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9년에 입대해 육군 11사단과 1군 사령부에서, 군의 장교 규정 기간대로 38개월간 군의관 복무를 했습니다.
어느날 외출을 나와서, 어머니랑 형제들이 같이 어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시는 분을 만나서 자녀들을 소개해 주시는 겁니다.
"얘는 첫째고 ~~에 있어요 얘는 둘째고 ~~에 다니고 있고요. 얘는 셋째고 군대에 있어요"
라고 하시는데 거기 있던 사람들이 '군대에 있다'는 말을 듣고 다들 빵하고 터지는 겁니다.
'ㅋㅋㅋ 군대에 있대~~'
좀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게 아니고 기껏 군대에 있대? 라는 식의 반응이었던 거죠.
저도 어색해서 얼굴이 붉어지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건 문제가 있다 싶었어요.
옛날에 "인턴 X"라는 미국인 의사가 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주인공이 힘든 인턴 생활을 마치고 난 다음 진로를 어디로 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가지를 고민하는 대목이 있었는데요.
어떤 사람은 내과를 지원하고, 어떤 친구는 외과를 지원하고, 어떤 친구는 시골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등등,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 선택들이 있었어요.
헌데, 가장 많은 의사들이 부러워하는 진로를 선택한 사람은
미 해군에 입대하는 인턴선생이었던 거죠.
가장 멋진 선택이다. 라고 다들 얘기하던 게 군에 입대하는 의사였던 겁니다.
미 해병대 행진 사진
이사람들은 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를 하였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경력으로 남아요.
어디에 지원서, 추천서를 넣을 때도 꼭 써넣는 항목이 되는 거죠.
군에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있으면 우대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 겁니다.
미 해병대 훈련 사진
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이 부분이에요. 여러 해 전이지만, 어떤 레스토랑에서 군복 입으면 출입금지. 라는 푯말을 써붙여서 뉴스에 나왔던 적이 있어요. '군바리들 왔다갔다 하면 우리 식당 손님 달아난다' 라는 생각에 그런 것이겠죠.
군 경력 가산점 제도가 위헌 판결나면서 직장을 구할 때 군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게 된 것은 정말로 아쉬운 일이에요.
나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를 위해 몇 년을 부대에서 보냈는데, 사회에선 군바리라고 부르며 신분 낮은 사람으로 대우하고,
제대하면 사회생활을 훨씬 일찍 시작하는 군 면제자에 비해 취업 혜택조차 없으며
나는 군 복무중이다. 라는 말을 영광스럽게 자랑스럽게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정상은 아닌 것같애요.
요즘 군대 내 가혹행위와 폭행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었는데요.
이거 뉴스 나올 때마다 계속 군 지휘관이 사표 내고 바뀌고 있어요.
군 수뇌부에서 어떻게 저런 걸 모르고 있었느냐? 지휘관은 뭐하는 거냐?
이렇게 얘기들 합니다.
한마디로 황당한 일입니다.
부대 내 폭행, 가혹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에요.
이번에 처음 시작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지휘관 바꾼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닙니다.
군대를 들어가는 우리 청년들의 생각과 개념이 싹 바뀌지 않는 한 안 되는 일이에요.
요즘은 전부 다 한 집에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뿐이죠.
신주단지 모시듯 가정에서 키워 자라난 아이들이, 한 소대 분대가 아침부터 잠자리까지 다 한 장소에서 내무 생활을 하는 그 단체 생활을 어떻게 감당해 낼까요?
저는 문제의 시작이 이런 점이라고 생각해요. 군대를 떠나서, 단체 생활 자체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애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몸도 피곤하고 훈련도 교육도 작업도 고되지만, 제일 힘든 건 이런 단체생활 부적응자들 때문에요. . 군이라는 곳이 돈이나 좋은 대우, 푹신하고 편한 쉼을 위해 가는 곳이 아니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명예를 선택하며 가는 곳인데, 명예조차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군 생활에서 과연 그 누가 의미를 찾으며 병영생활을 할까요?
저도 훈련병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단체생활에 전연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친구들이 꼭 있어요. 이런 친구들 몇몇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소지가 늘 상존하고요.
북한군 열병식 모습
군에서 구타, 가혹행위, 얼차려, 등등 여러 가지 어두운 면들이 생기는 데는 근원적으로 우리나라에서 18세 이상 청년이면 무조건 가야 된다라고 죄다 한 장소에 몰아넣는, 시대에 맞지 않는 병역 소집법이 있어요.
단체 생활에 전혀 적응을 못하고 전우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친구들의 손에 총알과 수류탄이 들려 있다면 더 끔찍해지는 거고요.
군이 뼛속부터 바뀌어야 한다. 는 말이 나오고 있는 지금,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하는 건 육군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이 아니고
군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우대하고 멋진 사람들로 봐줘야 하고요.
그래야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의 마음가짐이 바뀔 것이고요.
스스로가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만 병영에서 부적응자들도 줄어들고, 수류탄을 들고 탈영을 한다든가 자살을 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죠.
청춘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국가에 헌납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에 걸맞는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건 월급을 몇 프로 올린다든지 하는 그런 보상이 아니고요. 힘들게 국가를 지키는 사람들로서 받아 마땅한 존경과 감사, 애정어린 시선을 받아야 하는, 마음의 보상이 훨씬 더 절실합니다.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칠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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