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만족스러웠던 결말
결국 사랑 얘기였어요. 밤잠 설치고 계속 보게 되고, 심금을 울렸던 그 얘기도 결말도.... 다 사랑이드라고요. 그것도 한드에서 맨날 우려먹기 일쑤인 재벌가 딸과 잘생긴 총각 사이의....
어쩌면 이렇게 뻔할까.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결국 사람을 푹 빠져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 얘기군요.
이경희 작가가 미안하다 사랑한다처럼 결말을 맺을까봐 어찌나 노심초사 했는지.....
그래도 이정도면 잔잔하고 좋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기억상실. 그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모진 운명을 거쳐서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루어지는 사랑 얘기. 이걸보면서 의사로서 저는 기억, 추억, 사랑, 증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기억을 잃으면 사랑도 함께 전부 사라지는 걸까요. 아니면 너무나 강렬한 사랑이면 결국 그 감정과 기억까지 같이 살아남는 걸까요.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에서는 강력한 운명의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면,
착한 남자에서는 운명의 힘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그 운명보다도
강하고 질긴 사랑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심장이냐 머리냐
마루가 "사랑이고 뭐고 그딴거 아니고, 단지 그냥 예전에 잠깐 아는 사람" 이라고 하자 은기가 마루한테 "내 심장이 알고 있었어. 내 심장이 널 기억하고 있었어. 얘가 기억하고 있었다고 널." 이렇게 대답하죠..
단지 의학적으로 말한다면 심장이란, 몸에 피를 돌리기 위해 존재하는 펌프에 불과해요.
단지 의학적으로 말한다면 사랑이란, 수없이 많은 여러 가지 신경 전달 물질들이 중추신경의 회로 속에서 복잡한 전기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만들어지는 정신 현상일 뿐이겠죠.
한데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란, 단지 거기까지인 걸까요
사랑은, 지식과 지능, 기억의 힘, 뇌의 연산 작용 그 모든 것보다 위에서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은기가 마루를 만나면서 자기 심장을 가리켰듯이, 지금껏 의학이 발견하지 못한 아예 완전히 다른 경로로 인간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죠.
현대의학은 아직 인간의 뇌에 대해서 10%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고들 말하거든요.
정신과학에선 어떤 심각한 정신적인 타격을 받았을 때 사람의 머릿 속에서는 여러 가지 방어 기전이 작동하면서 그것을 벗어나게 된다고 얘기하는데요.
예를 들어 실연을 겪었다고 하면 격리 (Isolation) 라고 해서 실연을 겪은 사실 자체는 기억하되 실연이라는 사건에서 느꼈던 감정 즉 실망, 분노, 슬픔 등은 기억하지 않게 되는 거에요.
힘든 일을 잊기 위해 많이들 이런 기전을 적용하게 되요. 그래야 멘탈이 견디니까요.
한데 은기의 경우에는 마루에게 온갖 모진 말을 듣고 실연을 겪자 사고 이후 오히려 반대로, 강마루를 사랑했다는 것을 먼저 떠올리고 또 사고 당신의 분노와 슬픔도 떠올리지만 실연 당시의 상황과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요.
진짜 가슴 아픈 모진 실연을 겪었다면 그 남자. 다시는 생각하기 싫고, 그래서 울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아 내가 그때 그 남자를 사랑했었지. 그렇게 되새기면서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겠죠.
그러나 진짜 서은기와 같은, 일반적인 멘탈 작용과는 반대의 상황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건 기억과 뇌의 연산작용이 아닌 가슴에서 인간 정신의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꺼에요.
우리가 은기와 마루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
인지능력의 혼란과 기억 상실, 모진 운명 등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남아서
순백으로 살아 숨쉬는 사랑이 이 드라마의 한 축이었다면,
또 하나의 축은 재물과 권력, 온갖 세상의 화려한 것들도 마다하고
기필코 선택되고야 마는 사랑이라 할 수 있겠죠.
이걸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람은 두말할 것없이 한재희에요.
"난 사랑을 다 포기하고 태산을 택했는데, 너는 어떻게 마루 하나 때문에 태산을 버려? 너 미친거야. 니가 잘못된 거야."
이렇게 절규하는 한재희의 대사가 결국 지극히 인간적이고,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의 선택을 대변하는 거겠죠? 하지만 이성적이고 지능과 지식에 의거해서 내리게 되는 판단대로 인간이 행동하질 않아요. 사랑이 그 대표적인 거에요.
그래서 저도 착한 남자의 마루와 은기처럼 사람이 행동할 수 있고 그렇게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져요. 바보스럽지만, 인간의 영혼이 고귀하다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요.
강마루와 서은기가 자꾸자꾸 기억에 남고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은 이것 때문이죠. 우리 인간들은 다같이 고귀한 존재들이고, 다같이 엄청난 재물보다도 가치있고 빛나는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거에요. 그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같애요.
문채원과 서은기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는 소지섭이 너무나 크게 보였어요. 머리를 다치고 시한부를 살고 있는 기구한 운명의 남자를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너무나 가슴 저리게 그려냈고 소지섭은 당연히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구요.
이번에 착한 남자에서는 그 자리가 다름 아닌 데뷔 6년차의 연기자 문채원의 것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남자는 은기의 시선에서 은기의 일관되게 따뜻한 순백의 마음으로 겪은 사랑 얘기였어요. 서은기의 사랑으로 인해 결국 강마루도 한재희도 다 다른 사람으로 변화해 나간 거고, 이 드라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은기의 사랑"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렸을 지도 몰라요.
임원회의에서 엄마의 추억이 깃든 리조트를 매각하면 안된다고 사정하는 모습은 오만한 재벌2세
서은기가 아닌, 사실은 너무나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를 그린 것이죠.
그 서은기를 연기한 문채원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의 사랑이 과연 설득력이 있었을까요.
문채원의 눈빛은 착한 남자 전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하염없는 사랑을 보여주었고, 드라마의 각본 때문이 아니라 거꾸로 문채원으로 인해서 비로소 서은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존재감이 빛났어요.
문채원의 존재가 너무나 크게 보였던 착한 남자의 결말을 보며 드라마가 끝났다는게 아쉬운 건지 아니면 문채원의 연기를 이제 못 보게 됐다는 게 아쉬운 건지 헤깔리더라고요.
이제 착한 남자가 끝났으니, 또 언젠가 이 훌륭한 배우를 더 좋은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기다려야겠죠?
맺으며
뇌는 기억의 저장소이며 분별력을 발휘하여 판단을 내리고 사람의 모든 행동을 콘트롤하고 있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뇌의 능력이 망가지고 파괴된 상황에서도 어떤 것을 소망하게 만드는 값진 능력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따로 있는게 아닐까요?
그걸 인간의 영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죠.
아무리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시궁창같고 끔찍하다 해도, 그래도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들고,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
결국 분명하게 얘기하고 싶어지는 군요. 머리에서 나오는게 아닌 가슴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걸요.
좀 구구절절 길어졌는데요. 이제 오늘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날씨가 정말 추운데요. 이제 재대로 겨울인가봐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방송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주의 남자 스토리_정이란 대체 무엇이냐 (4) | 2012.12.02 |
---|---|
공주의 남자 명장면 다시보기 (0) | 2012.12.02 |
중증 외상센터_골든 타임 (이성민, 이선균) (11) | 2012.07.30 |
닥터진 _ 만약 성형외과 의사가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2) | 2012.05.29 |
시간을 거슬러_해품달 17회 (173) | 2012.03.01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