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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남녀 - 병원에서 영웅을 바라보다

    슈퍼맨, 배트맨, 로보캅, 아이언맨, 람보, .... 등등 수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많이 끌고, 웃고 울고 박수 치게 만드는 이야깃거리들을 보면, 공통점들이 있는 것같애요.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손길이 가는 것.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타이밍 적절하게 누군가 나타나 주는 것. 그래서 문제를 아주 깨끗하게 해결하고 사라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캐릭터를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부르죠.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이야기들에 실상 거의 다 '영웅'이 들어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해요.

     

    사람의 심리 속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뚝 서고 싶은, 혼자서 박수받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현실 속에서 몇몇 없기에,  대신에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대리만족, 대리 성취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는 거죠.

     

     

    tvN의 드라마 응급남녀를 보면서도, 자꾸만 저는 머릿속에 그런 느낌이 스멀스멀 드는 걸 지울 수가 없어요.

     

    제가 인턴을 했던 때는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이에요.

    당연히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돼요.

    하지만, 그때도 느끼고 고민했고 힘들어 했던, 그런 문제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리고, 상급 병원 즉, 응급 의료 진료 시스템과 각종 임상 검사, 영상 검사, 병리 검사, 판독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있는 .....  의 구조 역시 지금도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대의 병원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거지요.

     

    한 명의 영웅이 나타나서 혼자 막 잘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지난 지 한참 됐어요.

     

    지금은 모든 진료 파트가 세분화 되었고 그에 따른 수많은 과정을 따라가야 하는 구조적 체계가 가면 갈수록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영웅 제일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이 만든 미드들 - ER이나, 그레이 아나토미같은 - 도 마찬가지이고, 우리나라 드라마들도 자꾸 그런 식으로 따라가려고 합니다.

     

    즉, 병원의 기존의 구조적 시스템에 반발하여, 어떤 영웅이 나타나서 휴머니즘을 실현하고 사람을 살려내는 내용을 자꾸 만들려고 하더라고요.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환자 앞에 최여진이 나타나서 갑자기 피하 기종이라면서 칼로 흉부를 절개해 감압하는 모습이 나오죠.  기존의 의료 시스템을 거부하고, 한 사람을 영웅으로 내세우려 하는 장면인 거에요.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피를 토하는 환자에게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자 기관 절개 삽관을 인턴이 하는 장면도 나왔죠. 역시 기존의 서열적 의료 시스템을 거부하고, 한 사람을 영웅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있는 거에요.

     

     

    이걸 어떻게 비유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생각해 봤어요.

     

    차를 타고 가다가, 음주운전 역주행을 하면서 위험천만인 만취한 운전자를 봤다고 칠까요.

     

    저 사람을 가만히 뒀다간 틀림없이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 의협심으로, 내가 차를 돌려 나도 역주행으로 그 차를 쫓아가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요행히 그 만취 운전자를 잡아서 운전을 못하게 하고 경찰서에 넘겼다. 그러면 정말 좋은 일이었겠죠.

     

    하지만, 저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꺼에요. 잘못하면 역주행 운전자도 죽고 나도 죽고 또 애매한 제3자까지 다 죽는 참담한 결과가 올 수도 있으니까요.

     

    위에 예시한 장면이 바로 그런 장면이에요. 영화 속에서 영웅은, 도박을 하고 불확실한 일에 목숨을 걸면서만 만들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의료업에 있어서만큼은 저는 이런 영웅에 대해서는 정말 반대에요. 왜냐하면, 진짜로 사람을 살리려면, 그 병원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기흉 환자에게 튜브를 삽관했는데 안 좋아진다. 그럼 x-ray를 다시 찍는 게 맞습니다. 또 심낭 압진같은 것이 의심되면 초음파를 해야 할 수도 있고요.

     

    사람들이 병원에 대해 아쉬운 점이 생길 때마다 그런 '영웅'으로 떠올리는 것이 허준이나 히포크라테스인데요.


    허준처럼 진맥 한번 하면 무슨 병인지 죄다 알고, 또 청진기 하나 들고 환자 상태 다 파악하고 적절한 처치를 내리면 되었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났습니다.

    사실은 그런 시대에에 말로 메디칼한 '영웅'이 탄생할 수 있었죠.

     

     

    그러나 현대의 병원에서 의사는, 수도 없이 많은 의료 기계와 다양한 진단 기기,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있는 검사실 장비, 소프트웨어, 진료 보조 인력, 수술 기계 및 회복 기계, 진단 모니터 기계, 생명 유지장치 등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 가운데에 서서 그것을 콘트롤하고 지휘하는 역할로 자리매김이 바뀐 거에요.

     

    즉, 잘나고 똑똑하고, 의협심 많은 의사 한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된 거죠.

     

    환자를 살리는 영웅은 잘 가다듬어져 있는 시스템이에요. 수많은 사람들이 붙어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런 구조적인 체계인 거죠. 왜냐하면, 진료 자체가 너무나 세분화되었고, 교육 역시도 그렇게 엄청나게 세분화되어서 진행되거든요.

     

    응급남녀의 최진혁 송지효의 특별한 러브라인은 참신하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의료적 상황에 대해 제대로 자문을 받아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응급 처치, 수술 장면 역시 보기 좋아요. 전체적으로 참 재미있는 드라마에요. 그래서 즐겨보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메디칼 드라마를 보는 - 의료업에 종사하지 않는 - 분들이 이것 하나는 알고 보셨으면 해요.

     

    현대의 병원에서는 혼자 튀는 의사는 있을 수 없다.

    현대의 병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움직이는 시스템에 의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왜 허준같은 명의가 없느냐?

    왜 히포크라테스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엔 안 나오느냐?

    왜 최진혁 송지효와 같은 - 과감히 환자의 목숨을 살려내는 - 의사가 없느냐?

     

     

    답은 한결같이 똑같습니다.

    시대가 바뀐 거죠.

     

    오늘은 tvN 드라마 응급남녀를 보면서 자꾸 자꾸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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