑 여성 잡지에 광고를 엄청나게 해서,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당신은 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직업도 잘 구하고 인상을 좋게 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PR을 합니다. 수술비는 상당히 높게 받았고요. 



    이러한 beauty doctor 당시로서는 좀 사기스럽던 돌팔이들의 집단에 대해, 재건 및 미용수술을 제대로 공부한 의사들은 성형외과 의사회를 조직해서 이들과 자신들을 구분짓기 시작하게 됩니다. 





    좋은 예가 하나 있는데 


    유럽에 챨스 밀러라는 beauty doctor가 있었어요.

    당시 현대적인 미용 수술의 아버지라고  엄청 유명하고 또 칭송 받았다고 해요. 1907년에는 미용수술을 집대성한 책도 만들고, 

    근데 밀러가 한 일은... 기록상 분명하지는 않지만요. 파라핀을 코에 주입했었다고 합니다.  




    이러면 파라핀종을 만들어서 코의 조직이 괴사되고, 그뿐 아니라 그게 전신적으로 피를 타고 돌면서 폐색전증, 정맥염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파라핀의 사용이 사회적으로 금지되자, 그를 비롯한 미용 외과의사들은 조잡하게 만들어진 고무에 수지를 섞고 방앗간에서 이걸 가루로 만들어서 파라핀처럼 주사를 또 하게 됩니다. ,,.,




    미국에선 헨리 샤이어슨이라는 인물이 대단했는데... 영국 여배우를 하나 수술했는데 그게 결과가 좋아서 엄청 명성을 얻었어요.  근데 이후 계속 의료 과실에 대한 소송을 당하였고, 결국 의사 면허가 일시 정지됩니다. 타임지에선 당시 '돌파리의 제왕' 이라고  불렀다고요. 


    이 와중에 훈련받은 외과의사들은, 성형수술이 대중들로부터 긍정적인 인상을 받게 하느라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2차 대전 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의사들이 전세계적으로, 미용쪽에 뛰어들고 그 수술 가짓수와 수술 건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발전도 이뤄졌죠. 결과도 좋아지고 테크닉은 향상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그럼 


    제대로 수련을 받은 성형외과 전문의와 

    수련을 받지 않고 미용에 뛰어들어서 하고 있는 beauty doctor들과 

    차이는 뭐냐. 라는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그게 꼭 보건복지부에서 주는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 하나 갖고 구분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같습니다. 그거 갖고 있는 의사들 중에서도, 미용의사들보다 더 심하게 말도 안되는 시술과 광고를 하는 사람들 많이 보거든요. 


    그 차이는 결국 과학을 하는 사람의 태도를 갖고 있느냐, 

    아니면 장사꾼의 태도를 갖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같습니다. 




    과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반드시 학술 자료를 먼저 찾아보는 게 버릇이 돼 있습니다. 

    선전/광고 찌라시를 믿질 않아요. 


    "이거 새로 나온 필러인데 써보세요 원장님. 이걸로 다른 데선 돈을 많이 벌고 있어요. "  


    "이 기계 사서 지방이식 하시면 환자들한테 돈 2배로 받으실 수 있어요. 사세요 원장님.대박 날 " 


    뭐 진료실에 앉아 있다 보면 이런 얘기들 업자들한테 어마어마하게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그렇게 얘기해요.  

    관련 논문부터 보자고요.  


    그거 만든 제조 회사에서 만든 자료 말고, 제3의 기관 즉 대학병원과 신뢰할 만한 의료 기관에서 의사들이 자기 이름을 내고 쓴 임상실험 결과를 발표한 논문이 필요한 겁니다.  

    그게 없으면 못 쓴다고요. 


    그런 필러, 기계들. 한 2~3년 지나면 아무도 이름도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업자들은 그때 가면 어떻게 하느냐. 

    그땐 또 다른 걸 갖고 와서 또 똑같은 소릴 하거든요. 


    물론 환자들은 그런 과정을 알 턱이 없지요. 


    성형 수술의 역사를 쭉 흝어 보면, 지방이식이건 가슴확대 수술이건  코수술이건 그런 수술이 이런 형태로 발전해 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수술 방법들이 새로 제시되었다가 없어지곤 했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그럴 꺼에요. 


    그래서, 선전 광고 찌라시들을 인터넷으로 대량으로 접하고 성형 수술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에 사는 환자들이 정말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모바일과 SNS 등의 매체가 어찌보면 현대인들의 정신세계까지 통제하고 있는 게 요즘 세상인데 


    한 1년쯤 지나면 인터넷과 모바일 속에서 흘러다니는 정보들은 전부 다 바뀌어 있거든요. 


    정보 자체도 소모품이 됐다라는 거에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서 이런 정보 저런 정보가 제멋대로 통제되지 않고 마구 흘러다니고 있는 겁니다.   

    과학적인 진리는 소모품이 아닌데도 말이죠. 


    오늘은 성형 수술의 역사에 대한 포스팅이었어요. 전반적인 부분이고 굉장히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이었을 텐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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