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경 한 SNS에 '성형외과 간호조무사 인스타그램 현재상황'이라는 제목으로 몇 장의 사진들이 올라왔습니다.
이 사진들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해졌는데요.
강남 모 유명 성형외과의 '수술실 파티' 논란에 대해 저의 개인적인 느낌을 한번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TV와 인터넷 뉴스 등을 봤을 때 논란이 된 사진들은 대체로 아래와 같습니다.
1. 수술실에서 불을 켠 케익을 간호조무사가 들고 있고 의사로 보이는 남성 사진이 있으며, 그 뒤로 얼굴이 포로 덮여서 누워 있는 환자가 한 명 있는 사진입니다.
아마 이 사진이 가장 문제였고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것같습니다.
환자는 수술 중인데 의료진은 태연히 파티를 하고 놀고 있다니 말이되느냐는 것입니다.
사진은 중국의 SNS에 올라와 논란이 된 중국 병원의 수술실
제가 이 사진을 자세히 봐봤는데, 환자에게 Intubation 즉, 기도 삽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같습니다. 즉 전신마취가 걸려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수면마취를 하고 있다면? 팔이나 다리의 정맥을 통해 프로포폴과 같은 수면마취약을 주입하면서 모니터가 돌아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환자가 의식이 없어지고 감시가 되는 거거든요.
하지만 사진상으로는 정맥 마취액 주입을 위한 수액통 또는 Infusion pump 같은 것조차도 보이질 않습니다. 또, 환자 머리맡에 앉아 있어야 하는 마취과 선생님도 보이지 않네요.
아마도 이 상황은 환자가 의식이 또렷한 상태이거나, 아니면 수술 시작 전 또는 수술 종료 후 상황일 꺼라고 봐야 될 것같습니다. 환자가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였다면, 아마도 환자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고 (이 팀 누군가의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벌인 파티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를 마취시켜 놓은 상태에서 수술은 안 하고 딴짓을 하면서 환자를 완전히 기망하였다. 라고 비난하기에는 이 사진은 좀 이상합니다. 의문의 여지가 있죠.
제가 보기에 이 사진의 문제는,
수술실은 수술만 하는 공간으로서 환자가 들어온 그 시점부터 종료되어 나가는 시점까지 한결같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곳인데 그런 긴장과 집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2. 간호사 (또는 조무사)가 가슴 보형물로 보이는 물건을 자신의 가슴에 댄 상태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환자 수술에 사용되는 물건으로 장난을 치다니 너무 진지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일었죠.
이 간호사는 수술복을 입고 있지만, 수술 모자는 벗고 있습니다.
수술 도중엔 반드시 수술모를 쓰고 있어야 하니 아마도 제가 보기엔 가슴 수술이 종료된 다음의 상황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입니다.
간호사가 가슴에 대고 있는 보형물에 피가 좀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보형물을 교체하는 가슴 재수술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차 유방 확대 수술에서는 수술 종료 후에 저렇게 보형물을 들고 있을 리가 없죠....)
재수술은 보통 수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니, 제 생각에는 힘든 수술이 끝나고 난 다음에 고생한 동료에게 사진을 남겨주고 싶었던 심정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그렇다고 그런 행동을 한 게 이해는 안 가지만......)
그러나 그래도 역시 문제가 많습니다. 환자가 수술실에서 바깥으로 나갔다 하더라도 수술 간호사의 업무가 종료된 게 아닙니다.
수술실 간호사는 수술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할 일이 무지무지하게 많습니다. 기구의 수량도 카운트하고, 파손된 물품이 없는지 확인하고, 거즈 등의 숫자도 맞춰보고.... (이런 기본적인 업무 수행을 안 하게 되면 환자 가슴 속에 거즈가 들어간 채로 수술이 끝나도 모르게 됩니다.)
이 병원의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수술실 간호사들은 날 선 군기를 다잡고 늘 긴장하고 있어도 모자란 판에 저런 태도로 일을 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면 과연 이들을 감독하고 교육할 책무를 다한 것이냐 라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3. 일회용 장갑을 널어서 건조하고 있는 사진 ;
대단합니다. 이걸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저거 얼마 하지도 않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일 오랫동안 하기 싫어하고 따지기 잘하는 친구들한테 저런 거 빨래하고 말리고 그러라고 일 시킬 생각도 못하는데 말입니다.......
4. 수술 도구로 팔찌 고치는 모습 ;
이 사진을 보고 네티즌들은 감염의 우려가 있지 않느냐라고 우려를 표했는데요.
한마디로 하면 저런다고 환자한테 병균이 옮아 감염이 생기진 않습니다. 수술 기구를 다른 곳에 유용(?)했다 하더라도, 실제 수술에 투입되기 전에 고온 멸균 소독 과정을 거치니까요. 환자한테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겁니다. 그 정반대로, 저러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에게 오히려 위생상의 위험이 있습니다.
수술 도중에 환자의 피나 체액이 묻었던 물건들입니다. 저 기구들을 자신들의 손에 쓸 때엔 환자가 갖고 있는 바이러스나 기타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들이 의료인을 감염시킬 우려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의료인이리면 첫째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함.....!...........)
그리고 주로 성형수술에 쓰이는 도구들은 아주 날카롭거나 미세한 것들이 많은데, 이런 기구들을 저런 작업에 사용하면 마모나 파손의 우려가 있으니 금지시켜야 합니다. 이 역시, 해당 병원의 의사, 또는 수술실 책임자가 간호조무사 교육을 잘못시킨 탓입니다.
5. 수술실 내에서 계란 등을 취식하고 핸드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사용 ;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 일련의 사진들이 보여주고 있는 건 '군기 문란 사건'이라 할 수 있어요.
이 병원에서 다른 병원에 비해 더 의료사고가 많았다거나, 더 수술중 감염 사례가 많았었다. 라고 결론이 나 있어서 비난받고 있는 것은 아니죠. .
단지, 엄정한 규율과 날 선 징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병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의 건수, 성형외과의 수는 지난 10년간 너무 심하게 팽창하였고 (물론 이는 우리나라뿐이 아닌 중국이나 일부 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그러한 급증한 수술 실무를 처리할 적절한 맨파워, 숙련된 실무 인력의 수급이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이 - 수술실 파티 사건 - 문제의 주요한 근간 중 하나입니다.
저도 개원해서 지금까지 늘 수술실 간호 인력의 문제는 골칫거리였습니다. 그게 1년 2년동안에 키워지는 인력이 아니거든요. 근데 설상가상 정부가 2008년 병상당 간호사 수가 적으면 입원료 보험수가를 5% 삭감하는 정책을 입안, 시행하면서 종합병원, 대학병원들에서 숙련 간호 인력을 급격히 흡수하다보니 나머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도저히 이를 해결하기 어려워진 것이죠.
왜 어렵느냐. 대한민국에서 여성 인력의 고용에 제일 큰 문제가 결혼/출산과 육아입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 간호 인력은 가장 Active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게 마련인데요. 이런 정도의 즉 최소 5~7년 이상의 수술실 간호 경력을 갖고 있는 인재를 헤드헌팅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겁니다. (어려운 게 아니고 그냥 불가능.....)
그러다 보니 20대 초중반의 어린 간호 인력으로 자꾸만 수술실을 돌리게 되버린 거에요.
이 사건은 한 마디로 '개념 없는' 어린 간호조무사들의 군기 문란 행위라고 간략히 말할 수도 있지만요.
그러한 상황까지 오게 된 History를 짚어본다면 굉장히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러한 의료보조 인력을 잘 컨트롤하여, 규율을 세우고 집행하지 못한 의사들에게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직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클리닉과 Hospital의 개념을 완전히 나눠서 클리닉의 개원의가 수술환자는 Hospital에 입원시키고 외래 진료는 Clinic에서, 수술과 입원 처치는 Hospital에서 한다면 가장 좋을 것같고....
아이를 낳아도 여성들이 마음놓고 모두가 다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육아 혜택과 시설을 완벽히 갖추면 되는데..... 휴우... 대한민국의 현재의 의료 현실에선 요원하죠.
오늘은 성형외과 수술실 파티 사건을 보며 저의 소회를 한번 적어 보았습니다. 좀 길었네요.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는 한 해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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