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저희 아들과 같이 봤어요. 13살짜리가 보기에 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우리 꼬마 아이는 예상과 달리 2시간에 걸친 영화를 꽤나 집중력 있게 보더라고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우리 꼬마한테 물었어요. "이 영화는 게임하고 똑같지? 미션 1이 끝나지 못하고 플레이어가 죽으면 다시 미션 1 처음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미션 1을 끝내면 그 다음 미션 2가 나와. 더 어려워져. 도저히 못 깰 것같지만 죽으면 또 미션 1부터 다시 시작해.
이걸 계속 처음으로 돌아가서 수도 없이 하다 보면 결국 미션 클리어를 해내게 되어 있어. 그렇지 않니?"
꼬마가 대답해요. "알아. 그런 것같아." 이 뜻밖의 대답에 저는 저도 모르게 껄껄 웃었어요. 요즘 비디오 게임 세대의 아이들은 게임식의 구조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렇습니다. 제가 더그 라이먼 감독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보면서 느낀 점은 이젠 영화가, 싸움, 전쟁, 지구 구하기, 이런 것을 게임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라는 거죠.
여 주인공이 기관총 바주카포 다 냅두고 댑빡만한 칼을 휘두르면서 외계인 괴물들을 베어 나가는 장면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게임에서 막 나온 여전사 캐릭터를 억지로 옮겨 심은 거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벽에 부닥친 서양적인 세계관, 서양인들의 삶과 생각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어요.
서양적인 세계관은 알파와 오메가로 선명하게 보여집니다. 즉, 기독교의 교리,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는 거, 끝장을 봐야만 한다는 게 서양적인 생각이에요.
알파라는 덩치 큰 외계인이 있고 오메가라는 외계인의 두뇌에 해당하는 괴물이 나와요. 주인공들은 알파로부터 대항을 시작하고 오메가를 무너뜨림으로써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끝도 없이 사투를 벌이게 되요.
어느 한쪽이 무너지지 않으면 끝은 없어요. 죽거나, 혹은 살거나, 그것이 늘 문제인 거죠.
중간이 없는 거에요. 공존도 없고 같이 살아나갈 방법도 없지요.
비디오 게임이 이것과 똑같아요.
미션 클리어를 하거나, 아니면 게임에서 패하여 더이상 못하게 되거나 딱 둘 중에 하나인 거에요.
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은 이런 서양적인 세계관, 일직선으로 돌아갈 길 없이 계속 가다가, 벽에 부딪치게 되었을 때,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란스러워하는 속내를 보여주고 있어요.
시간의 어떤 특정한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삶을 또 살게 되는 것은 동양적인 세계관의 일부에요. 윤회에 해당하죠.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올라와서 똑같은 일을 계속 겪게 되는 것이 서양인의 관점에서 동양적인 세계관을 일부 차용한 거라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일부'만 그렇게 했을 뿐이에요. 동양적인 시점에서 이 스토리를 계속 밀고 나갔다면, 주인공은 끝없는 순환/ 윤회를 계속하면서 결국 외계인과 싸움을 하기보다는 모두 파멸하지 않는 길을 찾아나가겠죠.
전쟁, 승리 혹은 패배, 생존 혹은 죽음, 정복 아니면 정복당함. 구원 또는 사망. 이것이 서양적 관점이라 한다면 상생, 공존, 윤회, 순환, 순리 (운명을 받아들임) 등이 동양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어떻게든 상대를 파멸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속에서 비디오 게임을 본딴 구조를 만들고, 주인공들은 윤회를 거쳐 더 강해져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고 끝납니다.
말하자면 동양적 관점을 약간 뒤섞은 철저히 서양적 전쟁물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베르덩 전투를 언급하고,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전을 연상케 하는 해상 공수 병력 투입, 그리고 전쟁의 후반에 러시아와 중국이 참전해 전쟁을 완전히 종결케 하는 스토리는 완전히 유럽/미국적 관점의 전쟁 드라마였습니다.
- 영미쪽에서 만든 전쟁 영화 볼 때마다 웃기는 점인데 사실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노르망디 상륙전이 아니고 독소전 즉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였음.....
즉, 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히틀러와 스탈린의 격돌에서 스탈린이 승리해 끝낸 전쟁이라고 보는 견해조차 있을 정도로 소련의 역할이 대단했는데, 미국과 유럽에서 만들어내는 전쟁 영화들은 애써서 이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 -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전투 장면들은 스타쉽 트루퍼스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짬뽕해 놓은 듯한 느낌인데요. 좀 더 영화의 이념적인 면을 들여다 본다면 스타쉽 트루퍼스는 군국주의, 국가주의를 상징하는 느낌이고
라이언 일병은 위대한 미국 그레이트 아메리카!를 부르짖는 신파인데 비해 엣지 오브...는 이념 자체가 좀 모호해요.
사실은 이 영화는 그냥 여러 가지 모티브 즉 미래의 전장, 2차 대전/1차 대전, 게임식의 플롯, 영웅과 여전사, 윤회/순환, 나비효과와 같은 시간 방황 등 수많은 - 이전에 여러 영화들에서 이미 건드렸던 - 모티브들을 잘 버무려서 만들어 놓은 하나의 비빔밥같은 영화라고 정리할 수도 있겠네요.
영화를 보고 난 후 약간 멍해지는 것은 그때문인 것같기도 합니다. 스타쉽 트루퍼스를 보고 난 다음에는 날 보고 나찌 군인이 되지 않겠느냐고 누가 물으면 바로 입대하겠다고 소리지를 것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오늘 영화 감상문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너무 여러 요리 재료가 있어서 산만했지만 의외로 맛은 좋았던 영화. 톰 크루즈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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