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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달 연대기 part 1 . 새로운 시도와 그 한계.

    송중기 장동건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자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비에 무색하게 완전한 망작으로 시청률 8%대에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 밀려난 아스달...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할 필요가 있는 것같다.


    칭찬만 받거나 비난만 있는 작품이란 없다. 작품이란 칭찬과 비판을 함께 받는 것이다. 칭찬도 비판도 모두 받지 못하는 거야 말로 진짜 망작이다. 나는 이 드라마가 망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 드라마의 시대 배경은 대체 언제인가?

     

    고대 역사는 빈 공간이 너무나 많고 사료도 근거도 진짜로 없어서 학자들도 벙쪄있는 것들이 많다. 사학자들 입장에선 곤란스러운 일일지 모르나 작가들의 상상력을 동원할 여지가 많아 창조적 작업에는 더없이 좋은 것이 기도 하다.

     

     

    아스달 연대기는 "아주 옛날, 가상의 대륙"을 상정한다.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지만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그 어느 대륙도 아닌 곳이지만, 그래도 요정이 날라다니고 오크와 트롤이 뛰어다니는 게 아닌, 현실성을 갖춰서 만든 스토리이다. 이 드라마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판타지로 가고 싶다면 완전히 판타지로 해야 됐지만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면, 제대로 고증을 했어야 한다.

    드라마는 부족 사회끼리 연맹을 만들고, 거기서 아직 왕이 선출되지 못한, 즉 국가라고 하는 것이 성립되려 하는 시기가 배경이다.

     

    실제의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국가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의 사이. 메소포타미아라는 땅에서 약 5500년 전에 생겼다. 이때는 청동기 시대였고, 500~1000년 사이에 수많은 도시국가들과 왕국들이 등장한다.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는 4300년 전에 발생한다. (단군 왕검의 시작은 약 3500년 전으로 보고...)
    철기로 주변 국가를 제압하는 나라가 최초로 생긴 건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히타이트로 약 3500년 전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단군 설화를 창작 베이스로 했다고 하니 약 3500년 전의 어느때인가가 될 것이다.

     

    허나 ...연대기에서처럼, 아스달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빛나는 문명을 만들고 강한 군대를 조직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체가 운영되고 있어야 맞다. 근데 심지어 왕도 생기기 전이라고 하니 거기서부터 뜨악이다.

     

     

    실망스럽게도 드라마는 시종 우릴 황당하게 만드는 수많은 역사 망각 날조들이 판을 친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초반에 나오는 송중기의 아버지, "뇌안탈"인이란 네안데르탈인을 말하는 것일텐데 그들이 인류에게 멸종된 건 자그마치 3만년 전이니..

     

    2. 제대로 고증이 되고 있는가?

     

    BC 10세기정도라면 황허 문명이 시작되고 주나라가 생기던 시기로서 아직 철기는 생산은 될 수 있었더라도 농기구나 무기로 쓰는 건 어림없던 시절.

    그리고 청동기는 구리와 주석 광산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해 재료값이 막장인데다 잘 휘어지는 것이라, 실제 청동제 칼을 들고 막 휘두르며 다니려면 아주 높은 신분의 귀족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뾰족하게 갈은 돌도끼나 돌창을 들고 다녔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청동 제조 공장까지 나오고 풀무까지 쓰고 있는데, 말도 안된다. 청동은 결코 대중화된 적이 없다.

    철의 용융점에 다다르는 온도의 불을 만들려면 풀무라는 장비가 필요했고, 그게 가능해질 때까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렸다. 하여 철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건 BC 500년은 돼야 했다.

     

    즉 풀무의 발명 - 철기 농기구의 보급 - 인구의 밀집 - 중앙 집권 국가 - 철제 무기 보급 - 정복 전쟁 - 제국의 탄생 (페르시아 제국, 중국 제국 등) 과 같은 수순이다.

    드라마는 빼어난 컴퓨터 그래픽 화면을 보여주지만, 그 시대 그 장소에 있을 수 없던 것들이 자꾸 등장해서 몰입을 방해하게 된다. 말을 타고 다니는 아스달의 병사들을 보면 안장뿐 아니라 등자를 양쪽에 다 하고 다니는데 등자의 첫 탄생은 BC 300년 정도, 철기가 완전히 보급된 한참 후의 일이니...

     

     

    주택과 아스달 성내의 모습이 좀 더 황당한데 겉에서 볼 때는 건축 양식들이 진흙을 굽고 말린 벽돌로 집을 지은 메소포타미아 방식으로 보이는데 속안에 들어가 보면 중세 유럽의 성채나 수도원같은 돌성이다.

    진짜 제대로 막장인건 의복인데 투구는 그리스식에 몸에 걸친 갑옷은 로마식으로 보이고 주인공들은 유럽 순례자 복장도 마다 않는데다 여주들은 비단에 모직에 금속 장식에... 뭐 더 이상 말 않겠다.

     

    보기 좋은 것들도 있긴 했다. 단군 설화를 해석할 때 곰과 호랑이를 숭앙하던 신석기 부족사회의 토테미즘이 청동기를 쓰는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지배계층의 천손 신앙으로 변화하는데 여전히 고대의 생활을 고집하면서 흰 늑대를 섬기는 이아르크 부족 집단과, 조상신을 모시고 천손 신앙으로 공동체 이데올로기를 통합하는 아스달의 차이 등은 나름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3.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처음에 이아르크 씨족이 아스달로 끌려가서 노예로 팔린다는 줄거리에서, 이건 구약 성서의 출애급 스토리 (약 3500년 전 추정.)와 비슷한 전개가 되겠구나 했는데 끌려가고 난 다음엔 핍박받는 하층 민족의 설움과, 역사를 빨리 맞이하고 늦게 맞이한 두 민족간의 갈등과 변화 등을 다룬 그런 게 아니라 무슨 로마시대 병정들같은 투구 망토 걸친 애들이 저들끼리 싸우고 점점 아스달 내부의 음모와 정치 극화가 되어 갔다.

     

    상상력은 넓게 그려주는 것이 참 고맙긴 하지만, 희곡이란 근본적으로 갈등의 촛점이 맞아 있어야 하는데 진행 과정에 늘 키포인트가 흐릿하고 그게 또 갈수록 심해졌던 것이 관심을 떨어뜨리는 장본인이었던 듯하다.
    핍박받는 민족 대 지배 민족간의 갈등인지, 고대 제국 (여기선 왕조차 없는데 무슨 제국) 내부의 정치-종교 엘리트간의 갈등인지, 잔인하게 뇌안탈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인간과 그 남은 사생아들간의 갈등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 망작 소리를....)

     

    그러나 이런 시도 자체만큼은 나는 크게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을 고발하고, 인류에서 평화가 어떻게 없어졌는지, 문명과 국가 등, 우리가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증오, 죽음과 소외로 이어진 게 역사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거라면, 안방에서 그런 걸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시청률이 낮다 해도 원래의 의도를 궁색하지 않게 표현하고 끝내주기 바라 마지 않는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그리고자 하는 시도가 혹평 속에 끝나고 사장돼 버린다면 우리는 맨날 로맨틱 코미디랑 조폭들 폭력극 말고는 볼 게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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