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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별 예선 탈락. 그래도 고개를 들라 태극 전사여.

    고개를 들라. 태극 전사여.

     

     

    정확히 1년 전이군요. 홍명보 감독이 취임한 것이 2013년 6월 24일이었어요. 6월 18일 아시아 지역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한국이 이란에게 패하자 전임 최강희 감독이 사임하고 얼마 안 돼서였어요.

    2002년 이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늘 어렵게 어렵게 경기를 펼쳐 왔어요.. 아드보카트 감독, 허정무 감독, 그리고 2014년엔 이 어려운 국대 감독 자리를 홍명보 감독이 맡아주게 되었어요.

     

    홍명보 감독의 선수 선발, 기용에 대해 브라질 월드컵 조별 예선 탈락이 확정된 지금도 끊임없이 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선발/기용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글은, 경기 자체, 게임 자체를 놓고 그냥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조별예선을 탈락한 지금 하나의 넋두리일 수도 있고요.

     

     

     

     

    1차전 ; (러시아전)

     

    제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양팀 선수 모두에게 아주 힘든 경기였어요.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였는데, 아주 덥고 습한 곳이었어요. 그리고 운동장 사정도 별로 안 좋았어요.

    러시아팀은 지난 월드컵에서 히딩크가 지휘할 때와 많이 달라 보였어요. 공격이 날카롭지 않았고, 투지 넘치는 유기적인 팀웍도 많이 눈에 띄지 않았어요.

     

    그래도 멤버상으로 볼 때 또 피파 랭킹 역시 우리보다는 한 수 위 팀이었어요. 그래도 그나마 가장 해볼만한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홍감독님도 이 경기장에서의 승부는 체력이 관건이다 생각하고 더운 곳에서 전지 훈련을 하고 러시아 친구들이 버티지 못할 만한 타이밍에 승부를 거는 것으로 작전을 한 것같애요.

     

    결과로 볼 때는, 이런 작전 자체가 어느 정도는 통했다고 생각되어요. 왜냐하면, 전반 뒷부분 - 후반 첫부분 - 중반까지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좋았었거든요. 하지만, 1대0으로 이기다가 1대1로 동점골을 허용하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기세가 많이 오른 러시아 선수들의 파상적인 공격을 막아내는데 급급한 모습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날 경기는 더 큰 변수가 있었는데,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경기장 잔디와, 고르지 못한 그라운드 사정, 그리고 아직 적응하지 못한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가 더 문제였드라고요.  

     

     

    물론 아킨페예프 골키퍼가 닥질을 해서 첫골이 들어갔다고도 말하지만, 골 장면을 가만히 보면, 이근호의 슛이 상당히 강했고 골키퍼들도 이 공인구가 마구 흔들리면서 오는 데에 당황하는 게 역력했어요. 골키퍼는 이 공을 쳐서 떨어뜨릴 건지 잡을 건지를 확실히 정하고 공을 만졌어야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동작이 되다 보니 뒤로 빠뜨리는 실수를 하게 된 듯합니다.

     

    사실 우리가 허용한 동점골이야말로 러시아 입장에서 행운의 골이었어요. 골문 앞에서 공이 마구 왔다갔다 하는 혼전 속에서 발에 걸려서 들어간 거니까요.

     

    우리 선수들이 나이가 어려서 체력적으로 잘 뛰는 것은 있었지만, 마인드 콘트롤에서 잘 안 됐던 것은 이번 대회 내내 뼈저리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어요. 골을 넣었으면 물론 기분이 좋지만, 긴장이 풀리면서 수비가 느슨해진 게 이 경기의 문제점이었어요.

     

    2차전 ; (알제리전)

     

    알제리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유목민 국가에요. 유목민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농경민족들하고 정말 다릅니다. 끈기가 없어요. 부지런하질 않고.

    그러니까, 뭔가 일이 잘 안 되고 있는 것같으면 우리나라 사람들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봐서, 되도록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쟎아요?

    이쪽 애들은 그런 게 없어요. 안된다 그럼, 그냥 포기해 버려요. 습성이 그래요.

     

    알제리 축구가 그래요. 뭔가 기회가 잘 안 살고, 골 먹고, 그러면 이 사람들은 그 이상 안 뛰고 놔 버려요. 

    근데 반대로 좀 잘 풀리는데 싶으면?  그땐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살아나요. 드리블이며 개인기며 돌파, 패스, 슈팅 모든 게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막 나가버려요. 

     

    이런 팀이랑  경기할 때는 절대 기를 살려주면 안되는데,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경기하던 우리 선수들이 한 골을 허용하고 나자 기가 살아난 알제리 선수들한테 완전히 말려버렸어요.

    결국 2차전도 마인드 컨트롤의 패배였던 게임이었어요.

     

    1대0이건 2대0이건, 우리가 한 골이라도 만회하면 이 친구들은 자신이 없어져서 실수도 많이 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팀인데, 계속 기가 살아서 펄펄 날뛰게 내버려 둔 게 패인이었다고 봐요. 후반 들어와서 3대 1을 만든 손흥민의 골이 조금만 더 빨리 나왔더라면, 경기 결과가 충분히 뒤집혔을 수 있었어요.

     

     

    축구도, 마인드 컨트롤의 게임인 것같애요. 심정적으로 쫓기고 멘붕이 오고 그러면, 자기 실력의 10분의 1도 못 발휘하고 끌려다니다가 끝나는 거같애요.  알제리전이 바로 그런 게임이었어요.

     

    3차전 ; (벨기에전)

    벨기에는 전통적인 강호는 아니지만,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 나온 팀은 아주 꽉 짜여지고 단단하드라고요.  내로라 할 스타 플레이어가 있다기 보다는, 강한 팀을 상대하기 유리하게끔 팀이 아주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었어요.

     

    이번 대회 벨기에의 팀 컬러는 탄탄한 수비 + 날카로운 카운터 어택이에요.

     

    이렇게 경기하는 팀들은, 우리 한국 축구가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성격인 것같애요.

    한국은 골 결정력이 약해서 미드필드에서의 압박으로 볼 소유권을 높이고, 다양하게 치고 들어가다 보면 두드리면 열린다는 식으로 결국 골을 내는 반면 빠른 역공에 수비가 잘 허물어지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벨기에의 이런 경기 패턴은 우리에게 제일 안 좋은 거였어요.

     

    엎친 데 덮친 건 뭐냐 하면, 한국이 조별 예선에서 살아남으려면 벨기에에 많은 골득실로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우리 어린 선수들이 마음이 급했어요.

    꼭 많은 골을 넣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심했던 것같애요. 이러다 보니까 벨기에의 이탈리아 빗장 수비에 견줄 만한 수비 벽을 제대로 뚫지 못했어요.

     

    그리고 한 명이 퇴장당해 11대 10으로 경기하는 동안에 오히려 마음이 더 급해졌어요. 숫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지금 빨리 골을 더 넣어야 한다는 마음에 더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한 것같애요. 이 상황에서 실점이 나온 것이고요.

     

    정신력 얘기 그만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실력의 차이라고 하는 분들 많더라고요.  하지만, 돌파 능력, 드리블 능력, 패스 정확도 이런 것들. 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해요. 축구는 11명이 하는 게임이니까요. 손발이 척척 맞고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팀,  침착함과 긴장감을 끝까지 늦추지 않는 팀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팀이라고 생각되어요. 우리 이번 대표팀은, 너무 어리고, 그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캡틴 박지성과  같은 선수가 없었던 게 가장 어려웠던 점이 아니었냐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마디 꼭 하고 싶군요. 이런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 잘 해줬어요.

    해외파랑 국내파 손발 맞출 시간도 별로 없었고요. 감독도 취임한지 얼마 안 됐고요. 리그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쉴 시간이 없이 소집돼서 힘들게 먼 나라로 가서 뛰었어요. 덥고, 습하고, 먹는 것과 물 한 모금까지 우리나라하고 다른 데예요.

     

    고생했습니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비록 경기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선수들 하나하나가 고군분투 하는 모습은 여실히 보였어요. 힘들었을 거에요. 토닥토닥. 축 늘어뜨린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네요.

     

    기성용, 손흥민, 구자철, 홍정호, 윤석영, 이용, 한국영 모두 나이 어린 선수들이고 앞길이 창창해요.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분명히 제2의 캡틴 박지성, 제2의 차붐, 제2의 홍명보가 나타날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 때에는, 지금 땅을 치면서 분한 눈물을 흘렸던  브라질에서의 패배가 결코 헛된 게 아니었으리라 회상하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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