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땅에 조용히 침입하다
68세 남자 한 분이 올해 4월 18일부터 5월 3일까지 바레인에 체류하면서 농작물 재배 관련 일을 보고 난 후 카타르를 경유해 5월 4일에 인천공항에 입국합니다.
공항에 입국할 당시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고 정상적인 상태였습니다.
입국한 지 7일 후인 5월 11일부터 열이 나고 기침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분은 평택 성모병원과 또다른 병원을 거쳐 삼성 서울병원 응급실로 내원하고, 다음날인 5월 18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합니다.
5월 19일 환자의 검체가 국립 보건연구원에 의뢰되고 다음날인 5월 20일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 양성으로 확진결과가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올 초여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메르스 사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7월 3일 현재 누계 확진 환자 184명, 격리 중인 사람 2,067명. 사망자 33명, 퇴원자 109명, 치료중인 환자 42명으로 이제 메르스 사태는 점점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망자 33명은 60대~80대 환자가 82%에 달해 사망한 환자는 거의 고령환자로 파악되고 있고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이 90.0%에 달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소아나 20~30대에 메르스로 인해 사망한 환자는 없었습니다.
확진자의 유형을 볼 때 병원에 온 환자 (입원 환자 포함) 가 44.6%, 간병, 문병 등 방문객이 34.8%, 병원 관련 종사자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이송요원, 안전요원 등) 20.7%였으니
거의 전부가 다 병원을 통해서 감염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의 MERS에 대해 좀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같애요.
제가 얼른 생각하기에 그 특징은
첫째. 전부 다 병원에서 감염됐다.
둘째. 젊고 건강한 사람은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고령자, 고위험 환자들이 중환이 되었다.
셋째. 대도시에서 집중 발생했다.
넷째. 걸리면 대체로 금방 진단이 되었다.
다섯째. 즉각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가, 생각보다 빨리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유독 이렇게 메르스에 시달렸는가?
이런 메르스의 확산 및 감염 현황을 볼 때 너무 분명해지는 게 하나 있네요.
메르스는 다 알고 있듯이 중동에서 발생한 풍토병 비슷한 감염병인데 막상 중동에는 한국처럼 이렇게 많은 환자가 한꺼번에 발생하질 않았어요.
그 이유가 대체 뭘까요 한국엔 낙타 타고 다니는 사람도, 낙타 고기 먹는 사람도 없는데....
저의 생각엔 한국사람들이 병원을 너무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던 것같애요.
병원이 너무 많고, 너무 많은 의료 관련 종사자가 있고, 국민들은 쓸데 없는 일에도 병원을 찾아가는 경향이 있어요. 왜냐? 병원이 흔하고 의료비가 싸니까요.
감기 걸리면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온다. 라는 말을 당연한 듯 얘기들 하는데 이런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어요.
한마디로 병원에 편의점 가듯이 가는 거에요.
그러나 병원은 감염병을 포함해 환자들이 집합돼 있는 장소입니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거죠.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그 큰 땅에 인구는 얼마 안 되고요. 대도시라 해도 서울처럼 이렇게 밀집되어 있진 않아요.
그리고 중동에는 병원이 별로 없어요. 아니 전 세계에 한국만큼 병원이 많은 데가 없죠. 특히 대도시에...
가령 낙타 키우는 어떤 건강한 남자분이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할지라도, 감기인가 이러면서 그냥 혼자서 누워 쉬면서 지나갈 꺼에요. 병원이 하도 머니까
그러니 진단 받을 길이 없어 메르스 확진자 수가 적었을 꺼라고도 생각됩니다.
즉 중동은 주로 유목민 국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서 살고 있어서 어떤 집단 대유행같은 게 일어나기 어려운 거죠.
의사도 많지 않고 병원도 갈 일이 그렇게 많지 않고 말이죠... 또, 그게 뭔 병인지 진단할 수 있는 검사 센터도 얼마 없었을 꺼에요.
헌데 홍콩이나 한국 서울같이 인구가 밀집돼 있는 곳에선 호흡기로 침투하는 바이러스가 한번 돌았다 하면 꼭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겁니다.
근데 메르스는 홍콩과 광동지방에 대 유행했던 SARS나 미국을 비롯해 214개국, 전세계를 휩쓸었던 신종 플루하고 좀 다른 점이 있더라고요.
거의 100%가 병원에서 환자가 감염됐어요. 다 병원감염 (iatrogenic)이라는 거죠.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의료 수준이 높고 의료기관 수, 의료 종사자 수가 많다 보니 호흡기 전염병에 있어서 의료진과 환자가 그만큼 많이 노출이 되는 사회인 겁니다.
그리고, 병원에 너무 많은 사람이 들락거린다는 것도 문제죠. 누가 좀 아프다고 하면 뭘 사들고 문병을 꼭 가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입원실 중환자실 응급실 할 것 없이 환자 아닌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이번 사태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던 겁니다.
질병관리 본부에서는 이런 메르스의 특성을 전연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환자가 병에 옮은 주 영역이 응급실을 비롯한 의료기관이었는데,
그럼 그 의료기관을 거쳐간 사람들을 빨리 파악하고 의료진도 파악하고, 검체를 내고 격리하고 이렇게 발빠르게 움직였어야 할 시기에
"병원을 공개하면 기존에 치료받을 사람이 안 받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안된다." 면서 삼성 서울 병원을 비롯한 뭇 병원들 모두를 비공개 상태로 계속 유지하려 했습니다.
결국 6월 7일이 되어서야 보건복지부에서 병원명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미 때는 아주 많이 늦은 후였던 것같습니다.
바이러스가 삼성 서울병원에서 이 환자 저 환자로 신나게 옮겨타면서 병세를 키워가는 동안 우리나라의 전염병 방지 시스템은 멈춰 서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메르스 패닉을 넘어서며...
병원내 감염을 통해서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동안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지하철에서 기침 몇 번 하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할 만큼 과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극장도 안 가고 회식이랑 행사는 죄다 취소되어 식당에도 안 갔고 마스크는 편의점마다 동이 났고 주말에 꽉꽉 들어찼던 놀이동산들은 파리만 날아다닐 정도였으니
메르스 환자 몇몇 발생 이후로 숫제 국가 경제가 마비될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어요. 이걸 메르스 패닉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같애요.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벌벌 떨었던 겁니다.
옛날 조선시대때에 마마 (천연두)가 돌면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이불 뒤집어쓰고 거의 갇혀 지내다시피 했다고 하는데 딱 그때가 이러지 않았을까 싶을 지경이었어요.
이제 이 메르스 패닉을 딛고 지나가면서, 우리 시민들도 한층 더 성숙해지길 기원하겠습니다.
호흡기 전염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지만, 이번 사태를 지나오면서 이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정신적인 면역이 되었기를 기대합니다.
자기가 원인이 불분명한 열이 나고 몸이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접촉하지 말고 스스로 안전하게 격리해야 한다는 것. (메르스에 감염된 채로 중국까지 출장을 간 한 명의 환자로 인해 중국인들은 이제 한국인을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뿌리깊게 인식하게 되었어요.)
병원에서는 원인이 불분명한 감염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격리 수용, 치료할 병상과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 전염력이 강한 환자를 치료할 때의 장비와 보호장구 등을 비치해야 한다는 점.
가장 중요한 것은 보건의료 당국입니다. 메르스 패닉 상태가 또다시 되풀이 되지 않게 제일 정신 차려야 하는 사람들은 행정가들이죠.
감염병 전문가들의 자문이 나오면 바로 법적 구속력을 갖고 빠르게 실행이 들어가야 합니다. 특정 의료기관을 폐쇄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바로 폐쇄해야 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처럼, 특정 병원 감싸주다가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게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는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은 언제든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또다시 유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모쪼록 메르스 패닉을 뛰어넘어, 앞으로는 훨씬 더 성숙하고 능동적인 대응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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