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감상문을 쓰기 전에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 하나 꺼낼께요. (재미 없는데....)
제가 대학교 2학년 때니까... 91년도였던 것같네요. 뭐 벌써 20년도 더 전이네요.
1학기 중간고사 시험공부할 때였나 그럴 꺼에요.
도서관에 있다가 저녁 8시경? 아마도... 귀가하는 길이었어요.
지하철 역 계단을 올라오는데 전경(전투경찰)들이 쫙 도열해 있네요.
음 저 친구들 뭐 하나 또? 이러면서 가는데 (거기서 집까지 5분이 안 걸림)
전경 한 명이 신분증을 보재요.
전 멋도 모르고 학생증을 꺼냈죠. (그땐 제 학생증이 자랑스러웠나봐요 ㅋㅋ)
그랬더니 따라오래요.
뭐 잘못한 게 있는 것도 없고. 그냥 공부하다가 집에 가는데 경찰이랑 볼 일이 뭐 있나 싶어하면서, 그냥 또 따라갔죠.
근데 전경 버스에 타라고 하더라고요.
??
이게 뭥미 뭥미 하면서 왜 타야되나요? 그랬더니
"아니 뭐... 그냥, 금방 끝나요. 좀 짜증나실 수 있는데, 잠깐만 타주세요"
"아, 네...~~"
아 참 정중하네 생각하면서 올라탔죠.
올라탔더니 전경차 한 대가 다 저랑 비슷한 고만고만한 또래의 젊은 남자들로 꽉꽉 차 있어요.
그러고 나선 문을 닫더라고요.
그때부터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어요.
전경 한 명이 갑자기 소리를 질러요.
"야이 빨갱이 새x들아 고개 숙여!!"
그러구 다른 전경은 고개 들고 있는 애들 머리를 주먹으로 마구 때리드라고요.
이건 또 뭥미
그래서 고개를 무릎까지 처박았죠.
"고개 드는 새x 가만 안 둬." "소지품 꺼내! 소지품 검사한다."
그래서 가방 열고 속에 있는 거 죄다 꺼냈어요.
'소지품에 뭐가 있다고 저러나? 뭐 훔친 것도 없는데....'
속으로 생각했죠.
왜 저렇게 소리를 질러?
고개 들면 맞을 게 뻔한 데 누가 고갤 들겠어? 라고....
버스가 출발을 하고, 어디론가 자꾸 가드라고요. 거진 한 시간을 간 것같애요.
경찰들 무전하는 거 들어보니까, 이쪽 근방 경찰서들이 전부 다 너무 꽉꽉 차서,
북부 경찰서로 간대나
뭐 그런 얘기들을 하는 것같드라고요.
여기까지도 이해가 잘 안 갔는데,
더 이해가 안 간건
버스가 정차한 후 내릴 때예요.
내려보니 무슨 경찰서드라고요.
그리고 도로 표지판 대충 보니 수유리쪽인 것같앴어요.
근데 갑자기 영문 모르고 제가 퍽 소리랑 함께 쓰러졌어요.
누가 발로 찬 거에요.
누가 날 때린 건가 봤더니 경찰이드라고요.
왜 맞았는진 잘 모르겠는데 자꾸 욕을 하는 걸로 봐선
음 저 사람 화가 많이 났구나 싶드라고요.
아마도 제가 뛰질 않고 걸었기 때문이었던 것같애요.
저뿐 아니라 여러 명이 그렇게 얻어 맞으니까, 그때부턴 다들 뛰더라고요.
하도 깜짝 놀라서 아픈 줄도 몰랐어요.
그 경찰 신발자국 그때 입고 있었던 점퍼에 그대로 도장돼서 찍혀있었어요.
경찰서에 죄인들처럼 끌려들어가서, 무슨 지하로 들어가는 것같드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게 식당이었던 것같애요. 구내식당.
식당에다가 감금해놓드라고요.
영문을 모르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왜 끌려왔는지도 모르겠고
왜 얻어맞았는지도 모르겠고
어림잡아 거진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그냥 입 다물고 계속 앉아 있었어요.
옆 사람하고 말이라도 했다간 또 얻어터지거든요.
좀 높은 사람인 걸로 보이는 경찰이 한 명 나와서 얘길 해요.
"여러분은 오늘같은 날 거기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잘못이 있었어. 오늘 좀 억울할 지 모르겠지만, 아침까진 못 나가니까 그리들 알아."
무슨 소린진 못 알아먹겠고, 여전히 왜 여기 있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아침까지 있었어요.
집에서 걱정할 것같애서 (당시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 전화를 한 통 하고 싶은데
전화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분위기였어요.
아침 되니까 밥은 주드라고요.
공짜로 감사히 밥 얻어먹고
(흰밥, 무말랭이, 깍두기. 딱 그렇게만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도 다들 잘 먹드라고요.)
"이제 귀가해. 이 인원이 한꺼번에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지 모르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몇 명씩만 나간다 알겠나? " 라고 해서
"네"
대답하고 다들 나왔어요.
수유리쪽은 태어나서 처음 나와본 데였어요.
대체 얼루 가야 집이 나오는지
몰라서 좀 헤메다가
결국 지하철 타고 집으로 일단 왔어요. 아침 7시쯤? 됐을 꺼에요.
집에 들어가니까 당연 난리 난리 바가지였죠. (당연하지...)
아무 연락도 없이 외박하고 아침에 들어가니
잠바에는 흙도 묻어 있고 (전경 발자국)
"너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닌 거냐? 연락도 없이"
"그게요. 이러고 저러고...."
"뭐어?"
아버지께서 북부경찰서에 전화를 했어요.
"우리 아들이 영문도 모르고 거기 끌려가서 갇혀 있었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시오."
뭐 대답이 없었대요. 전화 받는 사람이.그래서 아부지가 화냈어요.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경찰서에 가둬놨던 거요?"
"아무 잘못 없으셨어요. "
라고 대답하더래요.
"아니 잘못이 없는데 왜 그런 겁니까?"
"죄송합니다. 저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아버지는 막 씩씩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지셨지만
뭐 어쩔 수 있나요.
노태우 대통령때도 역시 군사정권인 건 똑같으니....
저는 학교갈 때가 다 되서 대충 씻고 옷 갈아 입고 학교에 가는데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읽는 신문 보고서야 무슨 일인지 알았어요.
정원식 국무총리가 외대에서 강연을 했는데,
외대 학생들이 계란이랑 밀가루를 던졌대요.
그래서, 경찰이 그 근처 인근, 모든 학생처럼 보이는 애들을
싸그리 다 잡아 가뒀다고 하네요.
일국의 국무총리에게 감히 계란을 던지다니,
그 동네 대학생들은 모두 빨갱이들이다.
모두 잡아 가두고 벌을 주어라
이렇게 위엣분께서 엄명을 내리셨던 것같애요.
난 근데 외대 학생도 아닌데....
그냥 대학생처럼 보이니까 무조건 때리고 잡아 가뒀던 거에요
이 사건으로 인해,
의과대학생이었던 저는 우리나라에
왜 민주화가 필요한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었어요.
이상 아주 아주 옛날 호랭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였구요.
(지루하셨죠?ㅋㅋ)
이제 변호인 얘기 할께요.
변호인이 오늘 아침부로 관객 7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하드라고요.
본 사람들이 다 좋았다고 하고, 감동적이었다고 해서.
게다가 송강호가 나오니까. 당연히 재미있을 줄 알고 예매해서 봤어요...
제가 들어갔던 상영관은 평소에 그리 사람이 많이 차는 곳이 아니었는데, 근데도 빈 자리가 하나도 없드라고요.
다 보고 난 후 제 평가는 이래요.
기대 이하에요.
왜 기대 이하였는지 설명해 볼께요.
변호인이라는 영화의 모티브는
인권 변호사의 이야기에요.
인권이 짓밟히는 자를 옹호하는 사람
진실을 힘으로 덮고 은폐하려는 공권력에 맞서서
계란으로 바위 치듯 무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약자를 변호하는 이야기.
비슷한 사건들이 사실 외국에서도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비슷한 사건들이 외국에서도 영화화가 많이 되었던 것으로 알아요.
정말 강한 자에게 맞서서 진실을 지키고 약자 편에 서서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는
당연히 정말 감동적인 스토리가 되어요.
스토리 자체는 감동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네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국밥에 비교를 해볼까요.
저는 돼지국밥을 정말 좋아하는데, 국밥이 맛있으려면 단지, 고기를 좋은 걸 쓰고 잘 다듬기만 해서 되는 건 아니죠.
사골 국물을 잘 우려내야 되고, 고기도 잘 넣어줘야 되고, 좋은 부위를 선별해야 되고, 밥도 맛있어야 되고 간도 잘 맞아야 되고 파 등 갖은 채소도 좋아야 되요.
맛이라는 건, 돼지고기 맛, 파 맛 등 하나의 맛만 가지고 행복감을 주지는 않는 것같애요.
여러 가지 맛 재료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맞추었을 때,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영화의 재미는 그와 같이, (영화는 소설이나 위인전하고는 다릅니다....) 여러 가지의 재료, 요소들이 "맛있게" 버무려졌을 때 나옵니다.
송강호의 '변호인'은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껏 만든 영화임에 틀림 없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재료들이 혼합돼서, 맛깔나게 버무려지질 않았네요.
예를 들어 저는 영화 볼 때 음악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주인공 송변의 고뇌, 송변이 힘든 모습 등이 나올 때
그것을 대변하면서 같이 맞춰줄만한 좋은 음악이 들리질 않았어요.
영화의 장면 장면이 넘어가는 부분도,
조그마한 시냇물들이 모여서 87년 6월 항쟁이라는 큰 물줄기로 합해져, 결국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었다라는
영화의 가장 큰 테마
즉, 약한 계란으로 바위를 계속 계속 때리다 보니, 결국 세상을 변화시켰다라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정수를 향해 달려가는 모든 부분이
웃음과 울음, 반전이 섞여서 영화적 맛을 주면서 넘어가기보다는
흡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너무 연대기적 스타일로 장면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나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송변이 앞장선 시위 장면이야말로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최루탄차 한 대 나오고 전경 체포조 몇 명 나오고
연막 뿌리고 끝났어요...... ㅠㅠ 실제 87년 6월 그때 사람이 얼마나 많이 나왔었는데. 온 도로가 다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송 변호인이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변호하고 고뇌 속에 지내온 세월들.
그리고 마지막 재판정에 99명이나 되는 변호인들이 참석했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이 녹아있던 그 시대의 염원이
거대한 역사로 분출되는 과정,
그 장면을 저렇게 처리하다니...... 흑흑 (잠시 눈물 닦고)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이란
하나의 산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등산을 해보신 분이면 잘 아시겠지만
산 넘어 또 산이란 말이 있듯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깔딱 고개를 힘들게 힘들게 걸어올라와
아 이제야 좀 편한 길이 나오나 했을 때
또다시 급경사가 나오고
셀 수도 없이 많은 계단을 올라가서 이제 좀 쉬겠구나 했을 때
또 힘든 길이 나타나고
이 길이 대체 언제 끝나나 하면서 하염없이 가다보면
어느새 정말 높은 곳으로 올라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그런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 명의 영웅이 87년 6월 항쟁을 탄생시키진 않았죠.
고 박종철 군 한 사람 때문에 군사 독재 정권이 물러나진 않았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민주화가 무엇인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온 것이라고 봐야죠.
변호인의 제작팀이 의도한 게 무엇이었을까
계속 생각해 보았습니다.
- 우리나라 현실은 아직도 비민주적이다. 이 영화로 인해 민주화가 더 앞당겨졌으면 좋겠다. ?
-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고 간 한 분의 인물을 추억하고, 그 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다. ?
- 국민들에게 인권이란 무엇인지, 계몽하고 싶었다.?
뭐 어느것이건 좋습니다. 그런 뜻을 갖고 있었다면, 영화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다만, 영화는 영화만이 가져야 하는 꿀맛같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송강호의 '변호인'을 보고서는, 그러한 제가 기대했던, 흡사 끌맛같은 영화로서의 , 단지 영화이기때문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부족하지 않았는가? 라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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